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슈퍼 앱’의 등장은 금융권에 큰 숙제를 던졌다. 하나의 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슈퍼 앱이 소비자의 호응을 얻으면서 기존에 고수해 오던 ‘멀티 앱’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금융권 중에서 가장 ‘아날로그’한 보험업계는 ‘디지털화’라는 숙제를 더 고차원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보험사 앱 역시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일률적인 서비스만 제공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처지가 됐다.

특히 고민이 깊어지는 쪽은 삼성생명·교보생명 등 그룹 계열사에 은행이 없는 보험사들이다. 금융권의 ‘슈퍼 앱’은 고객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다. 은행이 이끄는 슈퍼 앱 아래로 모이고 있는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들과 달리 이들은 동일 계열사에 은행이 없다.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앱 전쟁’에서 불리한 출발점에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서 ‘원앱’을 내놓고 있다. 같은 그룹 계열의 금융사들을 모아 앱을 통합시킨 이들은 각기 다른 전략을 내세워 고객 유치에 나서는 중이다. 삼성 계열 금융사가 모인 삼성금융네트웍스의 통합 앱 모니모는 ‘앱테크’, 교보생명·증권 등이 모인 교보생명 앱은 ‘콘텐츠’, 한화 계열 금융사의 연합체인 한화 라이프플러스는 ‘취미’를 각각 무기로 내세웠다.

◆“모니(Money)가 모이네”…‘앱테크’족 공략하는 삼성 ‘모니모’

삼성금융네트웍스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의 연합체다. 이들은 빅테크, 금융지주 등이 내놓은 슈퍼 앱에 대항해 지난 2022년 삼성금융 계열사(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 통합 앱인 ‘모니모’를 선보였다. 모니모는 ‘돈(Money)’과 더한다는 뜻의 ‘모어(More)’를 합친 말이다.

모니모에서는 보험료 청구, 자산 관리, 환전, 자동차 및 부동산 시세 조회 등 전반적인 금융 생활을 할 수 있다. 모니모 앱과 같이 이용하면 혜택이 불어나는 모니모 전용 금융 상품을 출시해 사용자가 모니모 앱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도록 유인하기도 한다. 혈액형별 특정 질병을 맞춤 보장하는 미니 보험 ‘삼성 혈액형별 보장보험 특정질병추천플랜’, 모니머니 리워드 적립률을 높일 수 있는 ‘모니모A 카드’ 등이 그 예다.

앱 이름에 ‘돈을 더한다’는 의미를 담은 만큼 ‘짠테크’ 서비스도 탑재했다. 모니모 앱에서 기상 미션, 걸음 수 충족 등 일일 미션을 수행하면 ‘젤리’를 준다. 모은 젤리는 ‘젤리 교환소’에서 ‘모니머니’로 바꿀 수 있다. 모니머니는 현금으로 출금하거나 펀드 투자에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 가능하다.

앱테크 수입은 쏠쏠한 편이다. 기자는 모니모를 설치한 당일 가입 미션을 완수하고 1262원을 모았다. 캡처=박혜진 기자
앱테크 수입은 쏠쏠한 편이다. 기자는 모니모를 설치한 당일 가입 미션을 완수하고 1262원을 모았다. 캡처=박혜진 기자

모니모의 강점인 앱테크 서비스는 삼성금융 회원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기존 고객을 붙잡아 두는 동시에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삼성금융 고객은 아니지만 1년째 모니모를 사용하고 있다는 직장인 A씨는 “광고를 시청할 필요 없이 간단히 출석 체크를 하거나 기상 미션을 수행하면 돈이 모여서 좋다”며 “특히 미션을 꾸준히 수행하면 ‘스페셜 젤리’를 주는데, 1000원 이상을 받을 수 있어 쏠쏠하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계열 금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2300만명의 고객 수에 비해 앱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앱 분석 기관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모니모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안드로이드 폰 기준)는 270만4900명이다. 대표적인 슈퍼 앱 ‘토스’의 MAU는 1075만명에 달한다. 모니모 앱의 약 4배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모니모 앱에서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가 한정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모니모 앱에서 분할 결제 신청, 보험금 청구 등 일부 금융 업무는 볼 수 있지만 보험 가입이나 카드 결제 같은 핵심 금융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다. 결제를 하려면 삼성카드 앱으로 이동해야 하고, 보험에 가입하려면 삼성화재 외부 링크로 연결된다. 하나의 앱에서 모든 금융 업무를 처리하기 어렵다.

특히 결제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결제 서비스는 사용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만큼 해당 서비스를 앱 내에 탑재해야 금융 원앱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업계 의견이 뒤따른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사용자가 자주 쓰는 서비스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앱 내에서 결제를 할 수 없다면 유입 동력을 잃고 시작하는 셈”이라고 짚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삼성 금융의 주요 서비스를 모니모에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순차적으로 탑재 중”이라며 “앞으로 모니모에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편리한 금융 생활에 ‘콘텐츠’ 더했다…교보생명 슈퍼 앱

교보생명은 지난 2022년 고객들이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보다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슈퍼 앱을 오픈했다. 그간 흩어져 있던 교보 계열사들의 디지털 채널 ‘피치’·‘교보생명 퇴직연금 모바일창구’·‘교보생명 케어’을 교보생명 앱으로 통합하면서 출시됐다.

교보생명 앱의 첫 번째 목표는 고객의 편리한 금융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험과 퇴직연금, 대출, 펀드∙신탁 등의 서비스를 하나의 앱에 담았다. 보험업계 최초로 오픈뱅킹을 도입하기도 했다. 고객은 교보생명 앱 하나로 은행, 저축은행, 증권사 등의 계좌 잔액 및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금융사 계좌 간 이체, 신용카드·선불금 서비스 등도 지원한다.

간편 인증서비스도 확대했다. 고객은 간편 비밀번호, 지문 인증서, 얼굴 인증서, 네이버 인증서 등 원하는 방법으로 인증을 마친 뒤 로그인해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활용한 자산 관리 서비스를 통해 금융 생활 전반에 대한 코칭도 받을 수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모바일 중심의 통합 디지털 채널을 통해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고자 했다”며 “향후 개인화 서비스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고객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앱의 ‘광화문 인문학’ 코너. 캡처=박혜진 기자
교보생명 앱의 ‘광화문 인문학’ 코너. 캡처=박혜진 기자

앞서 교보생명은 지난 2021년 열린 ‘비전 2025’ 선포식에서 고객에게 ‘문화와 금융’을 아우르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교보생명은 이 비전을 앱에도 녹였다. 교보생명 앱의 경쟁력은 콘텐츠다. 김상효 교보생명 디지털마케팅팀 담당자는 디파이너리와의 인터뷰에서 “교보생명은 생명보험 앱 중 가장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보험’하면 떠오르는 어려운 이미지를 쉽고, 즐길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고 보험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앱 내에 다양한 비금융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보문고 앱에 접속하면 ‘광화문 인문학’ 코너가 눈에 띈다.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는 교보문고를 떠오르게 하는 ‘광화문 인문학’은 영화, 책, 역사 등 인문학 분야 콘텐츠를 제공한다. 천운영 작가의 남극 경험담을 담은 ‘남극 빙하의 시간을 통과하며’, 여자경 지휘자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속 클래식 이야기’ 등 읽을거리를 더했다. ‘라이프 스타일’ 탭에서는 미식을 즐기는 이들의 취향 공유 플랫폼 ‘미식생활자’와 협업해 각지의 맛집을 소개하기도 하고, 건강 관리 비법 등 생활 밀착형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교보문고 앱의 각종 콘텐츠가 고객을 앱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요인으로 충분히 작용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마케팅 클라우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교보생명 앱 사용자 한 명이 한 달 동안 교보생명 앱을 사용한 시간은 평균 8.9분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삼성금융네트웍스의 모니모 앱 1인당 평균 이용 시간은 36.77분으로 교보생명 앱보다 약 4배 많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교보생명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41만명, 교보생명 앱을 설치했으나 한 달 동안 사용하지 않은 유저 비율은 7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즈 좋아하세요?”…‘관심사’로 2030 모으는 한화 ‘트라이브’ 앱

‘금융사가 만든 앱 맞아?’

한화 라이프플러스(LIFEPLUS)가 내놓은 ‘LIFEPLUS 트라이브’ 앱에 접속하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한화 라이프플러스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한화저축은행이 모인 공동 브랜드다. 이들은 삼성금융네트웍스, 교보생명과는 달리 앱에서 금융을 ‘덜어내는’ 전략을 취했다.

트라이브 앱은 취미를 즐기는 신(新)부족들, 이른바 ‘취미족’을 노린 앱이다. 앱 이름인 ‘LIFEPLUS 트라이브’는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라이프플러스(LIFEPLUS)’와 부족·집단을 뜻하는 영어 ‘트라이브(Tribe)’를 합친 말이다. 관심사를 토대로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런 만큼 앱 내에서 보험, 증권, 자산 등 금융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대신 음악, 골프, 스포츠 등이 금융의 빈자리를 채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트라이브 앱은 2030을 겨냥한 취미 기반 플랫폼”이라며 “소규모 공연장을 빌려서 음악회를 열고, 유명 농구 스타를 섭외해 대회를 개최하는 등 2030이 직접 하기 어려운 오프라인 행사를 한화 라이프플러스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는 트라이브 앱에 접속해 본인의 관심사에 맞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요리사가 공개하는 레시피를 보고, 재즈 전문 기자가 직접 고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온라인으로 즐기던 취미 활동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전시회 초대권, 뷔페 식사권 등을 추첨을 통해 증정하는 각종 행사가 준비돼 있다. 응모 횟수는 제한이 없다. 댓글 남기기, 인증샷 남기기 등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면 당첨 확률이 올라간다.

캡처=박혜진 기자
캡처=박혜진 기자

‘틈새 금융’도 놓치지 않았다. 트라이브 앱의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한화그룹의 금융사들이 준비한 금융 콘텐츠가 곳곳에 자리해 있다. 금주의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한 ‘주간머니뉴스’, 한화자산운용의 실무자들이 투자자에게 주식 정보를 전달하는 ‘시황스쿨’ 등이 그 예다. 한화 라이프플러스는 이 같은 ‘스며들기’ 전략을 통해 각 금융 계열사를 사용자에게 인식시켜 미래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성적은 아쉬운 편이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한화 라이프플러스 트라이브 앱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2만8000명 수준이다.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은 2.52분에 불과하다. 앱을 설치했으나 한 달 동안 사용하지 않은 고객 수는 95.3%에 달한다. 2030 고객을 겨냥하고 있지만 트라이브 앱 사용자는 20대(24%)보다 40대(28.2%)가 많았다.

관심사 기반으로 사람을 모으는 앱이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사용자들끼리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앱 내에 있는 ‘톡’ 서비스를 통해 트라이브의 콘텐츠에 댓글을 남길 수는 있으나 사용자가 직접 게시글을 작성하거나 공감되는 글을 확산시킬 만한 기능이 따로 없다. 사용자가 주도해 취미 공유의 장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트라이브 앱은 관심사 기반으로 관련 콘텐츠, 챌린지 등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위주”라며 “유저들끼리 소통하는 기능은 따로 없지만 유저들의 수요가 있으면 추후에 론칭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