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출처=연합뉴스
오후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출처=연합뉴스

정부가 민간자금 622조원을 들여 경기도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로 전·후방 산업에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팹리스 기업들의 투자 발표 부재와 후공정 산업의 충분치 못한 지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 판교·수원 등 경기 남부 지역에 반도체 기업과 관련 기관이 대규모로 들어선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47년까지 622조원을 들여 총 16개의 생산시설(생산시설 13개, 연구시설 3개)을 짓는다. 

정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최첨단 메모리와 2나노미터(nm) 이하 공정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기지가 조성되도록 민간 투자를 집중 지원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첨단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생산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와 소부장(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회사) 기업을 함께 육성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할 방침이다. 

정부는 소부장 기업 육성을 위해 업계 숙원사업인 소부장 실증 테스트베드를 조기에 구축하기 위해 국고 3930억원과 지방비 730억원을 작년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에 신청했고, 올해 소부장 R&D(연구개발)를 지원하고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R&D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각각 680억원, 2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팹리스 사업은 개발자간 아이디어 공유와 신기술·제품 개발 지원을 위해 판교에 팹리스 집적단지를 조성(2026년 착공)하고, 향후 3년간 24조원 규모의 대출·보증을 우대 지원하는 ‘반도체 생태계 도약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또 정부는 작년 3000억원 규모로 조성한 반도체 생태계 펀드 중 최대 700억원을 올해 집행할 예정이다. 

주요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와 정부의 지원으로 팹리스, 소부장, 후공정 등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긍정적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팹리스 및 후공정 기업들의 직접적인 투자 금액이 발표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부장의 경우 네덜란드 기업인 ASML 등 글로벌 6개 기업을 R&D 센터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 밸류체인으로 이어진 팹리스, 후공정, 소부장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져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전문가는 “지난 20년 동안 팹리스를 지원했지만 실패했다. 지원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 것”이라며 “여러 지원 정책에 대해 예타를 신청했다고 하는데, 예타를 신청하고 실제 자금이 집행이 되기까지 빨라도 1~2년이 걸린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늦는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대로 넘어감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후공정(패키징)에 대한 미흡한 지원도 지적된다. 

정부는 이번 정책 발표에서 패키징 산업을 위해 5000억원을 투입하여 차세대 소자와 첨단패키징 등의 기술과 인재를 육성하는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를 신규 조성하고, 미국과 유럽에 현지 산업기술 협력센터를 설립한다. 그러나 이는 팹리스나 소부장 지원 사업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많은 데이터 양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기 위해 반도체 칩은 점점 작아져야 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반도체의 크기가 작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기존 크기의 반도체를 잘 이어 붙여 전자기기의 성능을 추가로 개선할 수 있는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최첨단 패키징 기술에서 대만이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TSMC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이란 첨단 패키징 기술을 2016년에 상용화해 칩 두께를 혁신적으로 줄인데다 시간을 절약하고 원가도 절감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동그란 웨이퍼가 아닌 사각형 모양으로 재배열해 패키징하는 ‘패널레벨패키지(FOPLP)’로 TSMC 기술에 대응했다. 다만 시장 확대와 기술 확장의 한계가 문제로 지적되자 2023년 말부터 PLP와 WLP 기술을 ‘투트랙’으로 양산 적용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2021년 기준 패키징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10대 후공정 기업에서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 1위를 포함해 대만 기업이 6개이며 나머지를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와 후공정 산업에 지원이 필요한 것은 맞으나, 예산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단 파운드리와 메모리 산업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