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사진=이소영 기자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사진=이소영 기자 

‘주·알·못’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이런 주알못들도 한 번쯤은 들어본 종목이 있으니 바로 배터리 관련주다. 지난해 K-배터리에 뜨거운 관심과 기대가 몰리며, 몇몇 이차전지 관련 회사의 주가가 연초 대비 5~7배 이상 치솟았다.

그러나 박철완 교수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지난해 국내 배터리 시장의 질적 성장은 없었다”며 “배터리 3사는 이변이 없는 한 자신들이 만든 우물에 빠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R&D’ 투자였다.

주요 전기차 업체들이 기존 삼원계 배터리 대신 안전하고 경제적인 LFP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삼원계 배터리 위주의 수익 구조에 멈춰있다. 그 지점을 지적한 박철완 교수는 “배터리 산업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우려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 배터리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 강국으로 꼽히는 한·중·일 상황은 어떤가?

“가장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곳은 중국이다. 일본은 시장 규모상으로는 3위지만 언제든 다시 뛸 가능성이 충분하다. 파나소닉만 하더라도 기술 개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만한 성과도 보이고 있다. 한국은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배터리 산업에 뛰어드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이나 자원 규모가 큰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3국이 독점하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벗어니 신흥 국가들의 등장을 대비해야 한다.”

-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구축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는 기초가 약하다.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지금까지는 삼원계 배터리로 밀고 나갔지만 중국은 이미 삼원계 배터리를 넘어 더 상품성이 뛰어난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4680 배터리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시작했다’고 홍보하지만  테슬라는 이미 양산에 들어갔다.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배터리 산업을 이끌어 갈 기초와 차세대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심은 R&D 투자에 있다.”

-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존재감은?

“삼성SDI는 사업을 키워가는 단계지만 규모가 LG엔솔에 비해서 큰 건 아니다. 지금은 R&D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사업 크기가 커졌을때도 이를 유지하는게 관건이다. SK온은 후발주자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세그먼트를 파우치에 추가하는 등의 똘똘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당장 양산 라인을 늘리거나 설계적인 시선은 없다. 가장 문제는 LG엔솔이다. 과도하게 설비 공장을 늘리면서 운영비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R&D 비용을 급격하게 줄이면서 실적에만 집중한 게 제일 큰 문제다. 파나소닉, BYD 어디도 이렇게 R&D 비용을 줄이진 않는다.”

- LG에너지솔루션은 ‘초격차’ 제품과 품질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초격차라는 말을 사용해선 안된다.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1등이 아닌데 어떻게 초격차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가. 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미격차도 부족하다. 역초격차 상황이다.”

- LG에너지솔루션이 ‘역초격차’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새로 부임한 김동명 대표가 선택을 해야 한다. 연간 2~3조를 들여서 R&D 투자 비율을 5%까지 늘릴 것인지, 지금과 같은 2%대 비율을 유지할 것인지. 두 선택지 모두 김동명 대표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크다. 영업이익에 맞먹는 돈을 투자한다면 당장 보여지는 실적이 줄어든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R&D 투자에 소극적인 기조를 이어간다면 ‘침몰하는 배’에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다. 늦출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역시 침몰이다.”

- 배터리 산업 미래를 마냥 밝게 전망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그렇다. 이제 배터리 산업은 1부를 지나 2부 리그로 진입하고 있다. 2부 리그에서는 탈락자들이 대거 나타날 것이다.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투자 지표가 이를 제일 잘 보여준다. 1~2명의 이례적인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2024년 국내 배터리 산업의 하락은 예고돼 있다. 이 상황에서 R&D투자를 통해 기반을 다지지 않는다면 국내 배터리 3사는 ‘우물’에 빠질 것이다. LG엔솔은 질적 성장의 우물, 삼성SDI는 성장의 우물, SK온은 생존의 우물에 빠지게 된다. 다가오는 리스크를 대비해야 한다.”

- 미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산 원자재 또한 검열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재 부문에서 한국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소·부·장 중 우리의 장점은 장비다. 장비 기술이 따라와 제품은 잘 만들지만 소재와 부품 측면에선 우리가 열등한 상황이다. 흑연, 전해액 등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크로와상을 생각하면 쉽다. 생지는 중국에서 들여오고 우리는 그것을 잘 구워서 파는 것이다. 할당 관세 제도가 독이었다. 기존 8% 배터리 소재와 부품 관세를 2020년 0%로 없애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최근 ‘중국산 소재와 부품이 늘어나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원래부터 소재와 부품은 중국산이 대다수였다. 이례적인 소식이 아니다.”

 - 최근 이차전지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그만큼 확인이 안 된 이야기도 떠돌고 있는데?

“한마디로 ‘아사리판’이다. 작전 세력과 사기꾼들이 너무 많다. 거기다 유튜버들은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결국 죽어나는건 개미들이다. 소부장 업체에서도 혼란스러운 정보들이 떠도는 상황에서 일반인이 믿을만한 기업들을 가려내기엔 어려움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건 2000년대 ‘VK’때와 비슷하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철완 교수는 자동차 산업과 배터리 산업은 ‘디커플링’,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국산 배터리를 채용하지 않는 완성차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배터리 산업과 달리 자동차 산업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 자동차 산업은 배터리 산업과는 다르게 흘러갈까?

“이젠 자동차 산업과 배터리 산업이 함께 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국내 완성차 기업이라고 꼭 국산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KG모빌리티가 있다. KG모빌리티의 경우 LG엔솔의 최소 보증 물량을 충족하지 못해자 궁여지책 BYD 배터리를 사용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파격적인 ‘100만㎞ 보증’ 마케팅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다. 긴 보증거리 덕분에 KG모빌리티는 ‘택시’ 쪽에서 전망이 밝다. 현대차·기아는 워낙 잘 하고 있다. 아이오닉, EV 시리즈와 같은 전용 플랫폼 모델들이 북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전기차 전망은 어떤가? 일각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케즘존’에 진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답답하다. 케즘존을 언급하며 ‘살 사람은 다 샀다’고 말하지만 그게 아니다. 지난해 테슬라가 모델 Y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하며 가격을 낮추자 판매량이 급증했다. 케즘존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다. 전기차가 경쟁력을 갖추면 언제든 전기차를 구매할 고객들은 많다. 전기차 확산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방어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동차 시장은 어느 곳보다 리셀밸류(resell value)가 중요하다. 그러나 전기차는 타면 탈수록 배터리 교체 시기가 다가오고, 중고차 가격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로 전기차를 타던 소비자가 다시 내연기관차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 최근 현대차그룹이 ‘CES’에서 수소차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의선 회장이 수소 생태계 관련 정부의 화답을 기다린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수소 생태계 구축은 어려운 숙제지만, 그만큼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수소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수소를 운반하기 위해선 LNG선을 개조한 수송 운반선이 필요하다. 자동차에서 시작했지만 조선 산업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소 산업과 관련한 로드맵조차 제대로 꾸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 현대차그룹은 기업 단위에서 수소 로드맵을 꾸린다고 했는데, 그 한계는?

“초기 인프라 구축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의 씨드 작업을 통해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야만 민간 기업들이 제대로 뛰어들 수 있고, 로드맵이 구축된다. 온전히 기업이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정의선 회장도 그런 의미에서 CES 행사에서 수소차를 언급한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한국의 이차전지 기반을 다진 1세대 학자다.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 졸업 △산업통상부 산하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자문역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기술총괄 및 간사 △20대 대통령인수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전문위원을 역임하며 이차전지의 성장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