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남아도는 집이 더 많아졌는데도 올해 지방의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이 지난해보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 경기가 더 침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 건설사들이 ‘지연 분양’이나 ‘후분양(아파트를 지은 뒤 공급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분양 일정이 잡힌 관련 물량이 늘어나자 이제서야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통계에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물량들을 포함하지 않은 채 신규 입주 물량만 집계하면 실제 공급량보다 과소 집계돼 일각의 ‘공급 부족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수도권 3개 지역(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의 주택보급률(일반가구 수 대비 주택 수 비율)은 2021년 107.4%에서 2022년 107.5%로 상승했다. 일반 가구 수에 비해 넘치는 주택 수가 1만1733채에서 1만1879채로 증가하면서다.

지난 20일 충남 천안시 백석동의 한 신축 아파트 상가 건물 앞에  미분양된 집을 계약금 일부만 내면 입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파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대규모 산업 단지가 위치해 있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신규 단지가공급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난 21일 충남 천안시 백석동의 한 신축 아파트 상가 건물 앞에 미분양된 집을 계약금 일부만 내면 입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파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대규모 산업 단지가 위치해 있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신규 단지가공급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하면 전 지역에서 2022년 100%를 웃돌았다. 전남(111.7%→112.4%)과 충남(109.9%→110.3%), 전북(108.9%→109.2%), 광주(104.5%→105.2%), 대구(100.7%→101.4%) 등 여러 곳에서 전년보다 상승했다. 경북은 세종시에 주택 공급이 본격화된 2015년을 빼면 지난 2010년(108.9%)부터 가장 최근에 통계가 집계된 2022년(113.2%)까지 10년 넘게 1위를 기록했다.

경북 등 지방의 주택 보급률 사정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지난해 1~11월 경북에서 준공된 주택은 8812채로 전년 동기(7422채)보다 늘었다. 가구가 감소하는 폭은 주택의 증가분을 앞지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이 지역에서 감소한 주민등록 세대수는 4만6168세대로 2021년(1만2873세대)보다 3.6배 더 늘었다. 가구 감소 폭이 주택 증가분을 앞지른 건 강원(4343세대, 127채)과 제주(5031세대, 596채)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에는 공급 과잉 우려도 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R114가 잠정 집계(지난 18일 기준)한 올해 지방 아파트 입주 물량은 18만2023채로 작년(17만3482채)보다 1만채가량 많다. 부산과 울산 등 5곳을 제외한 9개 지역이 대상이다. 특히 대전은 지난해 3423채에서 올해 1만1048채로 3배 이상 급증할 예정이다. 지방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공급되는 곳은 경북(2만4041채)으로 전년(8842채)보다 2배 넘게 증가한다.

백광제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은 “2021년 상반기까지는 경북과 대구의 분양 경기가 좋아 수주량이 굉장히 많았다”며 “이 때 수주한 사업들 중 공사를 시작한 것들은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어 ‘지금 분양하지 말고 좀 있다 분양 경기가 살아나면 그 때 지연 분양이나 후분양으로 돌리자’고 노선을 바꾼 사업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21일 충남 천안의 한 미분양 단지 각 세대에 불이 켜져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21일 충남 천안의 한 미분양 단지 각 세대에 불이 켜져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어 “보통 관련 통계를 내는 업체에선 입주 예정 일자가 잡힌 단지만 입주 예정 물량으로 집계한다”며 “그러면서 후분양을 하거나 입주가 지연돼 일정이 뒤늦게 잡힌 곳들이 나중에서야 통계에 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지방의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에도 지난 수년간 아파트 공급이 되레 늘어난 이유는 무자본 ‘갭 투기(전세 낀 주택 매입)’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자들의 실체는 실수요자들보다는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갭 투기를 한 원정 투자자들”이라며 “주택 경기가 좋았을 땐 이런 수요가 많아 건설사들이 분양 경기를 낙관해 지방에서 무더기로 분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밑도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른바 ‘공급부족론’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후분양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물량까지 포함하면 수도권도 사실상 ‘공급과잉’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 수석연구원은 “모든 공급 물량을 다 더하면 사실상 지방만 공급 과잉이 아니라 지방의 공급 과잉이 더 심한 상태”라며 “후분양 등을 빼고 공급 부족론을 얘기하면 현재처럼 일정이 잡힌 물량만 계산했을 때도 지방에서 공급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