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관광재단
사진=서울관광재단

편집자주: 코로나19 이전 국내 의료관광업계는 승승장구했다. 국내 의료진의 높은 기술력과 폭넓은 의료시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료비용이 입소문을 타며 그야말로 의료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상황이 180도 변했다. 국경이 막힌 사이 글로벌 의료관광업계 지형도가 바뀌며 엔데믹(풍토병화)에도 국내 의료관광업계의 회복세는 더디기만 하다. 의료관광업계에는 바뀐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기존에 이뤄놓은 지위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K의료관광이 현재의 어려움을 뛰어넘어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해봤다.

영화 ‘압꾸정’에는 ‘오아시스’라는 가상의 빌딩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오아시스는 성형과 뷰티 관련 산업이 15층 전층에 자리 잡은 꿈의 타워로 그려진다. 국내 의료관광이 잘 나가던 2019년까지 이런 병원들은 서울 2호선 강남역 일대와 3호선 압구정역 인근에 우후죽순 들어섰다.

K의료관광이 시작된 이유

다수 국가가 의료관광을 시작하는 이유는 부가가치 창출에 있다. 선진 국가로 거듭날수록 인건비가 오르는데 이는 각국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외국인 환자들은 ▲경제수준 격차가 심한 국가에서 자국 의료수준에 대한 불만족 ▲지나치게 긴 대기시간과 높은 가격 등을 의료관광 이유로 손꼽는다. 의료관광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져야 확대되는 것이다.

전문가 분석도 이와 같다. 임영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서비스혁신단 단장은 2020년 발표한 ‘한국의 의료관광 발전과정, 현황과 정책’에서 의료관광의 성장 배경을 ▲자국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한 불신과 긴 대기시간 등으로 인한 서비스 불만족 ▲의료비 부담의 증가 ▲금액 대비 다양한 의료서비스 선호 ▲의료기술 수준 상향평준화 ▲미디어 및 정보통신의 발달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역할 강화 등 총 6가지로 분석했다. 보다 저렴한 의료비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싶은 환자와 미래성장동력 확보가 절실한 각국 정부의 필요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다.

실제 2000년대 초반 아시아 국가에서 성공사례가 나왔다. 바로 싱가포르와 태국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부상으로 물류‧금융‧관광산업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또 다른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의 의료서비스 허브화’ 정책을 펼치며 샴쌍둥이 분리수술 등으로 의료 역량을 홍보하며 의료관광사업 홍보에 나섰다. 태국도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병원 경영 악화에 따라 고부가가치 산업 필요성이 대두됐다. 선진국 대비 월등히 낮은 의료비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자국의 관광 서비스를 엮어 의료관광 서비스를 개발해 성과를 냈다.

이들의 성공사례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2009년 본격적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를 허용했다.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의 편의를 위해 사증(비자) 발급을 간소화한 것이다. 메디컬 비자(M)를 신설해 등록업체(의료법상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 유치업자 등) 초청을 받은 외국인 환자에 발급했다. 메디컬비자는 통칭 의료관광비자로 불리며 단기로는 ▲의료관광비자(C-3-3, 90일 이하) ▲장기로는 치료요양비자(G-1-10, 1년 이내)로 구분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만 해도 한국은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눈부신 의료관광 발전을 이어갔다. ‘한국의 의료관광 발전과정, 현황과 정책’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환자수는 2009년 6만명으로 시작해 연평균 22.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외국인 누적 환자수도 2015년 100만명에 이르렀고, 2018년에는 200만명을 넘어섰다.

한해 100명 이상의 환자를 유치한 국가수도 2018년 190개국으로 2009년 139개국 대비 37.0% 증가했다. 동기간 국가별 환자 비중은 미국(23.2→11.9%)과 일본(21.6→11.2%)에서 줄어들었다. 반면 진료과별 외국인환자는 러시아, 몽골, 카자스흐탄, 베트남, 태국 등으로 확대됐다. 무엇보다 중국 환자 비중이 급증(7.8→31.2%)한 점이 눈에 띈다.

K의료관광=성형관광…적정한 ‘비용+서비스’ 주효

국내 의료관광의 별칭은 알려진 바와 같이 ‘성형관광’이다.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한국 드라마, 영화 등으로 K컬처를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 연예인 같은’ 외모를 동경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환자의 호응도 한국 성형이 영역을 넓혀가는 데 한몫했다. 위생적인 환경과 체계적인 관리, 만족스러운 결과는 입소문을 타고 또 다른 외국인 환자 유입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외에도 성형수술은 여러모로 의료관광에 적합한 진료과목으로 분류된다. 먼저 외국인 환자 진입장벽이 낮다. 성형수술은 치료로 분리하자면 상대적으로 목숨의 위협이 적은 경증 치료에 속한다. 암이나 뇌졸중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중증질환 보다 환자 입장에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만큼 기존 의료관광업계와 경쟁이 용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K성형관광이 각광 받은 이유로는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성형수술은 대부분 국가에서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 과목이다. 환자 본인이 치료비를 대부분 부담해야 해 합리적인 비용을 선호하게 된다. 국내 성형수술은 선진국과 기술력 격차는 거의 없는 반면 상대적으로 비용은 낮고 서비스는 월등해 단기간에 고속성장이 가능했다.

외국인 환자 중 성형‧피부과를 찾는 비중 증가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2022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통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성형‧피부과 진료과별 외국인 환자수는 집계가 시작된 2009년 8866명에서 2022년 8만2374명으로 급증했다. 동기간 진료과별 비중도 13.7%에서 28.1%로 14.4%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료관광업계 관계자는 “해외 의료관광 콘퍼런스나 포럼에 참여해 한국에 대해 물으면 ‘성형수술’을 잘하는 국가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진료과목에서 확실한 입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