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홍콩지수 ELS 피해자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홍콩지수 ELS 피해자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대규모 손실로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고 있는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일부가 1월 만기 도래하면서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 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 지수가 일정 구간 아래로 떨어져 있다면(knock in·녹인) 원금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홍콩H지수 ELS는 지수가 1만2000선을 웃돌던 2021년 초에 집중적으로 팔렸기에 H지수가 7200포인트 이상 회복하지 못하면 손실이 날 수 있다. 현재 홍콩H지수는 5600선이다. 당장 1월에만 만기 규모가 8000억원에 달하면서 사실상 손실이 확정된 상황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총 규모는 9조2000억원 정도이다. 2월 1조4000억원, 3월 1조6000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4월 2조6000억원으로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정확한 추정은 어려우나 홍콩H지수를 편입한 ELS 중 녹인 구간에 들어가 원금 손실이 발생한 규모는  총 약 6조2000억원이고 이중 5조9000억원 가량이 올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들어 손실이 사실상 현실화되면서 금융당국은 관련 부처 인력을 대폭 강화하고, 배상 기준을 준비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팀장·팀원 인사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 내 분쟁조정3국에 핵심 인력을 배치했다. 분쟁조정3국은 은행이나 금융투자 관련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H지수 하락에 따른 ELS 투자 손실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조기에 분쟁조정을 준비하는 차원으로 분석된다. 

현재 금감원은 여러 민원을 바탕으로 분쟁의 주요 유형을 분류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배상 기준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라임 사태 등 비슷한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주요 유형을 나누고 배상 기준을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과거 사례를 보면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배상을 하는데까지 몇 년이 소요된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분류나 배상 기준이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실이 현실화함에 따라 금감원은 최다 판매사인 KB국민은행 등 은행권에 대한 정식 ‘검사’도 곧 착수한다. 

앞서 지난해 11월 금감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자 긴급 실태 조사에 나섰다.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에 대해서는 은행검사1국이 현장 조사를 진행했고, 하나·
신한·우리·NH농협 등 주요 은행들과 미래에셋·KB·삼성·NH투자 증권 등은 서면 조사를 했다. 

손실이 현실화되면서 조사에서 검사로 전환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최다 판매사인 KB국민은행 등 은행권에 대한 정식 검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과거 ‘KB 잡는 귀신’으로 불리던 김형순 금융투자검사2국장이 은행검사1국장으로 임명되면서 KB금융그룹이 술렁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추가적인 사실 관계 등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앞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판매사들도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디스커버리, 옵티머스 등 그동안 금융감독원이 진행했던 조정 결과를 살펴보면,  불완전판매로 투자금 전액이 배상된 사례는 라임 무역금융 펀드, 헤리티지 펀드, 옵티머스 펀드 등 3건에 불과하다. 

앞서 3건은 민법 제 109조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근거해 계약 당시 판매사가 투자할 수 없는 대상에 투자하는 상품을 권유했거나, 이미 상당 부분 부실화된 상품을 소개해 투자자의 판단을 방해했음이 인정된 케이스다. 

반면 DLF, 디스커버리 펀드, 헬스케어 펀드 등 나머지는 모두 손실액에 대한 일부 배상에 그쳤다. 설명 의무 위반 등에 대한 배상 비율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30%를 기본으로 하되, 판매사의 내부 통제 책임 등에 20%를 가산해 50%를 기본 배상 비율로 산정됐다. 

이에 홍콩 ELS 사태 역시, 계약 시점인 2021년 당시 해당 상품 가입을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배상 비율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