글로벌 빅테크 업계가 생성형 AI 시대를 맞이하며 범용 인공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인간처럼 추론을 할 수 있는 AGI를 두고 각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제 막 본격적인 AI 시대로 접어든 상태에서 AGI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소규모언어모델(sLLM)을 기반으로 하는 온디바이스 AI가 갤럭시 S24 등의 형태로 구현되는 등 AI 전반의 방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AGI 경쟁을 '지금 당장의 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온다비이스 AI를 비롯해 기업용 B2B AI까지 포함하는 입체적인 AI 전략은 모두 AGI라는 큰 뿌리에서 시작된다. 그 연장선에서 2024년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AGI 경쟁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CES 2024에 등장한 구글 부스. 사진=연합뉴스
CES 2024에 등장한 구글 부스. 사진=연합뉴스

AI가 스며드는 시대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며 이제 AI 기술은 '공기'가 되고 있다. 인터넷과 클라우드, 5G 네트워크 등이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기간 인프라처럼 작동한 것처럼, 이제는 AI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AI가 운영체제이면서, 초연결이자 브라우저는 물론 모든 산업의 관문이 되며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물인공지능(AIoT·AI of Things)이라는 표현이 급부상한 배경이자 이제 AI를 단순히 활용하는 개념을 넘어,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핵심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AX(AI Transformation)라는 개념도 이제는 일상화되고 있다.

최근 폐막한 CES 2024에서도 AGI와 관련된 흐름은 더욱 선명해졌다. 실제로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AI를 기반으로 삼은 인텔리전스 서비스에 방점을 찍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하드웨어 플랫폼의 연결을 지향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기본적인 전자회사는 물론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도 생성형 AI 뷰티 지니어스를 공개했다. HD현대와 같은 중공업은 물론 LX그룹도 모두 생성형 AI를 강조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설명이다.

CES 2024 현장. 사진=연합뉴스
CES 2024 현장. 사진=연합뉴스

AGI 대충돌의 시대
생성형 AI를 바탕으로 하는 글로벌 AI 전략적 방향성이 여러 갈래로 뿜어져 나온 가운데, AGI에 대한 큰 그림도 그려지고 있다.

오픈AI의 전략이 눈길을 끈다. 샘 올트먼이 지난해 11월 이사회로부터 일시적 해고를 당했을 때, 그 배경에 AGI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 이사회가 올트먼 축출에 나선 배경 중 하나가 바로 'AI 큐스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큐스타는 아직 완성된 AI가 아니지만 인간의 도움이나 지원이 없어도 방대한 컴퓨팅 파워로 수학 문제를 풀 능력을 가지고 있는 AGI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추론 능력이다. 기존 생성형AI는 단어의 나열을 통계적으로 묶어 일종의 AB 테스트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지만 큐스타는 인간의 지능을 닮은 추론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몇 개의 길을 학습하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무작위에 가까운 길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외신에 따르면 일부 개발진들은 큐스타의 가공할만한 잠재력에 주목, 올트먼에게 AI 기술 발전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중심에는 AI 회의론자에 가까운 오픈AI의 수석개발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리야 수츠케버의 설득은 통하지 않았고, 올트먼은 오히려 큐스타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로드맵을 추구했다. 이에 수츠케버를 필두로 한 오픈AI 이사회는 '위험한' AGI를 급격히 키우려는 올트먼을 멈추려 CEO 해임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쿠데타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상태에서 이제 오픈AI는 거침없는 AGI 전략을 추구할 전망이다. 연내 공개될 최신 LLM인 GPT-5에 시선이 집중된다. 파라미터 1조 7000억개로 추정되는 GPT-4 대비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된 GPT-5는 AGI 발전에 있어 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AGI 자체가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동영상 등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멀티모달 기능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올트먼은 최근 폐막한 다보스 포럼에서 "GPT-5는 (전 모델 대비) 더 스마트하며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며 "추론 기능이 추가됐는데, 이는 사용자를 대신해 작업을 처리해주는 범용 능력 측면에서 중요한 발전"이라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AGI 그 자체다. 그는 나아가 "2007년 출시된 아이폰과 최신형 아이폰15를 보면 믿기 힘들 정도로 다른 두 기기는 다르다"며 "AI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에 맞서는 구글은 바드를 중심으로 제미니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와 구글 리서치(Google Research)를 통합한 후 대규모 협업에 나선 결과 탄생한 제미나이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동영상, 코드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여러 정보를 동시에 조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멀티모달 기반 AI 모델이다. 데이터센터부터 모바일 기기까지 모든 환경에서 범용적으로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총 3개의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제미나이 울트라(Gemini Ultra)는 방대하고 복잡한 작업에 적합한 가장 유용하고 규모가 큰 모델(Most capable and largest model for highly complex tasks)이며 제미나이 프로(Gemini Pro)는 다양한 작업에서 확장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 (Best model for scaling across a wide range of tasks)이라는 설명이다. 또 가장 하위 라인업인 제미나이 나노(Gemini Nano)는 온디바이스 작업에 가장 효율적인 모델 (most efficient model for on-device tasks)이다. 

제미니아는 개발 단계 초기부터 다양한 모달리티로 사전 학습시켜 ‘태생적으로 멀티모달’(natively multimodal)이 되도록 설계, 개발됐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기반 인프라 자체가 이미 멀티모달의 연결성을 전제, 이미지를 넘어 더 복잡한 추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추론'을 바탕으로 하는 AGI 전략을 잘 보여준다.

맞춤형 AI 전략을 가동하던 메타도 AGI로 급선회했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18일(현지시간) "H100을 올해 말까지 34만개 이상 확보할 것"이라며 "메타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 제작을 위해서는 AGI를 지향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내 AI연구그룹 'FAIR'와 'GenAI'를 통합할 계획도 발표하며 본격적인 AGI 전략에 힘을 실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사진=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사진=연합뉴스

"AGI 시대, 밀리지 않으려면"
한국 ICT 업계가 AGI 시대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정면대결을 벌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평가다.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게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AI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의 TSMC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는 것처럼, 한국 ICT 업계가 글로벌 AGI 생태계에서 중요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올트먼과 손을 잡고 HBM 등을 비롯한 새로운 AI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한국형 AI 전략을 추구하는 특화 AI 전략의 경우 그 운신의 폭이 좁은 편이라, 차라리 글로벌 AI 전체 시장을 기준으로 삼는 특정 서비스 영역을 노리는 것이 더 낫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차피 '쩐의 전쟁'이 어렵다면 금세 함락당할 수 있는 지역 맹주가 아니라 글로벌 생태계의 일부가 되라는 뜻이다.

한편 강력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보유한 특유의 제조업 인프라를 통해 소프트웨어 AGI와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구글과의 협력으로 AI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가면서도 중국에서는 바이두와 협력하는 삼성전자 갤럭시 S24의 기민한 전략적 선택 사례들이 더 많아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