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청룡의 해지만, 보험업계가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주요 보험사 CEO들은 올해 경제 상황을 ‘불확실성’으로 요약했다. 고금리·고물가·저성장에 더해 부동산PF 위기가 국내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길이 험난하지만 이들은 신년사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적극적인 디지털화로 고객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해외 보험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장, 조용일 현대해상 부회장, 이성재 현대해상 사장,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및 의장. 출처=각 사
왼쪽부터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장, 조용일 현대해상 부회장, 이성재 현대해상 사장,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및 의장. 출처=각 사

◇대세는 ‘디지털화’

주요 보험사 CEO들이 내세운 주요 경영 전략 중 하나는 ‘디지털화’다. 이를 통해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하는 소비자의 생활에 맞춰 최적화된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업무 환경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구본욱 KB손보 신임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의 선구자’를 올해 경영 전략 중 하나로 내세웠다. 구 사장은 “고객의 모든 일상이 디지털화된 지금 고객의 기대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 제공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기술·서비스 도입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과 프로세스 전반을 디지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해상 조용일 부회장·이성재 사장은 “디지털 투자를 확대해 현장의 업무 생산성 증대는 물론 고객 만족도까지 높일 것”이라며 디지털화를 통한 효율성 확대를 꾀하고 있다. 서국동 농협손보 대표이사도 취임사를 통해 “디지털 혁신 및 신사업 발굴 등을 적극 추진해 미래 성장기반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그동안 구축해 온 디지털 인프라를 유지 및 지속 성장시키기 위해 전진할 예정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및 의장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환경에서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중요하다”며 “외부 파트너의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과 서비스, 신기술을 활용해 고객 서비스와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지난 몇 년간 개방형 혁신 플랫폼 ‘이노 스테이지’를 통해 신진 스타트업 기업과 손잡고 고객 서비스를 개선했다. 특히 보험금 청구에서 지급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존 4.8시간에서 2.7시간으로 줄였다. 인공지능 기반 광학문자인식(AI OCR) 스타트업 로민과 협업한 결과다.

지난해에는 보험업계 최초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한 ‘교보GPT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교보생명은 우선 임직원들이 교보GPT를 업무에 활용하도록 지원한다. 이후 개선점을 찾아 보험약관GPT·은퇴설계GPT 등 고객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교보생명은 이 같은 디지털 혁신이 계속되도록 사내에 ‘혁신 문화’를 정착시킬 방침이다. “사내에 혁신 문화가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면 지난 수년간 구축해온 디지털 인프라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며 “팀장들은 팀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작은 혁신에 도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달라”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이사 사장. 출처=각 사
왼쪽부터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이사 사장. 출처=각 사

◇해외 진출로 성장 활로 모색

보험사 CEO들은 ‘해외 진출’에도 방점을 찍었다. 성장이 정체된 국내 보험시장에 사업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손보업계 1위 삼성화재의 이문화 신임 대표는 신년사를 통해 “기존의 해외 진출 사업 영역을 넘어 다양한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영 성과의 안정성을 제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삼성화재는 인도네시아·베트남·유럽·싱가포르·중국 등 5개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는 “적극적으로 신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도 전사적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홍 대표는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표 DB손보 대표 역시 올해 신년사에 수익성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확대한다는 포부를 담았다.

신한라이프는 지난 2일 열린 경영전략 회의에서 신한라이프 베트남 법인의 질적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올해 전속 설계사 채널을 새롭게 구축하고 기존 TM 채널의 영업모델을 최적화할 방침이다.

앞서 보험협회 수장들은 올해 보험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철주 생보협회장은 지난달 29일 신년사를 통해 “포화된 국내 보험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생보사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종표 DB손보 대표이사 사장,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출처=각 사
왼쪽부터 정종표 DB손보 대표이사 사장,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출처=각 사

◇손보사, ‘펫보험’ 경쟁 본격화

한편으로는 올해 손보사들의 펫보험 경쟁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정종표 DB손보 대표는 새해 경영 전략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사업 추진’을 내세우면서 “지난해 수립한 요양·펫보험 등 미래시장 선도를 위한 사업 모델들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KB손보는 지난달 29일 조직 개편을 실시하면서 펫보험 전담 부서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펫보험 신상품 개발 및 판매 등을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통해 신사업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손보사들이 이처럼 펫보험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펫보험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서다. 현재 펫보험 가입율은 2% 수준으로 낮지만,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도 펫보험 활성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삼는 등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본격적인 참전을 예고한 손보사들이 펫보험 ‘불변의 1위’ 메리츠화재의 자리를 흔들 수 있을지, 그 여부도 올해 손보업계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현재 펫보험 시장은 메리츠화재 독주 체제다. 메리츠화재의 펫보험 시장 점유율은 80% 안팎에 달한다.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이사 사장(왼쪽),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 출처=각 사

◇‘제3보험’ 확대 나서는 생보사

손보업계가 펫보험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생보업계는 ‘제3보험’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생보사들의 주력 상품이었던 종신보험은 고령화, 1인 가구 확대 등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으로 인해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추세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는 생보업계가 처한 현 상황에 대해 “전통적인 종신보험에 대한 고객 니즈는 줄어드는 반면 생존 시 다양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건강, 상해보험 등 제3보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보사들은 달라진 고객 수요에 발맞춰 올해 제3보험 영역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KB라이프생명은 제3보험 추진 태스크포트(TF)를 신설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이를 통해 올해 자사 건강보험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겠다는 복안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제3보험 신상품도 연달아 내놓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2일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종신까지 주요 성인질환을 보장하는 ‘The H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삼성생명은 144개 특약을 탑재한 ‘다(多)모은 건강보험 필요한 보장만 쏙쏙 S1’을 이달부터 판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