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포스터.
전시포스터.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3~2001)의 특별전이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기창은 한국화의 거장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그는 전통 한국화에 머물지 않고 시대 변화에  맞춰 한국화에 입체주의, 추상화의 요소 등을 넣은 작품들을 제작하는 등 끊임없이 한국화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8세에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게 되면서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애가 있지만 화가적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마지막 왕실 화가였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인 이묵헌(以墨軒)에 데려가 그림을 배우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김기창은 미술계 신진작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속 입선을 하며 일찌감치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당 김은호의 영향을 받은 김기창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붓 필치, 인물의 사실적 묘사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국 전통 산수화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화풍으로 ‘청록산수’와 ‘바보산수’ 시리즈를 내놓아 국내 동양미술계를 주도하기도 했다.  

김기창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만원 권 지폐에 들어간 세종대왕 초상화 도안이 있다. 이는1973년 위인들의 표준 영정 제작에 참여하여 세종대왕을 포함해 김정호, 을지문덕 등을  그린 것 중 하나다. 

‘아기 예수의 탄생’. ⓒ 서울미술관
‘아기 예수의 탄생’. ⓒ 서울미술관

이번 특별전에는 김기창의 대표 연작 중 하나로 1952년에서 1953년에 제작된 ‘예수의 생애’가 전시되고 있다. ‘예수의 생애’는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들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30점의 성화 연작이다.

갓 쓰고 도포 입은 한국인 얼굴의 예수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옷차림을 한 인물들이 한옥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품들은 전통적인 풍속화풍을 갖고 있는데, 그림 속 인물마다 가느다란 세필붓으로 표정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다채로운 색깔로 채색되는 등 김기창만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예수의 생애’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군산으로 피란 갔을 당시 제작되었다. 김기창은 우리 민족의 비극과 예수의 고난이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최후의 만찬’. ⓒ 서울미술관
‘최후의 만찬’. ⓒ 서울미술관

‘예수의 생애’ 연작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변화, 동양과 서양 사이를 과감하게 넘나들면서 예수의 일생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종교미술과 한국미술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연작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전반의 분위기, 열두 제자의 얼굴 표정과 손동작 등 전반의 설정은 그대로 차용하되,  갓 쓰고 도포 입은 예수를 등장시킨다.

구도 또한 다르다. 제자들을 일렬로 길게 배치하지 않았다.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음식상을 놓고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다. 일부 제자는 기둥에 가려지고, 서있는 제자도 있는 등 화폭 속은 자연스럽다.

‘예수의 생애’는 2017년 독일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종교개혁 500년: 루터 이펙트(The Luther Effect)’ 기획전에 초대되어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승천’. ⓒ 서울미술관
‘승천’. ⓒ 서울미술관

특별전은 4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은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초점을 맞춘다. ‘수태고지’와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 박사들의 경배’를 포함 6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수태고지란 혼인 하기 전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임신(수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고지)한다는 내용이다. 김기창의 수태고지에는 천사 대신 선녀가 나온다.

두 번째 섹션은 ‘공(公)생활의 시작과 표정’으로 ‘제자들을 만남’, ‘오천인을 먹이다’, ‘물 위를 걷다’ 등 8점이 소개돼 있다.

세 번째 섹션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함한 5점이 있고, 마지막 섹션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은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박히사’ 외 9점이 있다.

서울미술관이 위치한 석파정(石坡亭)은 외국 선교사들을 가혹하게 박해했던 흥선대원군이 쉬던 별장이다. 전시는 사전예약제다. 방문 전에 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해야 한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