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이 지난 9일 이코노믹리뷰를 찾아 10대의 경제 활동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이 지난 9일 이코노믹리뷰를 찾아 10대의 경제 활동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내가 장사치인줄 아는가?” 연암 박지원이 조선 후기를 풍자하기 위해 쓴 고전소설 ‘허생전’의 한 대목이다. 10년 동안 글만 읽던 만년 선비인 허생은 “돈 벌어오라”는 부인의 잔소리에 매점매석으로 갑부가 된다. 그렇게 번 100만냥 중 50만냥은 버리고, 남은 50만냥을 헐어 불우한 이웃을 돕고 빚진 10만냥을 갚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학교에서 우리는 ‘허생전’이 실학(實學)을 괄시하는 양반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라 배웠다.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서도 초등학생 토론수업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상한 것은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만년 선비인 허생을 더 높게 평가하는 시선이 더 많다는 점이다. 학문을 익히면 우러러 보지만 장사를 하면 낮잡아본다.

시대가 변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10대 사장님’들이 줄을 잇는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캐릭터 굿즈 판매, 온라인 쇼핑몰 경영, 곤충 식품이나 교구 제작 회사 CEO(대표이사) 등으로 분야도 다양하다. 이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돈을 번다. 아니나 다를까 ‘허생전’을 풍자소설이라 말하던 사람들이 이들에게는 손가락질로 응수한다.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10대 사장님들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신인류’라고 부른다. 지난 9일 이코노믹리뷰에서 만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최지혜 연구위원도 그중 한명이다.

X세대 밑에서 자란 10대 사장들

X세대는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 속에서 물질적,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과소비와 향락문화가 주류를 이뤘다.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댄스‧발라드‧트로트가 모두 사랑받을 만큼 대중문화도 폭넓게 향유됐다.

이들의 자녀가 현재 10대 사장들이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X세대는 개방적이고 자본주의를 금기시 여기지 않는다”며 “부모가 된 X세대는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지해준다”고 설명했다. 10대 사장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도전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원인으로 지목된다.

부모의 지지를 받은 역량 있는 10대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최 위원이 언급한 대표적인 사례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쭈니맨’으로 활동하는 권준이라는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은 세뱃돈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쭈니맨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10대들을 위한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CEO이다. 대학에 가지 않고 또래 친척 3명이 마카롱 카페를 차리거나 제페토나 로블록스 등 메타버스에서 캐릭터 의상을 만드는 10대 사장, 주식투자로 돈을 번 미성년자도 상당하다.

10대 사장은 흥미를 비즈니스화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 위원은 “10대 사장은 꼭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사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유튜브 등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것이 다시 비즈니스로 변형되는 경우가 다수라는 것이다.

정체성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것도 이들의 특이점이다. 최 위원은 유형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프레임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한 쭈니맨 사례처럼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동시에 화장품 회사 CEO이기도 하다. 최 위원은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지금 10대는 어떤 경로로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다른 세대보다 뛰어난 신인류”라고 강조했다.

​실제 금융시장에서도 20대 미만 투자자들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장법인 주식을 가진 20대 미만 주주가 2018년(9만2766명) 대비 2022년(75만5670명) 약 8.1배 증가했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약 1만명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세뱃돈 투자처로 주식을 선택한 청소년이 58%, 예금성 자산을 선택한 청소년은 41%를 기록했다. 본인 명의의 주식 계좌를 보유한 청소년은 43%로 이 중 절반 정도가 계좌를 직접 관리했다.

KB경영연구소 '글로벌 틴즈 상품 트렌드' 중. 사진=KB경영연구소
KB경영연구소 '글로벌 틴즈 상품 트렌드' 중. 사진=KB경영연구소

코로나19가 폭발시킨 10대 창업

10대 사장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다. 19살에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같은 나이에 마이클 델도 맞춤형 조립 PC 델 컴퓨터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한 것도 이들과 같은 19살에 불과하다.

코로나19는 전세계에서 10대 창업 붐을 이끌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움직임이 제한되며 여유시간이 늘었다. 전염병 감염 위험으로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수업을 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30일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를 선포하고 2023년 5월 5일 종식을 선언했다. 무려 3년 4개월간이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2분기 카페24로 창업한 10대는 전년동기 대비 9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기간 코리아센터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 창업 솔루션 ‘메이크샵’에서도 신규 쇼핑몰 창업이 전년동기 대비 50.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 위원은 “코로나19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자기개발 시간을 선사했다”며 “학생들은 줄어든 통학시간으로 생긴 잉여 시간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격증을 땄다. 또 주식‧코인 투자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소비주체로 떠오른 10대 부자

어린 사장은 부자로 거듭나며 소비주체로도 주목받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직 특별히 드러나는 소비행태는 발견되지 않았다. 굳이 찾아보자면 명품 소비가 늘어난 부분이 독특한데 이 자체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류된다. 최 위원은 “(명품 소비는) 한국 사회가 선진국에 편입되며 소비 레벨이 높아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명품을 접하는 시기는 점차 빨라지는 모양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명품 소비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품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는 20대(45.6%)와 대학생(35.8%)에 이어 고등학생이 26%로 3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 1월 보고서에서 “SNS와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확산으로 어린 나이에 명품을 소비하는 경향은 2010년 이후 출생한 알파세대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인류 맞을 준비 필요

10대 사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지금 10대 사장은 기업에 위협이 되는 존재도 아니고 기회가 되는 존재도 아니다. 다만 경제주체이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미는 분명히 있다. 이전에 10대는 학생으로 ‘공부하는 존재’였다면 이제 ‘장사를 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됐다. 변화에는 명암이 있고, 부정적인 측면에 천착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최 위원은 발생한 현상에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에 매몰되는 것보다 바람직한 자세라고 내다봤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10대 사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 중국과 우리나라는 돈 벌이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 우리는 ‘허생전’ 속 허생처럼 돈 벌이를 천박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은 오히려 신성시 여긴다. 인플루언서 ‘왕홍’을 중심으로 중국 틱톡 커머스가 활성화된 이유다. 10대 사장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날선 시선과 온도차가 크다.

마지막으로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소비자를 연구하는 소비자 학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라며 “세대 연구는 사람들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세대간 이해를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