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업계는 팬데믹이 끝나고 리오프닝이 본격화된 2023년 전례가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상의 중심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하며 게임 비즈니스 자체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게임사들은 2024년을 맞아 기존 MMORPG 방정식에서 탈피해 캐주얼, 서브컬쳐, 크로스 오버 플랫폼 등 기존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난 색다른 실험들도 준비하고 있다. 이제 포탈은 열렸다. 게임사들은 과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색 던전'의 최하층에서 레벨업에 성공하고 원하는 아이템을 확보할 수 있을까?   

2024년 게임업계가 보릿고개를 벗어날 수 있을까?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실제로 넥슨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은 업계 전체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게임업계 전반에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가운데 주요 게임사들은 2024년 전략과 신작 라인업을 발표하며 성장을 위한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기존 성공 방정식'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이 눈길을 끈다.

장르 다각화 승부수 띄웠다

최근 한국 업계는 내수시장에 초점을 맞춘 MMORPG 장르에 매몰돼 글로벌 경쟁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천편일률적인 '리니지 라이크' 양상에 이용자들은 피로도가 쌓였고 이는 게임 자체에 대한 외면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24년에는 '장르 다변화'에 손을 뻗을 전망이다. 당장 IP라는 무기를 쥐고 다양한 장르의 신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지스타2023에서 시작된 이러한 시도는 게임사들이 기존 MMORPG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사진=지스타조직위원회
사진=지스타조직위원회

구체적인 메시지도 나왔다. 김택진 엔씨 대표는 리니지 IP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해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8년만에 지스타를 찾은 김 대표는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엔씨가 강점을 확보하기 적합한 장르를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에서 엔씨는 슈팅 장르, 캐쥬얼 장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공개한 바 있다.

리니지 IP에서 발생한 현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엔씨는 지난해 3분기 매출 4231억원 중 73.6%(3115억원)이 리니지 IP에서 발생할 만큼 리니지 환경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리니지의 대가인 엔씨가 기존 리니지 외의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만큼, 게임업계에서는 이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다른 게임사들도 다양한 장르에 도전 카드를 꺼내들며 새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김택진 엔씨 대표가 지스타 2023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김택진 엔씨 대표가 지스타 2023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3N "다양한 장르 출격 대기"

신작 흥행을 이끌던 넥슨은 올해도 도전적인 행보를 보인다. 먼저 '퍼스트 디센던트'를 출시하며 3인칭 슈팅 전투에 RPG 플레이를 결합한 차세대 루트슈터 게임을 목표로 했다. 체계적인 성장 시스템과 짜임새 있는 PvE 콘텐츠 뿐만 아니라 언리얼엔진5로 구현한 실사 같은 비주얼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강점이다. 

다양한 테스트도 진행한다. 먼저 '퍼스트 버서카: 카잔'은 네오플 대표 IP인 'DNF 유니버스'의 다중 우주 중 하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하드코어 액션 RPG 장르로서 '던전앤파이터' 특유의 액션과 성장에 따른 강력한 스킬 체계를 더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폐허가 된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펼치는 팀 대전 액션 게임 '웨이크 러너'와 좀비 아포칼립스 설정의 잠입 생존 장르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를 테스트한다.

넥슨은 2023년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등을 바탕으로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싱글 패키지 형식의 하이브리드 해양 어드벤처 게임인 '데이브 더 다이버'는 글로벌 출시와 동시에 스팀 내 유가게임 기준 글로벌 판매 1위, 한국 판매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매서운 존재감을 보인 바 있다.

‘2023 스팀 어워드’에서 유일한 한국 게임으로 선정되는 한편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영국 게임 평가 매체 ‘PC Gamer(피시 게이머)’가 선정한 ‘올해의 게임’에서 ‘최고의 디자인’ 부문을 수상하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2024년을 맞아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다는 각오다.

이정헌 넥슨 대표가 지스타 2023 라인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정헌 넥슨 대표가 지스타 2023 라인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리니지 제국' 엔씨도 움직인다. 이미 지스타2023에서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예고했다.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를 포함한 신작 7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에는 MMORPG와 슈팅게임을 혼합한 '루트 슈터' 장르의 게임인 'LLL'을 비롯해 난투형 대전 액션 '배틀크러쉬',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게임(MMORTS) '프로젝트 G', 수집형역할수행게임(RPG) '프로젝트 BSS'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캐주얼 장르' 도전이 주목된다. 엔씨가 출시할 '배틀크러쉬'는 점차 좁아지는 지형에서 최후의 1인을 가리는 난투형 대전 액션 게임으로, 지스타2023에서 '캐주얼한 배틀로얄'이란 타이틀에 호평 받은 바 있다.

프로젝트 G는 엔씨에서 처음 선보이는 장르다. 시뮬레이션 게임과 실시간 전략 게임의 경험을 합치며 이를 개인, 길드 간 대전으로 규모를 키웠다. 프로젝트 BSS는 필드 모험, 액션, 수집, 조합의 묘미를 섞은 수집형 RPG로 환경과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팀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로젝트G. 사진=엔씨.
프로젝트G. 사진=엔씨.

넷마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장르 다각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MMORPG가 시장을 장악했던 기간, 넷마블은 방치형 RPG인 '세븐나이츠 키우기'와 수집형 RPG '신의 탑: 새로운 세계'가 상위권을 차지하며 시장 다변화를 이끌었다. 일각에서는 기존 MMORPG에 지친 이용자들에게 신선한 대안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넷마블은 올해도 신작을 줄줄이 공개할 예정이다.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 등의 MMORPG 뿐만 아니라 액션 RPG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수집형 전략 RPG '킹 아서: 레전드 라이즈', 캐주얼 보드게임 '모두의마블2', TPS MOBA 장르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 등 신작 공개를 앞둔 상황이다. 다변화된 장르를 준비하며 '세븐나이츠 키우기'를 이을 성공 사례를 만들지 주목된다.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 사진=넷마블.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 사진=넷마블.

다양한 장르 시도 돋보여

3N만 장르 다각화 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위메이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판타스틱4 베이스볼'로 캐주얼 장르에 도전한다. 세계 주요 프로야구 리그에 소속된 최고 선수들이 등장하며, 고품질 실사형 그래픽을 통해 인기 선수들의 얼굴과 체형, 몸짓까지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이용자들은 자신만의 팀을 꾸려 다양한 PvP와 PvE 게임 모드를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위메이드 자회사와 계열사들도 분주하다. 위메이드플레이는 캐주얼과 퍼즐 장르의 대중성을 공통 분모로 2024년을 그려갈 예정이다.  

위메이드는 지난 1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타이베이 게임쇼 2024'에서 배급작인 MMORPG '나이트 크로우'와 모바일 야구게임 '판타스틱4 베이스볼' 부스를 단독으로 꾸렸다. 두 게임 모두 상반기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위메이드는 타이베이게임쇼2024에 참가해 단독 부스를 꾸렸다. 사진=위메이드.
위메이드는 타이베이게임쇼2024에 참가해 단독 부스를 꾸렸다. 사진=위메이드.

카카오게임즈도 필승카드를 꺼냈다. MMORPG 측면서 '오딘' 및 '아레스'를 공개, 견고한 리니지 라인업에 균열을 낸 경험을 살려 장르 다각화 및 캐주얼 게임 전반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액션 RPG '가디스오더'와 MMORPG '롬(R.O.M)'을 선보일 예정이다. 가디스오더는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횡스크롤 방식의 액션 RPG이며, 지난 지스타2022에서 처음 공개되어 퀄리티 높은 도트 그래픽과 조작감을 극대화하는 액션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이밖에도 기존의 MMORPG '오딘: 발할라 라이징', 수집형 RPG '에버소울', MMORPG '아키에이지 워'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방침이다. 

가디스오더. 사진=카카오게임즈.
가디스오더. 사진=카카오게임즈.

배틀그라운드(배그)로 유명한 크래프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계단식 성장'의 첫 단추로 낙점했다. 배틀로얄, 던전 크롤러, RPG 장르의 특징을 융합했으며, 국내외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고 있다. 넥슨과 다크앤다커 제작사의 IP 분쟁이 벌어지는 중이지만, 게임 그 자체로 볼 때 크래프톤의 기대는 상당한 편이다.

크래프톤은 2024년 상반기에는 '다크앤다커 모바일', 하반기에는 '인조이'를 출시할 계획이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올해는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시작으로 신작 라인업의 출시가 본격화되며,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 전략의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는 첫 해"라며 "이러한 과정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전력 투구한다는 각오로 게임 제작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크앤다커. 사진=크래프톤.
다크앤다커. 사진=크래프톤.

컴투스도 장르별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1월 25일 미디어 쇼케이스2024를 열고 신작인 생존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 요리 시뮬레이션 게임 'BTS 쿠킹온: 타이니탄 레스토랑', AI 육성 어반 판타지 RPG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를 소개하며 2024년 전략을 밝혔다. 신작 3종 모두 다른 장르로, 이날 이주환 컴투스 대표이사는 "각 장르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 사진=컴투스.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 사진=컴투스.

서브컬처가 대세다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캐릭터를 내세워 세계관을 만드는 '서브컬처' 장르 게임이 국내 시장에서 '대세'다. 2020년대부터 주류 장르로 떠오른 서브컬처는 최근 동아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장르로 주목받으며, 더이상 '서브'라고 불릴 수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서브컬처의 인기에 글로벌 게임업계들도 주목했다. 실제 타이베이게임쇼2024에서도 인기 서브컬처 게임 부스 '타워 오브 세이비어스', '우마무스메', '명일방주' 등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방문객이 대거 몰렸다.

서브컬처는 뚜렷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강력한 팬덤도 형성된다. 마케팅 확장을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굿즈, 피규어, TV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방식의 IP 확장이 활발히 이뤄져 오프라인 확장을 모색하는 게임사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이점을 누리기 위해 게임사들은 서브컬처 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한국의 서브컬처 게임도 글로벌 시장에 통한 사례가 나왔다. 시프트업이 개발한 '승리의 여신: 니케'(니케)와 넥슨게임즈가 개발한 '블루 아카이브'의 경우다. 두 게임은 글로벌 서브컬처 게임 매출 상위권 10위 내에 들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실제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센서타워에 따르면 니케와 블루 아카이브는 11월 글로벌 서브컬처 게임 매출 순위에서 각각 2위, 10위를 기록했다. 

블루 아카이브. 사진=넥슨.
블루 아카이브. 사진=넥슨.

니케는 세계 탈환을 위한 미소녀 건슈팅 액션 게임이다. 출시 초기부터 국내 양대 마켓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일본과 대만과 홍콩에서 1위, 미국에서는 한국 게임 최초로 신규 IP로서 북미 3위를 기록했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니케는 구글플레이 및 애플 앱스토어 등 양대 앱 마켓 누적 매출 7억 달러(약 9320억원)을 돌파했다고 집계됐다.

또한 블루아카이브는 서브컬처 장르에 조예가 깊은 '덕후'들이 모여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학원 소속의 개성 있는 학생들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블루아카이브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전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매출 추정치가 약 2.2억 달러(약 288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

두 작품은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좋은 실적을 일궈내며 게임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다른 게임사들도 '서브컬처' 진출을 위해 출격 대기 중이다. 

넷마블은 앞서 지스타2023에서 신작 출품 라인업 3종 중 2종을 서브컬처 작품으로 꾸렸다. 서브컬처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인 '그랜드 크로스'의 두번째 작품 '데미스 리본'을 지스타 2023에서 선보였다. 이는 2024년 하반기에 출시 예정이다. 아울러 일본 만화 '일곱개의 대죄'를 기반으로 만든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 '일곱개의 대죄: 오리진'도 시연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에버소울'로 서브컬처 명맥을 이어간다. 다양한 유물에 깃든 아름다운 정령들의 이야기를 담은 RPG로 2023년 출시 후 국내 및 일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에버소울은 일본으로 진출하기 위해 1월 30일부터 2월 3일까지 현지 테스트를 거쳐 완성도를 높여 출시할 예정이다. 

에버소울. 사진=카카오게임즈.
에버소울. 사진=카카오게임즈.

컴투스는 지난 1월 25일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서브컬처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를 소개했다. 이는 조이시티 자회사 모히또게임즈가 개발한 AI 육성 어반 판타지 RPG다. 위기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AI 소녀들과 함께 힘을 모아 싸우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며 수준 높은 원화와 화려한 애니메이션 컷 신 등이 강점이다. 

웹젠은 서브컬처 게임 '테르비스'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라그나돌',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등 다양한 서브컬처 게임을 서비스해왔으나, 자체 개발은 처음이다. 테르비스는 대지를 뜻하는 라틴어 '테라'와 순환을 뜻하는 '오르비스'의 합성어로 에너지가 고갈되는 위기 속 인간과 계약을 맺어 다양한 동료들과 테르비스를 구원하기 위한 모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