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가 집요하다의 사전적 뜻이다.

그릇된 집요함은 강박이나 스토킹일 수 있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스스로에게 집요하고 그것이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페어플레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일이고,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기억나는 집요했던 순간들이 있다.

첫째, 필자의 중2 국어시험 전날. 

남 모 국어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역대급으로 어렵게 낼 것이고 100점을 맞으면 만년필을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다. 농담까지 깨알같이 필기를 해놓고, 시험 전날 밤새 달달 외웠다. 새벽 두 시가 되니 잠이 쏟아졌다. 14살의 필자는 세숫대야에 물을 채우고 얼음을 띄워 책상 한편에 놓고는, 졸음이 올 때마다 얼굴을 사정없이 물에 담갔다.

씨익 웃으며 여유 있게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은 100점이 전교(당시 900명)에 딱 한 명 나왔다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박수 한번 쳐주자며 만년필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하셨다. 어린 맘에 억울하고 분했지만, 그로 인해 난 더 강해졌다. 만년필 하나 선물하기를 식언한, 지금 필자 나이보다 젊었을 국어 교사의 이름 석 자를 절대 잊지 않는 것도 좀 집요하다.
 
둘째, S대 치대를 휴학하고 재수한 일

대입 첫 해 2지망이었던 S대 치대에 합격했다. 좌절했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학력고사 점수표를 들고 고민도 없이 향한 곳은 J 재수학원. 접수 받는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공식적인 점수로 전국 1위 재수생이 된 순간이다. 동기들이 대학캠퍼스의 봄 꽃향기와 축제에 취해있을 때, 나는 어두운 학원 교실과 독서실을 오갔다. 잠깐 혹은 한두 달 집요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1년을 그렇게 지냈다. 재수에 실패하면 다시 돌아갈 치의예과라는 언덕이 있으니 더 나태해지기 쉬웠다. 그래서 더 집요해야만 했다.

세 번째, 제주도의 해변 승마

한참 승마에 빠져 있을 때 여럿이 같이 사진작가를 대동해 제주의 바닷가에 갔다. 말 무릎까지 파도가 찰랑거리는 해변에서 습보(말이 최대 속력으로 달림)를 하다가 말이 물속으로 고꾸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도 말과 함께 물속으로 처박혔다(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쓰고 있던 선글래스가 사라진 걸 안 것은 그로부터 30분 후 쯤이다. 다시 내 말에 올라타서 해변을 걸었다. 바다 속에 빠진 내 선글래스를 찾겠다는 일념으로...제주 토박이인 승마장 사장님이 손사래를 쳤다. 바닷물은 물건들을 쓸어서 집어 삼킨다고, 선글래스는 이미 멀리 갔다고.

말 위에서 맑은 바닷물 속을 노려보며 1시간 가까이 해변을 거닐었다. 지인들도 혀를 끌끌 찼다. 앗! 뭔가가 보였다. 바다 속으로 점프해서 움켜잡은 것은 다름아닌 내 선글래스. 뜨거운 태양 볕에 목과 얼굴이 화상을 입어 벌겋게 된 채, 바다에서 건진 선글래스를 쓰고 일행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와, 졌다”, “질렸다”, “집요하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린 이야기.

몇 년 전, 어느 비 오는 날 골목길에서 오후 8시쯤 내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다른 폰으로 내 폰 위치를 추적하면서 사립 탐정처럼 새벽 3시까지 폰의 행방을 내 차로 쫓다가, ‘점유이탈물 횡령’을 했지만 잡아 뗀 바로 그 오토바이 기사를 내 손으로 찾아내고, 다음 날쯤 경찰서 강력계 형사에게 ‘수사’ 내용을 넘긴 후 핸드폰을 돌려 받았다. 자초지종이 너무 길어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쓰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그 이후로 집요해야 할 일들이 별로 없었지만, 수술을 할 때는 예나 지금이나 늘 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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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입수술과 광대뼈, 사각턱수술을 25년 가까이 해오면서 수술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집요함’이다. 장인정신이나 열정도 집요함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모든 수술과정이 끈질김의 연속이지만, 특히 집요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첫째, 환자와의 약속

돌출입과 턱끝수술을 하면서 치과에서 분석한 수술계획에만 의존해서는 정말 환자가 원하는 입매를 만들기 어려우며, 여기에 환자가 원하는 것을 반영해야 한다. 즉, 수술 전에, 입을 어느 정도 넣고 턱끝은 어느 위치에 가져다 놓을지 기존 증례 혹은 연예인 옆모습 사진을 보면서 환자랑 상의한다. 이렇게 1 mm 이하의 차이를 환자랑 상의하고 그렇게 해주기로 약속하는 것은 사실 수술을 집도하는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결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뼈수술을 끝내고 입안 절개선을 봉합하다가, 환자의 옆모습을 늘 다시 확인한다. 그 때 목표로 한 윤곽선보다 과하거나 모자라다면, 지체 없이 다시 들어가서 뼈 고정을 한 나사를 풀고 위치를 재조정한다.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사실 이 과정이 생략된다고 해도 환자는 잘 모를 수도 있고 그럭저럭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 “바로 이거야” 라는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수술을 끝낸다.  

둘째, 사라진 나사

모든 수술은 특별한 일 없이(uneventful) 끝나는 것이 최선이지만, 수술 중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은 한 예.

돌출입수술과 광대뼈 수술은 절골을 한 후 티타늄 나사와 금속판(플레이트)을 이용해서 고정을 하게 된다. 드물지만, 나사가 드라이버 끝에서 톡하고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다. 발이 없는 나사가 수술 시야 안에서 멀리 도망가지 못하므로, 보통 쉽게 핀셋(포셉)으로 집어낸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사가 사라진 곳은, 수술 부위 안일 수도 있고, 아예 바깥으로 튕겨 나갔을 수도 있다. 직원 한 명에게는 수술장 바닥을 샅샅이 뒤지게 하고, 나는 수술 부위를 찬찬히 살핀다. 나사가 자석에 붙으면 편할 텐데, 티타늄 성분의 나사는 자석에 붙지 않는다. 얼굴뼈, 돌출입수술을 한 사람들이 MRI를 문제없이 찍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술은 기가 막히게 잘되었는데, 시야에서 사라진 나사 한 개 때문에 수술을 끝낼 수가 없던 경험이 있다. 그냥 봉합하고 끝낸 다음, 그 다음날 엑스레이를 찍어서 나사가 없으면 오케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나사가 남아 있으니 다시 수술장에 들어가자고 하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돌출입과 광대뼈수술은 두 시간도 안 되어 이미 잘 끝났는데, 나사 한 개 찾는 데에만 삼사십분 넘게 소요하다보니 나도 지쳐갔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과정이 아니므로 에너지와 열정이 금방 소진되고, 오로지 집요함으로 버텼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봅시다!”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한 끝에, 결국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 만한 곳에서 나사를 찾아냈다. 직원들과 마취과장의 반응은, 제주 바다에서 선글래스를 찾았을 때의 지인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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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국어 시험을 100점 맞지 못하거나, 재수에 실패해서 n수를 하거나, 잃어버린 선글래스나 핸드폰을 영영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몇 번의 기회가 더 있거나, 다시 채울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나를 믿고 온 환자들에게 불완전한, 미완의 수술을 하고 끝낸다면, 그들의 인생은 (나쁜 쪽으로)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이 시작될 거라고 믿고 맡긴 얼굴이 불행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환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다.

환자는 기본적으로 약자다. 아픈 환자든, 아름다워지고 싶은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의사에게 치료를 맡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하는 일은 수술을 통해, 환자의 얼굴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안전하게 꺼내주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집요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아름다움이 뭔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 사람이 집요하기만 하다면, 집요할수록 더 기괴한 성형괴물이 탄생할 것이다. 미적인 감각과 수술솜씨가 중요한 이유다.

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갈라테아라는 이름의 여인을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새해가 밝았다. 한 살 더 먹긴 했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한 나의 집요함은 저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믿고 온 환자들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