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해운업계 컨테이너 시황이 시장의 예측을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만 해도 2024년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물동량 감소와, 전체 컨테이너선 선복량 증가로 경쟁이 과열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운임 하락세 역시 뚜렷했다. 대표적 컨테이너 시황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5000포인트까지 치솟으며 최고점을 달성했던 2022년과 다르게 지난해 1년 동안 1000포인트 초반 구간에 머물며 호황기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최근 1년간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변화 추이. 사진=한국관세물류협회
최근 1년간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변화 추이. 사진=한국관세물류협회

하지만 정작 2024년에 들어서자 시장의 예측과 정반대로 컨테이너 운임이 치솟는 형국이다. 양대 운하 중 파나마 운하의 가뭄으로 선박 통행량이 제한되고, 수에즈 운하 역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반발한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며 덩달아 막혔다. 선사들이 수에즈 운하를 피해 희망봉을 우회하며 세계 공급망에 2주~3주가량 공백이 생겼고, 일시적으로 선박이 부족해진 여파로 운임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실제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지난해 12월 22일 기준 1254포인트를 기록했지만, 한 달 후인 2024년 1월 19일엔 2239포인트를 달성하며 약 78% 상승했다.

운임 상승 장기화될까…“팬데믹 시기와는 다른 양상”

일각에서는 홍해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운임 상승으로 인한 선사들의 매출 반사이익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최근 양지환, 이지니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한민국 최대선사 HMM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15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수에즈 사태 장기화를 감안한 조정이다.

지난 코로나 19 팬데믹 시절 세계적인 부정이슈로 인한 해운업계의 역대급 호황을 언급하며, 이번 수에즈 사태 역시 ‘어게인 팬데믹’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일환 영원NCS무역물류컨설팅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HMM 매각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현재 해운 시황은 과거 팬데믹과 유사하게 세계적 악재에 힘입어 운임이 올라가는 형세”라며 “이런 국면이 장기화 되면 HMM의 수익성은 개선되고 유보금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운임 상승 현상은 일시적 현상일 뿐, 팬데믹 특수와 연결짓기엔 어렵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 2022년에는 2020년~2021년 동안 위축된 소비심리가 살아나며 세계적 ‘물동량이 증가’했으며, 이를 선박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며 운임이 장기간 폭등했다. 하지만 이번 운임 상승 현상의 배경엔 물동량 증가가 없다. 단순히 선박의 ‘리스케줄’에 따른 여파로 운임이 뛰었다는 것이다.

물동량은 그대로인데 향후 투입될 선복량은 더욱 많아질 것이란 점도 변수다. 팬데믹 시기 선주들은 신조선을 대거 발주했고, 해당 물량들이 2023년부터 서서히 바다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전체 선복량은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15%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선사들의 경쟁 심화와 운임 하락으로 직결되기에, 당장의 운임 상승세 역시 장기적으로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HMM 관계자는 “현재 운임 증가세는 갑작스러운 선박들의 희망봉 우회로 인한 것으로 본다”며 “장기적으로는 선복량 부족이 아닌 선복 과잉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 역시 “단기적 운임 상승의 여파로 선사들의 2024년 1분기 실적은 기대치를 상회할 전망이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선복량 추가 투입으로 인한 시장 안정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HMM 타코마호. 사진=HMM
HMM 타코마호. 사진=HMM

홍해 리스크 여파 적은 벌크 시황…유가 영향도 미미 

컨테이너 시황이 전쟁으로 인해 일시 상승한 가운데, 같은 기간 벌크선 운임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 벌크 시황인 발틱건화물선지수는 지난해 12월 4일 최고점인 3346포인트를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해 1월 24일 기준 1507포인트를 기록 중이다. 벌크선이 주로 운반하는 철광석 등 건화물의 수요가 국제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 철광석 수요처인 중국의 부동산 침체 등이 영향을 끼쳤다. 전쟁으로 인한 영향은 미미한 편이다.

국제 유가 역시 해운 불안정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 3개월간 국제 유가는 지난해 10월 20일 최고가(배럴당 88.37)달러를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하며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25일 기준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배럴당 75.09달러를 기록 중이다. 지난 12일 이란 해군이 중동 산유국들의 해상 진출로인 호르무즈 해역을 지나던 미국 유조선을 나포한 여파로 유가가 일시 상승했지만, 이후 2주가량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해운 추이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면서도 “유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해운을 제외하고도 많으며,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 등 주요 산유국의 감·증산 소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컨테이너 선사들이 일시적 운임 상승으로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는 요즘 국내 중소 수출기업들은 갑작스런 운임 부담 증가에 울상 짓고 있다. 위험 지역을 지나는 선사들의 보험료가 뛰며 화주들에게 위험부담금을 부과하는 데다 기본 운임까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선사들은 성수기 할증 요금까지 부과한다. 위험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화주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상 연초는 해운업계에 성수기가 아님에도 일부 선사들이 일시적 선복량 부족 현상을 이유로 성수기 요금까지 부과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해운업계 측은 “그럼에도 선사들의 보험료 인상폭이 전체 운임 인상폭보다 높은 편”이라며 “막대한 보험료를 지불하며 수에즈를 이용하는 방법과, 연료비 상승과 납기 지연을 감수하며 희망봉을 우회하는 방법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선사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반박했다.

팬오션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그랜드 보난자'. 사진=팬오션
팬오션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그랜드 보난자'. 사진=팬오션

정부 “국내 수출입 관련 기업 피해 최소화 할 것”

정부에서는 국내 화주들과 선사들의 부담을 최대한 경감하기 위해 수시로 홍해 상황을 모니터링 하며 대응안을 마련하고 있다.

해수부는 강도형 장관을 필두로 홍해 인근을 항해하는 한국 선박의 안전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해수부는 관계부처와 협력해 유사시 신속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비상대응체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25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제4차 수출 비상대책반 회의를 개최하고 수출입 물류 영향 점검 및 향후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해상물류 차질의 장기화에 대비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운임비 상승에 따른 단계별 지원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각 단계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기준 2000~2700포인트(현상황)을 1단계로, 2700~3900포인트를 2단계(추가조치단계)로, 3900포인트 이상을 3단계(비상대응)로 설정해 나뉜다.

산업부는 즉시 시행하는 1단계 조치로 수출바우처 내 물류비 지원한도를 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긴급 확대한다. 유럽, 미주지역 사전 안전재고 확보를 위한 해외 공동물류센터 긴급 지원(36억원, 233개사)도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코트라의 미주 향(向) 중소기업 전용 선복을 40% 이상 확대(주당 110TEU→155TEU)하고, 무역협회 등이 발굴한 선복 수요를 바탕으로 해수부 등과 협의해 확보한 전용선복(항차당 475TEU, 장기계약 1100TEU) 후속 지원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사태 추이를 예단할 수 없는 만큼 예상 시나리오별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방안을 마련하여 수출 상승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고,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기업애로 해소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에서 열린 홍해 물류 리스크 관련 업계 간담회에서 정부·화주·물류기업·선사·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에서 열린 홍해 물류 리스크 관련 업계 간담회에서 정부·화주·물류기업·선사·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