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노라인 보이쇼츠 팬티. 출처=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 노라인 보이쇼츠 팬티. 출처=신세계인터내셔날

남녀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 패션 시장이 커지고 있다. 젠더리스를 표방한 의류, 향수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물론 성별 경계가 사라진 패션 매장들도 속속들이 생겨나는 모습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는 여성용 사각팬티(보이쇼츠) 12종을 판매 중이다. 자주는 2020년 1월 여성용 보이쇼츠 2종과 트렁크 1종을 출시한 이후 관련 제품군을 늘려왔다.

여성용 사각팬티는 여성들이 남성용 트렁크를 직접 구입해 입어보고 남긴 착용 후기들이 SNS에서 유행한 것에 착안해 기획됐다. 삼각팬티 착용으로 인한 소위 ‘Y존’ 압박이 없고 속바지를 입지 않아도 스커트나 원피스 착용이 가능해 여성용 사각팬티 제품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올해로 출시 3년차를 맞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젠더리스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샌드사운드’도 순항 중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샌드사운드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0% 급증했다. 샌드사운드는 18세~29세 Z세대를 겨냥하는 브랜드로 ‘코위찬 가디건’, ‘페어아일 스웨터’ 등의 상의류가 판매량 상위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LF 헤지스 유스 캐주얼라인 ‘히스헤지스’는 여성 구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 히스헤지스의 여성 고객 구매건수는 전년 대비 175% 늘었다. 히즈헤지스 남녀 구매 비중은 7:3 수준으로 남성이 주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남성용으로 기획된 히스헤지스 ‘캐너비 발마칸 코트’에 여성 소비자들이 호응을 보내는 분위기다. LF에 따르면 여성 고객들이 ‘오버핏’ 연출을 위해 해당 제품을 가장 작은 사이즈로 구입했다는 내용의 구매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효리 패딩’으로 입소문을 탄 LF 리복의 ‘펌프패딩’은 여성보다 남성 구매 비중이 높은 편이다. 펌프패딩 남녀 구매비중은 6:4를 기록하고 있다. 리복이 여성 모델을 기용해 광고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특히 남성 고객들이 블랙, 화이트 색상의 펌프 패딩을 선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젠더리스 소비 트렌드 확산으로 기존 남성복 브랜드들이 여성복을 새롭게 선보이거나 반대로 여성복 브랜드에서 남성용 의류를 내놓는 현상도 눈에 띈다. 삼성물산 패션부분 글로벌 브랜드 ‘준지’는 2019년부터 여성 라인을 운영 중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여성복 브랜드 ‘스튜디오 톰보이’도 같은 해 맨즈 라인을 내놨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의 액티브웨어 브랜드 젝시믹스는 맨즈라인 운영에 공들이고 있다. 젝시믹스는 2015년 여성 요가복 브랜드로 첫 발을 뗐으며 2020년 맨즈 라인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젝시믹스 맨즈라인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9% 뛰기도 했다.

향수 분야에도 젠더리스 바람이 불고 있다. 프리미엄 향수로 통하는 니치 향수를 중심으로 ‘여성=플로럴(꽃향)’, ‘남성=우디(나무향)’ 공식에서 벗어나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향수들을 꾸준히 선보이는 추세다. 비누향이 특징인 바이레도의 ‘블랑쉬’ 제품이 남녀 모두가 선호하는 향수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의류매장서 성별 구분 사라졌다…젠더리스 대응 위한 조직 재편 ‘눈길’

나이키 스타일 홍대 매장 전경. 출처=나이키코리아
나이키 스타일 홍대 매장 전경. 출처=나이키코리아

젠더리스 패션 유행에 발맞춰 의류 매장들도 변화를 택했다. 나이키코리아는 ‘나이키 스타일 홍대’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해당 매장은 의류를 성별이나 사이즈로 나눠 진열하지 않는 대신 비슷한 색상이나 스타일별로 패션 의류 아이템들을 모아 보여준다.

현대백화점 더 현대 서울 3층은 ‘어바웃 패션’이라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남성, 여성의류 매장을 별도의 층으로 구분해 놓은 일반 백화점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남녀 의류 브랜드들이 한데 모여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젠더리스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패션상품본부 조직재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기존 남성패션팀, 여성패션팀, 영패션팀이 사라지고 트렌디팀·유스팀·클래시팀·액티브팀으로 조직이 새롭게 꾸려졌다. 클래시팀은 전통 브랜드를, 트렌디팀은 신명품 등 최신 유행 브랜드를 담당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젠더리스 트렌드는 오래된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나’에 주목하는 소비 경향이 확산하고 있는 대목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남에게 잘 보이기보다 스스로가 만족하는 패션이 중요해진 시대인 만큼 패션과 뷰티업계에서 앞으로도 성별 구분이 없는 제품들이 계속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