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전면 폐지한다.  22일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국민 참여자 및 전문가들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5번째 생활규제 개혁'을 개최한 뒤 단통법을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단통법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법”이라며 “글로벌 규제 스탠다드에 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시장경쟁 강화를 통한 소비자 후생 증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 제정된 단통법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 순간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을 것"과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특히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통해 경쟁 촉진을 말하고 있으나, 이번 방침이 오히려 시장 경쟁 활성화의 핵심인 제4이통사와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새로운 압박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않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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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왜 등장했나
2014년 단통법 이전, 구매자가 단말기를 구입할 때는 천차만별의 보조금을 받았다. 제조사와 이통사가 공동부담하지만 그 비율은 알려지지 않은 보조금이 대리점에서 임의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가입자를 확보하려는 이통사들이 일부 대리점에 스팟성 인센티브를 뿌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보조금이 50만원일 경우, A라는 통신사가 B라는 대리점에 스팟성으로 보조금 100만원을 뿌리면 B 대리점은 주로 통신사를 옮기는 고객에게 7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30만원은 스스로가 가져가는 구조였다. 당연히 통신사도 가입자 확보에 도움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이통업계의 대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이통사가 인센티브를 스팟성으로 뿌리는 대리점들이 소위 '떴다방'처럼 영업을 하며 가입자들은 이를 찾아 대모험을 떠나는 일이 빈번했다.

당장 일부 대리점들이 '표인봉(페이백)' 등의 은어를 인터넷에 흘리면 가입자들이 우루루 몰려가 밤을 새 줄을 서며 단말기를 개통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는 사람은 많은 혜택을 받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단통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특히 단말기 보조금의 상향기준을 설정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과도한 이통사들의 영업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몇몇 정보에 밝은 이들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다는 방침이었다.

일종의 '혜택 하향표준화'다. 단말기 보조금을 일부 가입자만 독식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이통사들의 과열경쟁을 막아 그 혜택을 법으로 정해 규제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절대다수의 가입자들이 별 고민없이 보조금 혜택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여기에 선택약정할인도 추가했다.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특정 요금제에 약정을 걸어 최대 25%의 할인을 지원하는 제도다. 몇몇 예외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약정할인이 가입자에게 유리했기에, 현재 가장 많은 단말기 개통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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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단통법, 어떻게?
단통법 체제 아래에서도 개정 및 폐지에 대한 수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특히 모든 가입자들에게 혜택 하향표준화를 강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통사들의 마케팅을 제한적으로 묶기에 '거대 이통사들을 위한 정책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가 이번에 단통법 폐지라는 칼을 빼든 이유다.

'시장 경쟁'이라는 큰 그림 아래에서 5G 중간요금제 출시 등을 바탕으로 가계통신비 인하를 추구하는 정부 입장에서 이통사들의 마케팅 경쟁을 제한하는 단통법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 결과 선택약정할인은 존속시키되 단통법을 폐지, 이통사들이 마케팅 측면에서 더 활발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입자들의 혜택을 늘리겠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경쟁을 통한 시장 활성화, 이를 통한 소비자의 복리후생 증진'이라는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수 있느냐다.

우선 5G 시대가 열리는 한편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며 가계통신비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단통법이 가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갑작스럽게 단통법을 폐지할 경우 이통업계 전반에 대혼란이 시작될 가능성은 큰 편이다. 무엇보다 갤럭시 S24 등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단통법이 사라질 경우 2014년 이전의 대혼란이 갑작스럽게 시작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아는 사람은 많은 혜택을 받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일이 아무런 준비없이 또 닥쳐올 수 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해 단통법 폐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단통법으로 인해 경쟁이 사라지고 가입자들의 혜택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역시 단통법으로 인해 최소한의 질서가 바로잡힌 것도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각각의 장점만 취합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4이통사 선정에 속도를 내면서 이통3사의 강력한 마케팅을 전제로 하는 단통법 폐지를 추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이통3사와 제4이통사는 마케팅에 필요한 자금을 운용하는 수준이 크다. 이런 가운데 시장경쟁을 위해 제4이통사를 막 시작하면서 거대 이통3사에게 막강한 마케팅 권력을 허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알뜰폰 시장도 단통법 폐지에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알뜰폰 업계가 막강한 마케팅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이통3사에 대항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이통3사가 출혈경쟁을 불사하며 저가 마케팅에 돌입할 경우 알뜰폰 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통3사 알뜰폰 자회사들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편 정부의 이번 방침을 두고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통법 폐지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위해 국회와 논의하는 한편 소비자, 관련 업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변수들이 튀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총선을 앞두고 나온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자칫 단통법 폐지 논란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