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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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속속 활동을 개시한 행동주의 펀드들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확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1일 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 등 국내 7대 금융 지주사들에 각 사가 앞서 발표한 정책에 부합하는 주주환원율 적정치를 제시하고, 은행별 결산 이사회에서 이에 맞춘 주주환원정책을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하나·BNK·DGB금융지주 3곳에 대해 작년 3분기까지 자산 또는 위험가중자산 증가세가 과도해 주주환원정책 준수 정도가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금융(12.5%)과 JB금융(13.0%)에 대해서는 각 사가 목표한 보통주자본(CET1) 비율인 12.5%, 13.0%에 도달할 때까지 RWA의 성장률을 연 3∼4% 이내로 제한하고 주주환원율을 매년 2∼3%포인트씩 높일 것을 촉구했다. 목표 CET1 비율 초과시, 초과분은 주주환원을 해야 한다는 요청도 담았다.

해당 의제들은 각 지주사들이 요청 기한까지 발표 정책을 미준수하기로 하거나 주주서한에 대한 답변이 미흡할 경우, 주주제안을 통해 정기주주총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얼라인은 지난해 초부터 “주주환원율이 60% 수준인 해외에 비해 국내 은행 대부분이 27% 수준에 그친다”며 주주가치 제고 운동인 ‘은행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의 성과는 명확했다. 지난해 얼라인의 ‘1차 은행주 캠페인’ 이후 국내 금융지주들은 일제히 배당 확대를 중점으로 전년 대비 주주환원율을 1~7%포인트 가량 올렸다.

다만 얼라인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주주환원 정책은 배당이 아닌 자사주 매입 후 소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저희는 항상 자사주 매입 위주의 주주환원율 제고를 요구해왔다”며 “현재로서는 은행주들의 주식이 너무 싸다. 주가 자체를 올리는 게 더욱 좋은 거라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가장 효과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대표는 최근 꾸준한 자사주 소각으로 주식 시장에서 약진을 보이고 있는 메리츠금융을 언급하며 “올해 주주서한에서 메리츠금융을 넣지 않았다. 이미 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압박 강도 더 세게···소송까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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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정책 미흡을 이유로 상장사에 소송을 건 행동주의 펀드도 있다.

최근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KT&G 전·현직 이사 21명을 상대로 1조원을 배상하라는 소송 제기 청구서를 보냈다. KT&G 전·현 이사들이 자사주 활용 감시에 소홀해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FCP는 전·현직 사내외 이사들이 지난 2001년부터 KT&G 자사주 1000만여주를 소각하거나 매각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데 활용하는 대신, 재단·기금에 무상으로 증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경영권 강화를 위한 우호 지분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KT&G 주가는 지난 2016년 7월1일 최고가 13만7000원을 기록한 후 점차 하락하더니, 지난 2020년 3월 27일 6만5000원으로 최저점을 찍은 이후 8만원~9만원대 박스권을 횡보하고 있다.  

FCP 내부 관계자는 “KT&G는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현금성자산과 유휴자산을 정리하여 주주에게 환원해야 하고,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은 모두 소각해야 한다”며 “지난 11월 밸류 데이에서 KT&G는 보유 자기주식의 절반만을 3년 내 소각한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전현직 사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산하재단 등이 보유한 주식은 의결권의11%가량이고 주총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 주식들은 KT&G가 자기주식을 무상으로,저가로 처분해서 보유하게 된 것이다.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현재의 경영진의 손에 맡겨 둔다면 이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경영권의 강화를 위해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행위는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친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주총 안건으로 올릴 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이 검토 중이다. 다만 저희의 의견은 작년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KT&G 관계자는 "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익법인과 근로자의 복리후생 증진 목적으로 자사주 일부를 출연했다. 출연 당시 이사회는 관련 법령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관련 안건을 의결했다"고 반박했다.

FCP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KT&G의 지배구조 자체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도 내비쳤다. 

현재 KT&G 이사회 사외이사 자리에 있는 임민규 전 SK머티리얼즈 대표이사 사장, 김명철 SEE(Space Entertainment Enterprise) 고문, 백종수 법무법인 동인 구성원 변호사, 고윤성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손관수 한국자동차경주협회장, 이지희 더블유캠프 대표 중 글로벌 소비재 전문가가 한 명도 없어 전문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FCP 관계자는 “좋은 사외이사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며, KT&G의 규모에 걸맞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경험이 있는 글로벌 소비재 전문가여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저희도 지난해 차석용, 황우진 후보자를 추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FCP 측은 KT&G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FCP의 강력한 공세에 일각에서는 최근 4연임을 포기한 백복인 KT&G 대표이사의 후임 자리에 FCP가 외부 후보자를 추천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 FCP 관계자는 “이번 KT&G 사장 후보추천에는 주주제안이 포함되지 않아, 저희가 후보를 등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실적 부진에 고심 깊은 상장사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들의 ATM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들의 ATM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자사주 소각’에 방점을 둔 행동주의 펀드들의 행보에 투자자들의 기대는 높아졌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최근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발표된 은행권의 2조 규모 민생금융지원 방안으로 실적 부진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하나증권은 지난해 4분기 국내 금융 지주사들의 추정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9% 감소한 약 2조2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민생금융지원 방안에 따라 은행들이 4분기에만 약 1조4천억원의 비용을 인식할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약 3100억원의 추가 충당금 적립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T&G의 지난해 4분기 실적 역시 전망이 어둡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4분기 KT&G 매출액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담배사업 영업이익 축소 영향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한 1조4006억원, 영업이익은 20% 감소한 161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증권사의 부동산 PF 손실 문제, 은행권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문제, 2조원 규모 민생금융지원방안 등으로 국내 지주사들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이 사실상 확정돼 있는데, 배당금 축소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정책을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