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초상화가 카틴카 램프(Katinka Lampe, 1963~)의 개인전이 서울 서촌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네덜란드는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프란스 할스 등 인물화의 거장들을 배출한 나라다. 이러한 전통은 네덜란드 현대미술계에도 이어져 자국 특유의 감성을 다양한 매체와 기법 속에 담아내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해 인물화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스헤르토헨보스 소재 미술-디자인 아카데미 출신으로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카틴카 램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사진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며 네덜란드 거장들이 보여줬던 사실적 인물화의 계보를 잇고있다.
카틴카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레임(Frame)’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액자틀이나 가구나 건물의 뼈대로 번역되는 프레임은 어떠한 이미지를 사람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의미도 지닌다.
작가는 프레임을 직접 만드는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방향과 틀을 정해주고 작품 속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봐야 하는지 조건 지어 준다.
작가는 프레이밍 작업에 카메라를 활용한다.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유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사진부터 촬영한다. 모델을 확보한 뒤 조명, 각도, 오브제의 위치 등을 정해 사진을 찍는다. 구성을 직접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이미지의 일부를 과감히 잘라내거나 확대하고, 다양한 각도로 앵글 변화를 주며 편집한다.
사진 프레이밍(framing)을 마친 후 캔버스로 옮길 때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 얇은 붓으로 캔버스에 디테일한 스케치를 한 뒤,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짠다. 솔이나 헝겊으로 물감 덩어리를 계속 문지르면서 원하는 색으로 만들어내 사용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다양한 인종, 성인, 어린이 모델들이 등장하는데,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제목조차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인물의 실제 머리색과 다른 컬러로 머리카락을 칠한다거나 얼굴이 거의 안 보이는 뒷모습만 화폭에 담아낼 때도 있다. 어떤 작품들은 하복부부터 발까지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초상화의 범위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작가가 설정한 작품 속 인물은 작가가 내밀하게 의도한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등 정체성은 일절 소개되지 않기에 작가의 초상화는 객관적으로는 ‘익명성’을 띤다. 이에 관람자들은 그 익명의 인물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프레임과 다른 관람자의 프레임 속에서 초상화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초상화의 틀을 깨는 ‘My Frame Your Frame’전은 내년 1월 1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