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아트 거장 빅토르 바자렐리. 출처 : 바자렐리 뮤지엄.
옵아트 거장 빅토르 바자렐리. 출처 : 바자렐리 뮤지엄.

과학인가, 심리학인가 아니면 디자인 패턴인가. 그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20세기 추상 미술 ‘옵아트’ 전시회가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옵아트를 대표하는 헝가리 출신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다.

‘옵아트(Op Art)’는 광학적 예술 또는 시각적 예술이라는 뜻을 지닌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이다.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키는 미술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동일한 패턴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거나, 쳐다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환영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들이 모두 옵아트 계열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헝가리의 수교 34주년 기념으로 개최되었다. 덕분에 헝가리 국립 부다페스트 뮤지엄, 바자렐리 뮤지엄이 소장한 바자렐리의 작품 200여 점이 동원될 수 있었다.

Zebras, 1939. 사진 제공= © Vasarely Museum, Budapest
Zebras, 1939. 사진 제공= © Vasarely Museum, Budapest

바자렐리는 부다페스트 대학 의학부의 입학 자격을 얻었지만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후 데생과 드로잉을 배워 22세때 뮤힐리 아카데미(Budapesti Műhely)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 피트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등 당대 가장 신선하고 파격적인 추상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기간에 바자렐리는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헝가리 출신의 혁신적인 예술가 모홀리 나기(Moholy Nagy,1895~1946)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은 구성주의 작가 모홀리 나기는 바우하우스에서 회화, 사진, 조각, 금속, 선전미술, 인쇄, 평면 및 입체의 기하학, 역학, 광학 등 온갖 장르와 분야를 탐구하며 예술 혼을 불사르고 있었다.

바자렐리도 러시아 구성주의에 영향을 받아 예술은 건축, 가구, 패션, 교육, 문화에 이르는 모든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하여 그래픽 아티스트, 광고 디자이너, 추상미술 작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거뒀다.

1940년대 들어 기하학적 형태와 그에 상호작용하는 생기 넘치는 컬러를 특징으로 하는 바자렐리의 독창적 스타일 ‘옵티컬 아트’가 만들어 졌다.

그는 기하학적 나열에 머물지 않았다. 도형을 면밀히 계산하고 배치하는 시각적 구성을 연구했고, 붓자국을 내지 않고 편편하게 색칠하는 법 등 채색방법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Vega, 1956. 사진 제공= © Victor Vasarely
Vega, 1956. 사진 제공= © Victor Vasarely

1965년 2월 23일부터 4월25일까지 뉴욕 현대미술관(모마, MoMA)에서 ‘반응하는 눈(The Responsive Eye)’ 전시회가 열렸다. 바자렐리도 초대되어 참여했다. 

큐레이터 윌리엄 세이츠(William Seitz)가 기획한 ‘반응하는 눈’은 대성공이었다. 1965년 2월부터 4월까지 두달간 관람객이 18만명이나 몰렸고, 모든 대중 매체가 연일 보도했다.

전시 작품들이 선보인 다양한 패턴들은 당시 디자이너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의상이나 안경, 도시락통, 심지어 자동차 디자인에까지 ‘옵아트’가 응용되었다.

‘반응하는 눈’전은 바자렐리의 작가 인생도 바꿨다. 미국 언론은 그에게 ‘옵아트의 원조(grandfather)’라는 별칭까지 헌사하며 스타 작가로 만들어 줬다. ‘반응하는 눈’은 다큐(약 30분짜리)로 제작되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영어로 검색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상 속 관람객 중에는 인기 여배우 파멜라 티핀의 모습도 보인다.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전에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등 작품의 전반과 함께 그의 예술 인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관람객들에게 새롭고 환상적인 형태와 색채,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번 전시회는 4월 21일까지다.

Locmaria, 1952. 사진 제공= © Victor Vasarely
Locmaria, 1952. 사진 제공= © Victor Vasarely

‘옵아트’의 유래에 대해선 잘못된 언론 보도가 많다. 이번 전시회 보도에서도 여전히 오보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 기사는, ‘옵아트’가 1965년 모마 전시회때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가 작명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언론사는 더 타임스( the times) 기자가 작명했다고 했던데, 더 타임스는 영국의 신문사 이름이다.

폴란드 태생의 미국 옵아트 작가 줄리안 스탄착((Julian Stanczak,1928~2017)이 생전에 ‘정답’을 밝힌 바 있다.

스탄착이 1964년 뉴욕의 마사 잭슨 갤러리에서 첫 작품전을 열었을 때 일이다. 전시 오픈에 앞서 갤러리에 가보니, 포스터에는 ‘Julian Stanczak: Optical Paintings’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다.

작가와는 일절 상의없이 낯선 명칭이 사용된 이유를 묻자 마사 잭슨 대표가 이렇게 설명했다. “그래야 비평가들이 덥썩 물거든요(chew on).” 

예상대로, 도널드 저드(Donald Judd)라는 젊은 조각가가 타임지의 아트 매거진에 스탄착의 전시회에 대해 비평문을 실었다. 그 글 속에서 저드는 회화에 국한된 ‘Optical’의  장르를 확장하면서도 단어 자체는 최대한 압축한 ‘Op Art’라는 신개념을 제시했다.

도널드 저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예술가 도널드 저드와 동일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