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조선업계 미래 먹거리인 친환경선 시장 선점을 위한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양새다. 이 기세대로라면 2000년대 이후 ‘세계 1위’에 빛나던 대한민국 조선업계가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23년 기준 CGT(표준선환산톤수)로는 점유율 60%를 기록하며 24%에 그친 한국을 크게 앞섰다.

약진의 중국, 친환경선 시장 점유율 노린다

11일 로이드 선급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산업정보기술부 등 5개 부처는 공동으로 ‘친환경 조선산업 선점을 위한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 세계 친환경 선박 건조의 50% 이상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저탄소·무탄소 선박의 개발을 촉진하고, 중국 조선소의 탄소집약도 저감 및 작업공정 디지털화와 함께 ‘녹색 공급망 종합관리시스템’에 대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가 강세를 보이던 친환경선 등 고부가가치선 시장의 파이를 더 차지하겠다는 국가적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중국 정부는 친환경선 선점을 위한 추진전략으로 선박 재활용 시설을 장려하고, 연안에서 선박 해체를 금지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녹색 금융(환경 개선, 금융산업 발전,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금융 형태)을 도입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약속했다.

송다영 한국 해사협력센터(KMC)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과거 벌크선과 유조선을 중심으로 저가형 표준 설계에 집중하던 것과 달리, 최근 몇 년 동안 액체수소 운반선 및 고급기술이 요구되는 선박 수주, 연료전지 개발 등에 투자해 왔다”며 “이번에 발표한 새로운 목표는 향후 세계적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노력에 따라 성장이 예상되는 산업 부문을 선점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전략계획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적극 투자는 근래 점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오랜 기간 한국 조선사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컨테이너선 시장은 이미 중국의 앞마당이 된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량의 57%를 중국 조선사가 수주했다. 전체 178척 중 101척을 따냈다. 한국은 51척을 수주하며 28.6%에 그쳤다. 중국이 수주한 컨테이너선의 대부분은 메탄올·LNG 추진 컨테이너선과 하이브리드형 컨테이너선 등 고가 선종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 2위 선사 머스크는 지난해 5월 중국 양지장조선과 8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한 건조계약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양지장조선은 프랑스 CMA-CGM으로부터 2만4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밖에 광저우원청조선소, 후동화조선소 등 중국 유력 조선소들이 메탄올, LNG 추진선을 속속 수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메탄올·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와 선박 관련 기술은 아직 대한민국이 중국에 비해 초격차를 확보하지도, 생산능력 면에서 완전 우위를 차지하지도 못한 관계로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 인도한 17만 4천 입방미터급 LNG운반선. 사진=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 인도한 17만 4천 입방미터급 LNG운반선. 사진=HD한국조선해양.

“정부 투자 증액하고 R&D 지원 구조 개편해야”

이처럼 중국 조선산업이 정부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이에 대비하는 한국의 민-관 협력 현황은 아직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 ‘K-조선 차세대 선도 전략’을 발표하며 2028년까지 7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초격차 기술 선점 △제조 시스템 고도화 △법·제도 인프라 정비 제시 등을 통해 차세대 선박 점유율을 80% 이상 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탄소 저감 경쟁력 강화를 위해 3대 탈탄소 핵심연료(LNG, 암모니아, 수소)에 대한 기술개발과 실증을 추진하고, 디지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율운항선박 조기 상용화를 추진한다. 연간 3000명 이상의 기술인력을 확보하고 해외 기술 협력도 추진할 예정이다. 스마트 조선소 구축, 금융지원 인프라 개선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중국, 일본 등 인접국에 비해 투자액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해운업게 관계자는 “중국에 비해 조선 투자액이 적은 일본과 비교해도 차이는 크다”며 “일본은 암모니아추진선, 수소추진선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추진선의 생산 인프라 구축에만 1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민-관 R&D 협력 구조상의 문제도 해결 과제다. 현재 국내 조선 3사는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해 저마다 R&D 투자액을 늘린 상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HD한국조선해양의 R&D 투자액은 948억원으로 2022년 동기 대비 21.9% 증가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각각 투자액을 13.9%, 16% 늘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들의 각자도생식 R&D 투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과 일본의 해상탄소중립 대응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국가의 지원 아래 일원화된 연구개발 주체가 탄소중립 대응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국가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췄으며, 일본은 조선업계의 R&D 능력과 국책연구기관 등의 역량을 통합해 차세대 선박을 개발하고 있다”며 “반면 대한민국은 국가 차원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을 개별 기업에서 부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획부터 검토완료까지 약 2년 이상 소요되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로 기술개발 과제들의 신속한 지원이 힘든 상황”이라며 “신속 대응이 필요한 사업에 대한 지원 방식은 예비타당성 조사 대신 국가 차원의 운영감시체계로 바꾸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대한민국 조선업계는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슈퍼사이클’을 맞아 연일 호황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인력난으로 인한 선박 건조 능력 저하 우려가 나오고, 외부적으로는 중국을 위시한 경쟁국의 약진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근래에는 인력난으로 상선용 블록 물량 생산 일부를 중국 조선사에 외주를 주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 확대와 민-관의 유기적인 R&D 및 인력양성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