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이지템 대표
이해욱 이지템 대표

 

미국의 세계적인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랜스페런시 마켓 리서치는 2021년 ‘의료용 체온계 글로벌 키플레이어 10대 회사’에 국내기업 이지템을 선정했다. 이지템은 미국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Exergen Corporation(Exergen)의 다음 순위였고, 일본의 대표적인 의료기기 회사 Omron 보다는 한 단계 높았다.

2020년 체온계 분야에서만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이 기업은 놀랍게도 그로부터 3년 후인 2023년, 총 매출 350억원의 90% 이상을 미용기기로 일으킨다.

이지템의 이해욱(66)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최초’라는 수식어를 자주 달았다. 구부려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형상기억합금’을 독점 개발해 최초로 국산화했고, 전량 수입하던 적외선 센서도 최초로 국산화했다. 국산화된 적외선 센서로 한국 최초의 적외선 귀 체온계를  제조한 것도 그다.

새해 아침,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K-뷰티까지 접수하려 하는 이해욱 대표가 말하는 창업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본다.

 

- 창업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1958년 개띠, 올해로 66세입니다. 창업은 1994년도에 했으니 30년 됐고요. 1980년대 말에 금속재료 석사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이 어느 기업의 연구소였습니다. 그런데 연구해서 회사에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면 받아주는 경우가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있는데 실현되지 않으니 헛발질하는 느낌이었죠. ‘그럼 내가 해보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겁 없이 창업을 했습니다.

 

이해욱 이지템 대표
이해욱 이지템 대표

 

그렇게 ‘메타텍’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린 그는 적외선 센서를 국산화하고 2001년 적외선 귀 체온계를 만들었다. 이 제품의 이름이 현재의 사명인 ‘이지템’이다. 2008년 스핀오프 해 의료기기 전문회사로 전환하며 사명을 변경했다. 그 후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이지템은 다시 한번 주목받는다.

 

- 2023년 2월 코로나 방역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하셨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비접촉 체온계를 찾았는데, 비접촉 체온계의 핵심은 적외선 센서예요. 하지만 당시 국산 센서가 없었어요. 예전에 만든 적이 있지만 시장이 너무 작아서 제조를 그만뒀거든요. 그런데 세계 많은 나라들이 자국 수요 충당을 위해 센서 수출을 막아버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물량이 동난 데다 생산 인력조차 코로나에 걸려버린 상황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센서를 공급받을 데가 없었습니다. 식약처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이것도 못 만드냐”는 말이 나왔고, 저희 회사를 찾아와서 국산화하자는 제안을 했죠. 그래서 125만개의 체온계를 생산했고 잘했다고 표창을 받은 겁니다. 체온계 제조업체 수가 가장 많았을 때 30개가 넘었는데 저희가 생산량 1위로 전체 물량의 20% 이상을 공급했어요. 덕분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접촉 체온계 공급이 원활했습니다.

- 적외선 센서, 체온계를 제조해오다 어떻게 피부미용 시장에 진출하게 됐나요?

적외선 귀 체온계는 이미 개발·제조한 지 15년이 되다 보니 경쟁업체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체온계는 주로 어린이들에게 많이 쓰였는데, 출생아가 감소하면서 시장이 줄었습니다. 단일제품보단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죠. 그렇게 생각해낸 아이템이 전기천공(electroporation) 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였습니다. 피부에 전기를 가해서 피부세포를 일시적으로 여는 기술입니다. 그 기술을 이용해 미용 성분이나 연고의 흡수율을 5배 정도 높이는 기기를 개발하고 의료 임상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상 비용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의료기기가 아닌 화장품 흡수를 돕는 미용기기로 제품 성격을 일단 변경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제품이 저희 주력 제품이 됐죠.

- 주력 제품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팬데믹 시기엔 역시나 적외선 체온계가 주력제품이었지만 2023년엔 총 매출 350억원에서 90% 이상이 미용기기에서 나왔습니다. ODM 분야에서는 이지템이 지금 자타공인 한국 1위 기업이 맞습니다. 가장 효자상품은 APR의 메디큐브예요. 저희 브랜드는 아니지만 물량 100%를 저희가 공급했으니까요. 저희가 제품 개발부터 모든 걸 만들어서 납품을 하면 그 제품을 가지고 자기네 브랜드로 파는 게 ODM 사업이거든요.

- 자사 브랜드 제품을 만들 생각은 없나요?

저희 이지템도 2024년부터는 자사 제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국내 시장에서는 고객과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니 클라이언트와 부딪히지 않겠어요? 그러니 해외 시장부터 공략하려 합니다. 그리고 개인 디바이스가 아닌 에스테틱이나 뷰티 샵의 전문 제품은 저희 클라이언트들의 관심 분야는 아니에요. 이런 전문 장비들엔 저희 브랜드를 달아도 큰 영향이 없습니다.

이해욱 이지템 대표
이해욱 이지템 대표

- 작년 11월 피부미용 기기 셀라이저로 수상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은 어떤 의의를 가지나요?

‘로레알 빅뱅 오픈이노베이션’은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 이지템이 셀라이저로 참여해 우승한 거예요. 그 특전으로 장관상을 수상했고요. 세계적인 기업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죠. 해외 시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현재 로레알과 공동으로 제품도 제작하고 있고, 향후에는 이지템이 로레알에 납품하는 업체가 될 거예요.

- 셀라이저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더 어려운 기술들도 있는데 셀라이저가 선택된 이유가 있어요. 사실 업계에서 안고 있는 오래된 문제가 있습니다. 의료기기와 미용기기가 구별이 어렵다는 거예요. 나라마다도 규제가 달라요. 어떤 제품은 일본에 가면 미용기기인데 한국에선 의료기기예요. 잘못하면 규제를 다 위반하게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핸드피스(손잡이)만 갈아끼우면 기능이 달라지도록 만든 게 셀라이저입니다. 기능을 마음대로 추가하거나 빼서 조합하는 게 가능해요. 각 국가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 것만 조합해낼 수가 있어요. 다국적 기업인 로레알로서는 정말로 원하던 기술 혁신이었을 거예요.

- 2024년 새해 목표는?

저희 회사가 2023년 11월 개최된 홍콩 코스모프로프에 참가했습니다. 코스모프로프는 화장품 등 뷰티케어 박람회예요. 이번에 총 44개국 2500여개 전시업체가 참가하고 119개국 6만5000여명의 참관객이 방문했을 정도로 규모가 크죠. 2024년 3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도 코스모프로프가 개최되는데 전부 해외 바이어들을 상대로 합니다. 거기에 이지템 자사 브랜드를 출품할 겁니다. 해외 진출을 계속 이어나가는 게 목표고, 한쪽으로는 로레알 같은 큰 업체와 꾸준히 ODM 비즈니스를 할 겁니다.

2023년 매출이 350억 정도인데, 2024년 목표는 500억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업이익은 60억 정도 내겠죠. 고부가 다품종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한 해가 될 겁니다.

- IPO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 첫 번째로 2024년 1월 중순쯤에 100억 규모로 1차 투자 유치를 하고, IPO는 2025년 하반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 본인만의 경영철학이 있다면?

‘기술 하나를 파고들면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겁니다. 이제 품질 경쟁의 시대를 넘어서, 독보적 기술이 시장을 선도하는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적외선 체온계, 열화상 체온계를 만들었지만 거기서 그칠 생각은 없어요. 주변 온도에 영향받지 않는 체온계를 만들기 위해 몸속 3~5cm 심부의 체온을 측정하는 기술을 연구 중입니다. 이런 경영철학을 실천하려면 R&D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해요. 그래서 전체 직원 77명 중 24명을 개발 인력으로 두고 개발비를 40억원 넘게 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