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AL이 생산한 치린(Qilin) 배터리. 타임지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진=CTAL
CTAL이 생산한 치린(Qilin) 배터리. 타임지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진=CTAL

지난해부터 중국 경제 위기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제조업 패권을 빼앗아 온 것처럼 중국도 한국으로부터 제조업 패권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중국은 향후 세계 제조업 시장을 뒤흔들 국가 전략 ‘제조 2025’를 발표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제조업의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으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산업고도화 전략이다. 10대 핵심산업을 중심으로 시행하며, IT, 우주항공, 조선, 신재생 에너지 등이 집중 육성 대상이다. 2025년까지 한국과 프랑스를 따라잡고, 2049년에는 미국을 꺾고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제조 2025’ 이후 10년…급성장의 중국

9년이 지난 2024년 현재, 한국 제조업계는 중국 기업들의 시장 침투로 인해 글로벌 점유율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그림이다. 중국 점유율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내수시장을 제외하고도, 일부 업계는 순수 글로벌 점유율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업계에 경종을 울린다.

한 예로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은 지난해 내수를 제외한 배터리 시장 점유율 27.7%를 달성하며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27.7% 동률)을 바짝 쫓아왔다. 2022년보다 5.6%P 상승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의 중국 제외 점유율은 2022년 대비 1.4%P 줄었다.

중국 내수시장을 포함한다면 CATL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중국을 포함한 CATL의 지난해 배터리 사용량은 233.4GWh로, 점유율은 37.4%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13.6%로 밀려 3위를 차지했다. 국내 업체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LFP배터리 시장의 성장세에 힘입어 쾌속 순항 중이다. 특히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 2019년 이후 글로벌 점유율에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 역시 중국의 약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15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을 앞두고 홈페이지에 기고문을 올리며 중국의 기초유분 자급률이 2~3년 안에 10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초유분은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이다.

신 부회장은 “미·중 자원전쟁으로 중국이 핵심 자원의 수출을 통제함과 동시에 기초유분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석유화학 산업 확장을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국의 주요 석유화학제품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중국이 석유화학 제조시설을 대거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에 밀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중국의 2020년 에틸렌 생산량은 연간 3200만t이었지만, 2022년에 이르러선 4600만t으로 대거 늘어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전통적 제조업이자 국가기간산업인 조선업에서도 위기론이 대두된다. 조선업계 대상 제조 2025에는 해양플랜트의 테스트, 모니터링, 검증역량 강화, LNG선 등 최첨단 선박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한국 조선업계들이 강세를 보이는 고부가가치선 분야다. 기존 저가선 물량공세에서 더 나아가 첨단 기술을 도입한 미래 먹거리를 확실히 잡겠다는 목표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중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CGT(표준선환산톤수) 점유율 60%를 기록하며 24%에 그친 한국을 크게 앞섰다. 아직까진 한국이 고부가가치선 위주 선별수주 전략을 내세우며 중국을 따돌리는 분위기지만, 본격적으로 고부가가치선 시장에 진출한 중국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예로, 오랜 기간 한국 조선사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컨테이너선 시장은 이미 중국의 앞마당이 된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량의 57%를 중국 조선사가 수주했다. 전체 178척 중 101척을 따냈다. 한국은 51척을 수주하며 28.6%에 그쳤다. 중국이 수주한 컨테이너선의 대부분은 메탄올·LNG 추진 컨테이너선과 하이브리드형 컨테이너선 등 고가 선종이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TV 시장 역시 중국 가전업계의 추격이 매섭다. 이번 CES 2024에서 중국 TV가전 제조업체 TCL은 삼성전자 옆에 자리잡고 대규모 부스를 꾸렸다. 세계에서 가장 큰 ‘퀀텀닷 미니 LED TV(115인치)’를 선보였다. 미니 LED는 한국 업체들의 ‘OLED(올레드)’ TV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프리미엄 제품군이다. 중국 내수시장 판매량을 제외한다면 아직 세계 2위인 LG전자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LG전자는 여전히 존재하는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LCD TV인 QNED 초대형 라인업을 확대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LG전자가 CES 2024 전시장 입구에 세계 최초 투명·무선 올레드 TV 15대가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사진=LG전자
LG전자가 CES 2024 전시장 입구에 세계 최초 투명·무선 올레드 TV 15대가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사진=LG전자

한국 일본 사례 타산지석? “중국 성장세는 예측 불가”

이처럼 중국의 성장세에 한국 주력 제조업계의 텃밭이 위협받는 현황이 이어지자, 국내에서는 과거 일본 버블경제 이후 제조업계 패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사례를 한국과 중국이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경쟁력지수(CIP)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은 1990년 각각 17위, 2위에서 2018년에 이르러선 3위와 5위로 뒤집혔다.

업게 관계자는 “과거 한국은 IMF 당시 고환율 수출 혜택을 바탕으로 민간 기업과 정부에서 투자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웠고, 저가수출 전략과 기술력 확보 전략을 효율적으로 펼치며 일본의 자리를 꿰찼다”며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중국 산업계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한 양적성장에 힘입어 저가 수출 전략을 펼치는 데다, 벌어들인 외화로 다시 첨단 기술 육성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최근 국내 제조업계가 아직 중국 대비 뛰어난 기술력으로 고부가가차 제품 개발에 몰입하고 있지만, 중국의 프리미엄 제품 생산 능력이 점차 궤도에 오르는 만큼 안정적인 미래 먹거리라고 할 수 없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조선업계 고부가가치선 중 하나인 HD한국조선해양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조감도. 사진=HD한국조선해양
조선업계 고부가가치선 중 하나인 HD한국조선해양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조감도. 사진=HD한국조선해양

한국과 중국 제조업계의 성장 양상은 명확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정치 체제와 ‘자원의 무기화 여부’가 있다. 특히 제조업에 필요한 핵심 자원 대부분을 외국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내부 필요 물량을 제외하고도 수출 전략 물자로 적극 활용하며 세계 제조업계 판도를 흔들 수 있다.

한 국가 연구원 소속 연구원은 “한국과 중국은 국가 단위의 생산력이 차원이 다르다”며 “최근 미중 무역 갈등으로 중국산 자원의 해외 수출이 일정 부분 막혔음에도, 견조한 자원 자급자족 능력은 중국이 대한민국 이상의 속도로 성장세를 보여주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성장 사례를 기준으로 중국의 성장 속도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다시금 민-관의 유기적 협력이 중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양종서 수출입은 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국가의 지원 아래 일원화된 연구개발 주체가 탄소중립 대응 기술 등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국가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며 반면 대한민국은 국가 차원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을 개별 기업에서 부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첨단 기술 확보 같은 신속 대응이 필요한 사업에 대한 지원 방식은, 예비타당성조사 등 복잡한 절차 대신 국가 차원의 운영감시체계로 바꾸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