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의 메타가 초거대AI로 간다. 경량화, 맞춤형 AI 전략을 통해 틈새시장을 노리던 기존의 방향성을 틀어 거대한 힘의 충돌이 벌어지는 전장으로 진입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빅테크인 메타가 초거대AI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사업 초반 경량화, 맞춤형 AI를 추구한 것부터 어색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글로벌 AI 시장의 최전선이 초거대AI로 좁혀지는 것이 확실시된 가운데 '방어형'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AI 시장도 플랜B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사진=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사진=연합뉴스

AGI 시대로 간다...메타, 초거대AI로 
메타가 초거대AI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엔비디아 H100을 대거 매입할 것이라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18일(현지시간) "H100을 올해 말까지 34만개 이상 확보할 것"이라며 "메타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 제작을 위해서는 AGI를 지향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내 AI연구그룹 'FAIR'와 'GenAI'를 통합할 계획도 발표했다.

H100 가격은 대당 2만5000달러에 달한다. 그런 이유로 마크 저커버그가 계획대로 34만개를 확보한다면 약 9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전망이다.

메타는 이미 15만개의 H100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규모 추가 H100 매입 계획을 밝히자 "초거대AI 시장에 뛰어드는 신호탄"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사실 메타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연합, 구글 등이 초거대AI 경쟁을 펼칠 당시 맞대결을 피하고 경량화, 맞춤형 AI 전략을 택한 바 있다. 실제로 메타는 라마를 최초 공개하며 파라미터의 숫자를 70억개, 130억개, 330억개, 650억개로 나눴다. 초거대AI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파라미터지만 그 단위를 세분화시켜 가볍고 빠른 AI 시장을 정조준했다.

이미 오픈AI와 구글의 초거대AI가 글로벌 빅테크 시장을 강타한 가운데 이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일종의 틈새, 특화 전략을 꺼내든 셈이다. 기존 초거대AI와 대결하기에는 부담이 컸고, 무엇보다 메타는 메타버스 비전을 추구하면서 상대적으로 AI 트렌드를 기민하게 따라가지 못했다. 꾸준히 AI 인프라를 구축했다지만 냉정하게 말해 초거대AI 레이스의 후발주자였기에 그나마 승산이 높은 틈새를 택한 셈이다.

로드맵은 착실하게 진행됐다. 메타버스 측면에서는 MS와 연대하며 AI와 메타버스의 결합을 유기적으로 끌어냈고, 라마2에 이르러 퀄컴과의 연대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 

퀄컴이 강력한 하드웨어 컴퓨팅 파워로 온디바이스AI 전략을 극적으로 키우는 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 및 AI 트렌드 등을 거치며 퀄컴은 언제나 자신들의 스냅드래곤 플랫폼이 하드웨어 그릇으로 맹활약하기를 원했고,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온디바이스AI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중이다. 그리고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삼아 무한에 가까운 기능을 자랑하는 기존 초거대AI가 아닌 경량화, 맞춤형 AI로 분류되는 라마2는 제한적이지만 초개인화 AI 서비스가 가능한 온디바이스AI와 '찰떡궁합'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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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전체 AI 시장이 조금씩 초거대AI 경쟁으로 좁혀지며 시작됐다. 오픈AI가 샘 올트먼 CEO 퇴출 및 복귀를 기점으로 AGI 전반에 강력한 동력을 창출하는 한편 제미나이 등을 공개한 구글의 대반격이 시작되며 판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메타도 조금씩 기류가 변했다. IBM, 인텔, 오라클을 비롯해 사일로 AI, 스태빌리티 AI 등 스타트업은 물론 예일대, 코넬대 등 대학과 항공우주국(NASA), 국립과학재단(NSF) 등 미국 정부 기관까지 연대한 AI 동맹(AI Alliance)이 출범한 가운데 이에 합류, 거대한 진영싸움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더버지는 "AI 동맹 참여 기업들은 자체 AI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나 챗 GPT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어렵다고 봤다"면서 "AI 동맹은 폐쇄형 오픈AI의 대척점에 있는 오픈소스 AI 진영"이라 평가했다. 그 연장선에서 메타도 조금씩 초거대AI로 대표되는 거대한 전쟁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뜻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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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AI는 어쩌나
메타가 경량화, 맞춤형을 추구할때나 H100 34만개 확보를 선언할때 모두 AI 오픈소스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현재의 메타는 경량화, 맞춤형 AI 기조를 버리면서도 AI 동맹이 추구하는 오픈소스의 기조를 유지하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메타가 이제 초거대 AI 전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타의 정책적 결단이 시사하는 것은 명료하다. 생성형 AI 시장이 발전하며 AI 서비스 시장이 동시에 성숙하는 등 시장의 진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전체 AI 시장의 패권전쟁은 초거대 AI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시장이 빠르게 고도화되며 2단계, 3단계를 바람처럼 지나 시장의 세분화가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전장은 업계의 뿌리라 볼 수 있는 초거대 AI라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AI 시장의 로드맵에도 일부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한국 AI는 방어전에 치중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로 승부수를 띄운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한국어에 최적화한 국산 생성형 AI를 내세운 네이버는 오랜 세월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며 쌓은 한국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삼별초가 디려고 한다. 

초거대AI 전략에 있어 한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때문에, 오히려 특성있는 AI 전략에 유리하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AI 기술 총괄은 "비슷한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말 그대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많은 비용을 쓴다면, 네이버는 특화 전략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초거대 AI 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사이 네이버는 '한국'에 집중한 AI 기초체력을 쌓은 후 이후 벌어질 방어전에 주력한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쩐의 전쟁' 자체가 승산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으나, PC 시절 세계가 구글의 공습에 무릎을 꿇었으나 한국형 포털로 방어전에 성공한 네이버 성공전략에 대한 믿음도 강한 편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위험하다.

PC 시절 네이버가 구글의 공습에 맞서 한국 포털 시장을 지킨 것은 사실이다. 지식인과 같은 핵심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국 맞춤형 전략으로 승리했다. 이어진 모바일 시대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들을 출시해 네이버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역시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PC 시대 당시 구글은 수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다 한국에서만 네이버에 밀려 패배했고, 네이버는 오로지 한국이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총력을 다해 구글의 공습을 막아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역의 경계가 뚜렷했기에 가능했다. 전쟁이 '제한적으로' 치뤄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AI 시대는 어떨까. 국경과 경계는 의미가 없다. 구글이 개발자 대회에서 바드의 진화를 선언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정조준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전쟁 자체가 제한이 없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시공간을 파괴한다.

무엇보다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며 AI는 단순한 인터넷의 서비스이자 도구가 아니라 운영체제로 변하는 중이다. 시장이 성숙되며 파생 서비스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중요도는 운영체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메타가 H100 34만개를 쓸어담기로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어형 AI를 추구하는 한국 AI가 위험한 이유다. PC 시대 한국을 잘 이해해 승리한 제한적 성과를 경계 자체가 없는 AI 시대의 패권다툼에서 재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파국이 올 수 있다. 게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빅테크와 '쩐의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현실적 우려, 나아가 신박한 플랫폼 및 데이터 규제로 일관하는 정부의 기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방어에 특화된 AI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방어형 AI 전략 자체에 대해서는 새로운 고려가 필요하다.

유영상 SKT CEO. 사진=SKT
유영상 SKT CEO. 사진=SKT

다행히 한국 AI가 모두 방어형은 아니다. 수십년간 축적해 온 양질의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자체 LLM을 고도화하는 ‘자강(自强)’과 앤트로픽(Anthropic), 오픈AI, 코난테크놀로지 등 굵직한 AI 플레이어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협력(協力)’의 라인으로 AI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SKT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가 다년간 확보한 한국 포털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SKT는 다년간 확보한 통신 데이터가 있다. 다만 AI 길은 다르다. 네이버는 방어형을 택했고, SKT는 과감하게 투트랙을 택했다. 과거 카카오의 ICT 기술을 스토커에 가깝게 답습하던 아마추어적 모습을 보이던 SKT였으나, AI 전략에 있어서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사고의 진화가 필요하다. 메타의 변심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