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수난을 겪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를 내어준 후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의 기초체력이 워낙 탄탄해 거대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지만, 애플의 규칙이 서서히 무너지는 장면은 심상치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은 지금까지 강력한 시장 장악력으로 자사의 규칙을 시장에 강제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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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결제 열어야"
미국 대법원이 16일(현지시간) 에픽게임즈가 애플에 제기한 두 건의 반독점 소송에 대해 양측이 각각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의 지루한 법정공방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에픽게임즈는 2020년 8월 애플이 30%에 달하는 앱스토어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에 반발, 이를 우회해 결제할 수 있는 별도의 외부결제창을 열었다.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며 고객들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외부결제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애플은 에픽게임즈의 행보가 앱스토어 정책 위반이라 지적, 포트나이트를 퇴출시키고 말았다.

에픽게임즈는 강하게 반발, 애플 앱스토어 규정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심과 2심은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힘을 실었으나, 외부결제를 열지 않은 것은 경쟁 제한 요소가 있다고 봤다. 이어 대법원이 양쪽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사실상 에픽게임즈의 승리, 애플의 패배로 여겨진다. 당장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는 SNS를 통해 “이제 개발자들은 법원이 판결한 권리를 행사해 미국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격을 웹에서 알려줄 수 있다”면서 사실상 승전보를 울렸다. 폐쇄적 생태계를 시장에 강제하며 승승장구하던 애플제국의 기둥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 사진=연합뉴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 사진=연합뉴스

"반독점 소송 휘말릴 것"
애플이 외부결제 허용으로 체면을 구긴 가운데, 더 큰 폭풍을 마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르면 오는 3월 반독점 소송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미국 법무부가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제한을 가한 후 경쟁업체들의 효과적인 경쟁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잡았다고 보도했다. 스포티파이 등 몇몇 기업이 제기한 문제제기에 미국 법무부가 반응한 셈이다. 이미 법무부와 애플 변호사들이 해당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3차례 만났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나오고 있다. 

애플이 반독점 소송에 직면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구글의 경우 '사업부 분리'까지 염두에 둔 강경한 주장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상황에서 애플 생태계도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가뜩이나 에픽게임즈와의 소송 과정에서 외부결제 허용을 받아들인 상태라, 반독점 소송까지 겹쳐질 경우 파국에 가까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애플워치의 특허권 침해와 관련한 당국의 수입 금지 명령에 곤혹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위태롭다. 강력한 권력으로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점과, 반독점 심사 자체는 일맥상통한 키워드기 때문이다. 애플의 위기다. 무엇보다 규제당국 및 업계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체 자사 플랫폼의 존재감만 믿고 '마이웨이'를 가던 애플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다.

애플워치. 사진=연합뉴스
애플워치.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서 이례적인 할인판매
콧대높은 애플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애플은 15일 중국에서 최신 기종인 아이폰15 시리즈의 가격을 500위안(70달러) 인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500위안(70달러)의 할인 폭은 기종에 따라 6∼8%에 해당되며, 애플의 가격 할인 행사는 그 자체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은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눌렀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 당국이 공무원들에게 아이폰 금지령을 내렸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화웨이 스마트폰에 철저히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온 애플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 답지않은' 이례적인 할인판매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프리미엄의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격정책을 고수하던 애플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평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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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 무너진다
애플은 강력한 시장 장악력으로 모든 규칙을 자신의 뜻대로 정하는 기업이다. 모든 규격은 애플이 원하는 대로, 모든 생태계는 애플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그 뒤에는 강력한 애플팬덤이 존재했고, 애플은 자신들의 규칙을 세계의 규칙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묘하게 변하고 있다. 여전히 강력한 장악력을 자랑하지만 그 주도권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앱스토어 생태계는 외부결제 허용으로 구멍이 뚫렸고, 무자비한 플랫폼 존재감도 글로벌 빅테크 시장을 강타한 '플랫폼 규제론'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이례적인 할인판매까지 추진하는 중이다. 애플을 지금까지 지탱해온 딱딱하고 강력하며 무자비한 권력이 서서히 형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예외는 있다. 특히 한국 시장이 대표적이다. 여전히 '깜깜이 AS'를 고수하며 한국 아이폰 팬덤을 무시하는 처사를 반복하고 있다. 숙적인 삼성전자의 안마당인 한국에서만큼은 '애플의 규칙'을 강제해도 된다는 식의 전략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변화의 기류가 엿보인다. 한국에 애플스토어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한편 조금씩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애플의 규칙이 예전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각에서 유난히 애플에 저자세인 한국 ICT 시장이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애플은 비전프로 등을 통한 공간 컴퓨팅의 새로운 비전으로 눈을 돌리는 등 여전히 규칙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영토도 탐하고 있다. 아직 애플의 게임이 끝나지 않은 이유다. 무너지는 규칙에 쓸려갈 것인지,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