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로 들어가는 홍해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친이란 후티반군을 3년만에 테러단체로 재지정하자 홍해를 항해하던 미국 화물선이 17일(현지시간)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의 군사분야 대변인인 야흐야 사레아 준장이 직접 사전 녹화한 영상을 통해 미국 선박 '젠코 피카르디'를 '다수의 적절한 발사체'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홍해에서 벌어지는 무력공방이 가열되며 글로벌 물류대란이 벌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사태 장기화 여부 및 물류대란의 지속 가능성, 나아가 해운업계의 반사이익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업계는 수출지향 국가인 한국물류 시장에 미칠 여파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해를 지나는 상선. 사진=연합뉴스
홍해를 지나는 상선. 사진=연합뉴스

치열한 장군멍군 "답이 보이지 않는다"
2014년 예맨 내전이 벌어지며 후티군이 수도 사나를 정복,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합법정부를 무너트리며 비극의 씨앗이 잉태됐다. 후티 반군이 역사의 전면에 서며 끔찍한 내전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후티 반군이 예멘 전역을 장악할수록 끔찍한 전쟁범죄가 자행되며 수 십만의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결국 수니파의 맹주이자 무너진 합법정부를 지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움직였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이 2015년 전격적으로 예멘을 침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8년이나 끌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2022년 양측의 휴전이 체결됐으나 6개월만에 파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우디와 후티 반군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가운데 산발적인 전투는 계속됐다. 후티 반군은 드론을 통해 사우디 유전시설을 정밀타격했고 사우디도 반격에 나서는 패턴이 반복됐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반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기 위한 연대속에 이스라엘과 수니파 국가들의 연대가 이합집산을 반복할수록 사우디와 후티 반군의 신경전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가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국의 모호한 태도에 실망해 인플레이션 당시 바이든 행정부와 날을 세우는 등, 상황은 점점 시계제로 상황에 빠져들었다.  

후티 반군. 사진=연합뉴스
후티 반군.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후티 반군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한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지며 서방의 경계가 느슨해지자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공격하거나 납치했기 때문이다.

피해가 커지자 미국 등 서방도 대응했다. 즉각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함대를 결성한 후 지난 12일부터 후티 반군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은 전혀 물러서지 않고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 상선의 피해가 컸다. 후티 반군은 지난 15일에 마셜제도 선적의 미국 회사 소유 선박 'M/V 지브롤터 이글호'에 탄도미사일까지 쐈다.

미국도 공세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17일 후티 반군을 '특별지정 국제테러리스트'(SDGT·Specially Designated Global Terrorist)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현지 구호활동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국제연합의 권고에 따라 후티 반군에 대한 SDGT 지정을 철회한지 3년만의 일이다. 뒤이어 미 중부사령부를 중심으로 후티 반군의 요새에 미사일을 대거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도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SDGT 재지정 단 하루만에 미국 상선 젠코 피카르디를 공격하며 기세를 올렸기 때문이다. 당분간 극적인 상황정리가 요원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국제외교가에서는 이번 홍해 사태에 시아파와 수니파, 이란과 사우디, 후티 반군과 미국 등 서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이 멈추지 않으면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는 등, 이번 홍해 사태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연결하며 일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참석을 계기로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이 중단돼야 역내 다른 위기와 공격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이들은 없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부터 홍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며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는 국적의 상선들도 무차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홍해 사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홍해 인근을 지나는 상선. 사진=연합뉴스
홍해 인근을 지나는 상선. 사진=연합뉴스

물류대란 공포 커진다...해운은?
팬데믹 종료 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전세계 물동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홍해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자 물류대란이 벌어지는 중이다.

막대한 손해에도 우회항로를 찾으려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퀴네앤드나겔은 홍해와 연결된 수에즈운하로 향하던 컨테이너선의 90%를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옮겼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는 한편 이동시간도 평소 대비 10일이나 더 걸리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해운업계다.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있으나 해운업계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어 경기침체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지난해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팬데믹 여파를 정면으로 받은 가운데 간신히 살아나는가 싶었으나, 여전히 재고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며 시장 자체가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의 경우 전년 대비 절반으로 깎일 지경이었다.

여기에 팬데믹 시기 발주된 선박의 인도시기가 도래하며 선방의 공급과잉이 벌어지자 해운업계의 활력은 더욱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해 사태가 의외의 빛이 되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수에즈 운하도 여전히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가운데 홍해 사태로 운임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아시아-유럽 운임 요금이 홍해 사태 이후로 2배로 급등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해상운송업체 오엘유에스에이(OL USA)의 앨런 베어 CEO는 "(이번 사태로) VOCC(자체 해양 선박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해운회사)의 수익이 수십억 달러 올라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12월 22일에는 1254.99를 기록했으나 올해 1월 12일 2206.03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19일 발표되는 지수는 더욱 고공행진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해운사 MSC는 중동과 남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운송비를 내달부터 추가 인상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홍해 사태가 해운업계에 무조건적인 순기능만 제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 물류 호황에 따른 해운업계 상승 동력 창출이 아닌, 불확실한 홍해 사태에 따른 일시적 충격으로 해운업계가 반사이익을 본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순기능의 확산이 아닌 돌발상황에 따른 호재는 오래갈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렸다. 지금의 해운업계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각 국이 해상 탄소규제에 적극적으로 돌입하며 그 부담이 해운운임에 반영되는 추세도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17일 보고서를 통해 "단기 수요 급증이 유발된 혼란 발생 가능성도 있으나, 2024년 컨테이너선 수요 증가율이 공급을 크게 밑도는 만큼 (해운운임에) 장기간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민중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과장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에서 미국과 영국이 글로벌 물류의 동맥인 홍해를 위협해온 친이란 예멘반군 후티의 근거지에 폭격을 가한 것과 관련, 홍해 인근 해역을 지나는 우리 선박의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민중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과장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에서 미국과 영국이 글로벌 물류의 동맥인 홍해를 위협해온 친이란 예멘반군 후티의 근거지에 폭격을 가한 것과 관련, 홍해 인근 해역을 지나는 우리 선박의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홍해 사태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반대편에서는 2월 내 잦아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보고서를 통해  "춘절(중국의 설날) 전 밀어내기 효과가 사라지고 수요가 소강 상태에 이르는 2월 이후부터는 시장이 안정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는 일단 '제한적일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수출 물품의 선적과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도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으로 우회해 자동차 수출에 나선 현대차 등 국내 4개 완성차 업체들도 큰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도 항공 운송 비중이 98%에 달해 역시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되며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올라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 파도가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매각 이슈에 휘말린 HMM 등이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해운업계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 지향적 한국경제에는 심각한 타격이 벌어질 수 있다. 호라므즈 해협에서의 위기감도 커지는 상황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