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형 건설사(도급 순위 11위 내)에서 전국에 분양하는 아파트 물량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물량 중 누적된 미분양 물량에 정부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한 곳들이 9%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곳들은 건설사들이 부지 매입 계약과 함께 브리지론(PF 대출의 일종으로 건물을 지을 땅을 사들이고 인허가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빌리는 것)을 받은 뒤 대출 이자만 낼 순 없어, 작년까지 미루던 분양 일정을 올해로 잡아 지난해보다 물량이 증가했단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동산 조사업체 부동산R114가 2023~2024년 주요 건설사의 아파트 분양 계획을 조사(1000채 이상 대단지 기준)한 결과, 올해 전국 45개 사업장에서 8만4297채가 분양 예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물량(6만2508채, 22일 조사 기준)과 비교해 34.9% 늘어난 수치다. 24일 현재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처럼 분양 시기가 안 잡힌 단지들은 수치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물량은 훨씬 많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힐스테이트 메디알레’ 공사 현장에 공사 중단을 알리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과 조합 내분에 분양 일정이 거듭 미뤄지는 곳이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난 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힐스테이트 메디알레’ 공사 현장에 공사 중단을 알리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과 조합 내분에 분양 일정이 거듭 미뤄지는 곳이다. 사진=이혜진 기자

권역별로는 올해 수도권에서만 24개 단지, 4만7563채가 분양될 계획이다. 지역별로 ▲경기 2만886채(12곳) ▲서울 1만7818채(8곳) ▲인천 7178채(4곳) 순이다. 이 중에서도 서울은 지난해(1만3194채)와 비교해 분양물량이 35.0% 증가할 예정이다.

지방에서는 21개 단지, 3만6734채가 공급될 계획이다. 시∙도별 분양물량은 광주가 1만1821채(4개 단지)로 가장 많다. 이어 충남에서 7507채(6개 단지)가 분양되고 부산 6294채(5곳)과 전북 4140채(2곳) 등의 순이다.

미분양 관리지역인데…아산, 충남 전체 물량의 10채 중 7채 분양

특히 충남은 지난 5일 정부가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재지정한 아산(5058채)에 물량의 71.7%가 몰려 있다. 지난해(1626채)에 비해 분양물량이 되레 3배 이상 급증했다. 탕정면에서 포스코이앤씨(2354채)와 대우건설(1214채)이 총 3770채의 물량을 공급하면서다.

지난해에 분양물량이 없었던 경북 포항에선 오는 26일 ‘힐스테이트더샵상생공원(2667채)’이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을 연다. 24일 포항시에 따르면 이 단지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인 ‘포항자이애서턴’과 올해 준공되는 ‘포항아이파크’∙‘한화포레나2차’를 포함해 ‘힐스테이트환호공원 1∙2블록’∙‘포항푸르지오마린시티’ 등 총 3000여채의 미분양 주택이 있다.

이에 정부는 포항을 1년 넘게 미분양 관리지역에서 해제하지 않고 있다. 아산과 포항에서 올해 분양되는 단지의 전체 물량(7725채)은 전국 물량의 9.2%를 차지한다. 올해 두 지역에서 공급되는 모든 물량은 정비사업이 아닌 분양사업으로 진행되는 것들이다.

주택 업계에선 전체 분양 유형 가운데 재건축과 재개발∙리모델링은 정비사업, 땅을 개발해 새 집을 짓는 방식이 적용되면 분양사업이라고 분류한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서울과 경기에선 올해 전체 단지 중 절반 이상이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되고 인천에선 올해도 분양사업(2023년∙2024년 4개 중 3개)으로 진행되는 게 더 많다.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세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요 건설사에서 대규모로 분양하는 물량이 없다. 인근의 충북과 대구, 경북, 전남도 마찬가지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공급과잉이나 미분양 리스크가 큰 지방 위주로 물량 공급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이혜진 기자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세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요 건설사에서 대규모로 분양하는 물량이 없다. 인근의 충북과 대구, 경북, 전남도 마찬가지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공급과잉이나 미분양 리스크가 큰 지방 위주로 물량 공급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이혜진 기자

“미분양 지역서 분양하는 단지들, 고분양가론 ‘깜깜이 분양’해도 힘들 것”

이에 대해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에서 정비사업 위주의 분양이 이어지는 이유는 도심에서 수요를 확보할 수 있고 (조합원을 제외하면)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물량이 적어, 시장 위축과 자금조달 문제 등 건설업 침체 국면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개발할 수 있는 택지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인데, 반면 인천은 택지지구가 풍부해 정비사업 대비 분양 유형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발될 수 있는 땅은 수도권보다 지방, 지방에서도 광역시보다 소도시에 더 많다. 게다가 이런 지역은 땅값이 수도권과 광역시보다 낮아 주택 경기가 호황일 때 건설사 등에서 여러 택지를 사들였다. 이후 분양 경기 침체로 포항 등에서 대규모의 미분양 주택이 생겼지만 분양을 계속 이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와 관련해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포항은 (2017~2018년) 지진이 발생한 이후부터 (집을 사려는) 수요가 받쳐주지 못해 공급 사업이 계속 원활하지 못하다”며 “그런데도 공급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건설사 등이) 땅값이 비싸지 않으니 땅을 경쟁적으로 구입했는데, 이런 땅을 (지가 하락세 등에) 팔고 싶어도 못 팔거나 (높은) 금리 때문에 대출 이자를 계속 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사업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분양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곳에선 분양가를 합리적으로 내놓으면 분양 초반에 분양률을 절반 정도만 달성해도 초기 사업비는 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데 분양률이 이마저도 안 되면 사업성이 좋은 위치에 있는 분양단지 중 초기 분양률이 저조한 업장처럼 ‘깜깜이 분양(계약률을 밝히지 않고 선착순 분양을 유도하는 것)’을 해도 잘 되기 힘들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