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률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대형은행 4곳 기준(우리은행은 4월부터 상품의 만기도래) 50.7%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가운데 올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는 9조2000억원. 현재의 손실률을 적용하면 4조 5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홍콩H지수 ELS와 키코(KIKO: knock-in knock-out 옵션을 기반으로 한 구조화파생상품) 간 유사성이 많은데다 판매사 측 법률대리인들이 키코 판결을 참고해 변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 십수년된 키코 사태 관련 손해배상 판결문을 한번 살펴봤다.  

2007년 이전 중소기업들이 수출 또는 대기업 납품으로 받은 대금의 환헤지를 위해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 이후 2008년 당시 미국 투자은행(IB) 서열 4위, 5위였던 리먼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가 연이어 파산하며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치솟았고 키코 상품에 가입한 738개 중소기업이 3조2000억원(2010년 10월 금융위 발표기준)의 손실을 입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을 공급하는 소위 잘 나가던 1차벤더들도 키코 손실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피해 기업들은 키코 계약(통화옵션계약) 자체가 애시당초 성립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계약취소(계약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계약해제)' 주장과 함께 '계약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 등)'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외 기업회계기준 위반, 판매사(은행) 측 이해만을 반영한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점 등 여러 근거를 내밀며 계약취소를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기업들의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채, 지난 2013년 대법원은 키코 계약이 유효라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기업에 대해선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가처분 및 1심·2심 등에서 피해기업들은 일부 승소 심지어 전부 승소(손해배상액 전부 인용) 판결을 받았지만 2013년 대법원은 '금융기관이 장외파생상품이 마이너스 시장가치를 갖는 점을 설명할 의무가 없다', '은행이 장외파생상품 거래의 상대방으로서 일정한 이익을 추구하리라는 점은 시장경제의 속성상 당연하여 누구든지 이를 예상할 수 있다' 등의 판단을 내리며 원심을 뒤집고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키코 사태가 발생한지 10년이 훌쩍 넘어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도산하고 난 이후인 2020년 판매 은행들은 '법률적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법률적 책임이 부여된 배상은 아니다'라는 명분과 표현으로 기업들에게 '보상'을 했다.

보상액이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2019년 12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피해 기업 4곳의 손실액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한 이후 실제로는 20% 안팎의 보상금을 제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키코 사태,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및 회사채 사태, 2018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그리고 2023년 홍콩 ELS 사태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단어는 불완전판매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중요사항을 누락했거나 허위·과장 등으로 금융소비자가 오인하도록 상품을 판매한 사례를 뜻한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불완전'이라는 건지 판단이 어렵고, 이에 세부적으로는 다툴 여지가 수두룩하다.

특히 개별주식·주가지수(ELS), 금·은·원유·환율(DLS·DLF) 등 구조화 상품에 있어서의 기초자산의 방향성 자체도 일반 투자자들이 분석하기 어려운 마당에 기초 자산의 가격 변동을 헤지해야하는 전문투자자들을 상대로 풋옵션을 사고 파는 계약을 설정한 복잡한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그냥 ELS·DLS·DLF는 하이리스크 금융상품이고 원금보장이 안된다고 고지하기만 하면 이러한 복잡한 상품을 팔아도 되는 걸까?

구조화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설명의무의 범위와 정도와 관련, 키코 사태 때의 여러 소송 가운데 한 2심 판결문에 적힌 재판부의 판단이 유독 눈에 띈다. 

"동일한 거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상품과의 구조적 차이점과 당해 상품을 선택할 경우 다른 상품에 비하여 더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더 부담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의 내용과 정도는 어떠한지 등 투자자 자신의 이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주요한 내용에 관하여는 ‘투자자가 그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투자업자의 인식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여야 한다."

내가 투자자라면, 속이 참 후련할만큼 세심하게 살펴봐 준 재판부에게 감사할 것 같다.

반대로 내가 판매 은행이었다면? "금융상품을 하나하나 판매할 때마다 '판매자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상품을 설명하는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반문을 참기 어려울 듯 하다.

피해 기업을 넉넉히 살펴봐 준 것 같은 해당 재판부의 판결조차 청구액(청구취지) 110여억원 가운데 67여억원 배상, 원고 부분 승소였다. 

금융당국은 이번 홍콩 ELS 사태를 계기로 구조화 금융상품 판매의 허용 범위를 포함해 근본적으로 깊이 고심해야 한다.

파생결합증권 발행·운용 현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감독해 온 금융당국의 책임은 당연하거니와, 잊을만하면 터지는 불완전판매 사태를 이젠 종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화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지수연동예금(ELD)처럼 원금이 보존되고 예금자 보호대상도 되는 안전한 상품만을 판매하도록 제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뱅커스 트러스트가 판매한 이자율 기초자산 파생 상품) 독일(도이치은행이 위생품 제조 중소기업 `일레 파피에르`에 판매한 이자율 스왑 상품), 인도(인도 준비은행 'RBI'가 판매한 파생상품), 일본(은행들이 1만900개 기업에 판매한 외환파생상품) 등 해외 유사사례에서 설명의무 위반, 계약해제 뿐 아니라 형사적 책임인 '사기'까지 인정된 사례가 많다.

그렇다고 이같은 해외 사례를 우리나라에도 무조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사하다는 주장이 일부 있을 뿐, 상품의 개발·발행ㆍ판매의 각 단계에서 해외 사례가 우리나라와 같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판매사의 주주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 역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