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새집으로 이사할 생각에 잔뜩 부풀었던 한 수분양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입주 전에 실시한 점검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 옥상 바닥과 주방 벽에는 금이 가 있었고 계단의 난간을 받치는 곳은 건축 자재가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가 있었다. 집 안의 배관과 벽을 연결하는 부위엔 틈이 크게 벌어져 물이 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포함해 총 130건의 지적 사항이 발견됐다.

입주한 지 한참이 지나고 다른 동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가 점검에서도 바닥 균열 등이 드러났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난해 말 전용 면적 85㎡(약 26평)짜리가 9억원대에 팔렸다.

아파트를 점검했던 점검단 관계자는 지난 10일 “개선 사항에 대한 최종 이행 여부는 입주민들이 직접 요청해야 내부 검토를 거쳐 공개된다”며 “문제가 외부에 노출되면 집값 하락 등 재산권 문제가 생겨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판교테크노밸리 인근의 한 공공 임대 아파트 단지 내 일부 세대에 불이 켜져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판교테크노밸리 인근의 한 공공 임대 아파트 단지 내 일부 세대에 불이 켜져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날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일부 단지들의 입주민처럼 언론에 제보를 하지 않는 이상 이 단지처럼 그동안 보도 등을 통해 문제가 노출되지 않은 아파트가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경기도에 따르면 도가 운영하는 ‘공동주택 품질점검단’이 지난 2022년 6만3353세대를 조사해 드러난 문제점은 5406건으로 같은 기간 언론에 보도된 단지 수를 크게 상회한다. 앞서 2020년(8만355세대)과 2021년(7만4236세대)엔 조사 대상이 더 많았지만 개선 사항은 각각 5369건, 4526건으로 더 적었다.

서울시는 주택법에 따라 점검단을 2021년 하반기부터 운영하고 있다. 당시 반년간 25개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총 755건을 조치했다. 이듬해엔 1년간 20곳만 점검했는데도 1147건으로 문제점이 늘어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서울∙경기 아파트들의 하자 건수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엔 최고 38억원에 이르는 강남의 신축 단지에서도 130건이 넘는 부실사례가 적발됐다. 지자체에 따르면 점검단이 지난해 말 개포동의 한 재건축 대단지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총 135건의 부실사례가 적발됐다. 분야별로 ▲건축 계획∙시공 31건 ▲조경 25건 ▲소방∙전기 각 20건 ▲토목 17건 ▲통신 10건 ▲기계 8건 ▲건축 구조 4건 순이다.

건축 계획∙시공 부문에선 ▲거실 복도 벽 깨짐 및 아트월(벽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과다 손상 ▲수전(수돗물을 나오게 하거나 막는 장치)과 전기배선간 충돌로 인한 싱크대∙싱크볼(감지센서) 작동 미흡 ▲주방가구 및 수납가구 추락위험 ▲주방 상판 연결 및 욕실 코킹(실리콘) 품질 미흡 ▲옷방 문 개폐상태 미흡 ▲욕실 샤워실 문 개스켓(패킹고무) 떨어짐 및 세면대-욕조 간 틈새 ▲수납장 미시공 ▲붙박이장 내부 공기 조절 환기구 미설치 ▲현관문과 벽의 이격(사이가 벌어짐) 과다 ▲줄눈(온도 변화에 의한 수축과 팽창 등으로 균열이 예상되는 위치에 설치하는 것) 누락 ▲ 창문 불량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외에도 단차(균열의 다음 단계)를 포함한 13개의 부실 시공이 여러 집에서 발견됐다. 집 밖의 공용부분에선 ▲옥상 기둥 콘크리트면 마감 ▲1층 출입구 주변 난간 고정 ▲보도블럭 파손∙구배(기울기)∙물고임 개선 등이 요구됐다. ▲외부 벽 견출(페인트 칠 작업을 위해 벽면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 누락 ▲파이프 주변 등 4개 부분 마감 및 엘리베이터 개폐장치 체인 체결 미흡 등도 지적됐다.

조경 부문에서는 어린이 손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마감부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놀이시설의 용접 접합부와 그네 높이 등도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또 ▲잔디경계의 마감부 노출로 인한 걸림 사고 우려 ▲커뮤니티 석재(건축을 위해 사람이 인위적으로 다듬은 돌) 포장 파손 등이 거론됐다.

지난 8일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구축 아파트의 안전 문제 개선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단지는 시내 다른 아파트들보다 안전 사항에서 우수하게 평가된 곳이다. 다만 소방 관계자는 단지 내 송풍기의 바람 세기 등에 문제가 있어 안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난 8일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구축 아파트의 안전 문제 개선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단지는 시내 다른 아파트들보다 안전 사항에서 우수하게 평가된 곳이다. 다만 소방 관계자는 단지 내 송풍기의 바람 세기 등에 문제가 있어 안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혜진 기자

최근 잇따르는 화재에도 방화 시설마저 부실했다. 방화문(화재 발생 시 연기와 불길이 층간에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문) 미설치와 방화 셔터 파손 등이 지적됐다. 화재 수신기 회로 점검과 피난문 개폐 장치 확인 등도 요구됐다.

전기 공사 부문에선 ▲접지선 노출마감 불량 ▲전기배전(EPS)실 바닥 균열 ▲전선 단선 등이 언급됐다. ▲견고한 전선 접속 ▲야간 보행 시 필요한 조도 ▲특고압 인입관로(밖에서 들어가는 선로)의 수분침투 파손여부 확인 등 개선 사항도 여러 건이었다.

다만 ▲유수 검지장치(알람밸브)실 ▲소화전 및 소방차 주차 공간에 대한 미설치 등 일부 문제는 해결됐다. 실내 공기 질에 관한 지적 사항도 개선됐다.

검사 기관 관계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선 공고를 내린 뒤 관련 수치(자일렌)를 다시 측정해 기준치에 부합했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구는 이 아파트에 대해 준공 승인의 전 단계인 임시 사용 승인을 내린 상태다. 입주 대란 등을 피해야 한다는 수분양자들의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시민사회 등 일부 안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파트 하자를 용역∙자체 조사하는 단체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의 한 지부 대표는 “작년에 D사가 신축한 대구 수성구 아파트에서도 부실시공과 하자 문제가 심각했지만 관에서 준공 허가를 내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지 내 모든 제연설비(화재 예방 시설의 일종)가 작동되지 않았는데, 2021년 시 전역의 수백곳을 대상으로 실사한 조사에서도 10곳 중 9곳 꼴로 송풍기에 결함이 드러나는 등 수치를 언급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대부분의 건물에 안전 문제가 있다”며 “지자체가 이 문제를 더 철저히 검증하고 허위 감리 업체는 엄격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