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자주포 K9.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자주포 K9.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3년의 방산업계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인한 각국의 군비 확충을 발판 삼아 곳곳에서 수출 대박을 터트렸다. 국방부의 가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방산 수출 계약 체결액은 130억달러(16조9715억원)를 상회했다. 173억달러(22조5851억원)를 기록한 2022년에 이어 글로벌 방산 수출국 상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수출대상국과 무기체계도 다변화됐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방산 수출대상국은 2022년의 4개국에서 2023년엔 12개국으로 늘었다.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권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권, 유럽의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까지 다양한 국가에 한국의 무기체계를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대(對)폴란드 수출 의존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출 무기체계 종류도 기존 6개에서 12개로 2배 늘었다. KAI(한국항공우주)는 연말인 12월 29일에도 FA-50GF 전투기 12대를 폴란드군에 인도하면서 마지막까지 희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마냥 좋아하기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전체 수출액이 130억달러로 2022년의 173억달러 대비 24.8% 줄어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당초 정부가 설정한 2023년 목표 방산 수출액 200억달러에 비하면 35%가량 부족한 수출액이다. 국방부는 “K-9 자주포와 K-2 전차, 다연장로켓 ‘천무’ 등 폴란드와 체결 예정이었던 2차 이행계약 협상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기체계를 타국에 수출할 때는 기술이전과 같은 절충교역과 수출금융지원 등이 필요한데, 해당 사안에 다소의 문제가 발생해 실적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국방부는 2024년에도 이어서 추가 이행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현재 국내 방산업체 중 폴란드와 2차 이행계약을 성사시킨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지난해 12월 1일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등을 추가 수출하는 약 3조447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아직 잔여 물량인 K9 318대와 천무 70대의 3차 실행계약을 추가로 체결해야 한다. 현대로템은 아직 2차 계약단계에서 발이 묶였다. 현대로템이 지난 2022년 폴란드와 체결한 K2 기본계약 물량은 1000대다. 1차 계약 물량을 제외하고 820대의 납품이 남아있다.

문제는 수출금융이다. 방산 수출은 주로 정부를 대상으로 한다. 절충교역, 수출금융지원, 정부 간 거래 등으로 활성화됐다. 계약 규모가 거대하고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으며, 장기간 운용하는 방산물자 특성상 무기 판매국은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 장기 분할상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출 규모도 크고 장기간 거래로 상업은행을 통한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수출신용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수출입 과정에서 요구되는 수출금융을 지원한다. 문제는 현행 수출입은행법 및 시행령에 동일 대출자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는 15조원이다. 지난 2014년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상향된 후 10년째 동결 중이다. 총 4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견되는 폴란드 방산 수출을 지원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회에선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최대 35조원까지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해 국회 본회의의 문턱조차 밟지 못하고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급한대로 5대은행(NH농협·하나·KB국민·신한·우리)이 나서 폴란드향 2차 계약에 3조5000억원 상당의 금융지원을 했지만 임시방편일뿐, 조속한 수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2월 폴란드 그디니아항구에 K2전차와 K9자주포 초도물량이 도착한 가운데 엄동환 방위사업청장(가운데)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폴란드 그디니아항구에 K2전차와 K9자주포 초도물량이 도착한 가운데 엄동환 방위사업청장(가운데)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출금융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최근 정권이 교체된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 도입에 대한 태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폴란드는 지난 2015년 프랑스로부터 에어버스의 군용 카라칼 헬리콥터 50대를 구매하는 가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듬해 정권이 교체되며 계약을 취소한 전례가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는 지난해 1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산 구매의 상당 부분은 한국이 제공하기로 한 차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 한국의 대 폴란드 차관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과의 계약이 지속되길 희망하지만, 일부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까진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정부 간 거래는 국가 신용과 관련된 문제라 뒤집기 쉽지 않고, 현재 1차 무기체계 납품이 완료된 상태라 기존 무기와 호환되는 새로운 무기체계를 타국에서 도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계약 파기 가능성은 미약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불어 “다만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계약 성사 의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수출금융 문제 해결에도 힘쓸 필요는 있다”며 “폴란드 2차, 3차 이행 계약의 성공적 체결은 향후 미국, 중동, 유럽 등 여러 선진 방산시장 공략을 위한 주요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기에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