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에서 납치한 화물선에서 주변 바다를 감시 중인 후티 반군들. 사진=EPA 연합뉴스
홍해에서 납치한 화물선에서 주변 바다를 감시 중인 후티 반군들. 사진=EPA 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 두 달째가 지나고 있다. 하마스의 끈질긴 저항과 주변 아랍국의 대(對)이스라엘 압박정책으로 인해, 분쟁지역 인근의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예멘의 후티반군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응한다는 명목 하에 수에즈가 위치한 홍해를 운항하는 민간 선박들을 공격·나포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후티반군은 홍해 남부에서 일본의 닛폰유센사가 운영하는 화물선 ‘갤럭시리더’호를 나포했다. 선주가 이스라엘 사업가와 관련 있다는 이유에서다. 후티반군은 앞으로 이스라엘 기업이 보유한 모든 선박을 나포하겠다고 알렸다. 이후 지난달 25일 몰타 국적 컨테이너선 ‘CMA CGM SYMI’가 드론에 피격됐으며, 26일엔 라이베리아 국적 ‘센트럴파크’호가 나포돼 하루만에 미 해군에게 구출됐다.

글로벌 선사들, 잇따른 ‘희망봉 우회 선언’

이처럼 후티반군의 위협이 거세짐에 따라, 글로벌 해운사들은 당분간 해당 지역을 피해 희망봉으로 우회할 것이라고 알리고 있다. 세계 5위 선사인 독일의 하팍로이드는 18일 공지를 통해 “15일 하팍로이드 선박 ‘Al Jasrah’가 후티반군에 의해 공격받았다”며 “홍해에서 승무원과 선원들의 안전이 충분히 확보되기 전까지 수에즈-홍해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HMM역시 지난 15일 홍해를 지나던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HMM 더블린호’에게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HMM과 하팍로이드가 속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차원의 협의 끝에 우회가 결정됐다.

국내 해운업계에서는 해상 안전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은) 20일 성명을 통해 “분쟁 해역을 항해하는 국적선박이 상당하기에 선원 보호를 위한 선제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선주는 인근 위험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승선한 모든 선원들에게 하선권을 보장하고, 선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수에즈 위기로 운임 상승세…화주 부담 가중되나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선박이 많아지면서 세계 물류 정세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운하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돌아가야 하는 항로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요충지로, 통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글로벌 물류 유통에 차질이 생긴다. 한 예로 지난 2021년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던 중 좌초되며 운하가 일주일간 봉쇄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일주일 동안 전 세계 물류의 12%가 마비되고, 수십조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일시적으로 유가가 폭등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전쟁으로 운하가 장기 봉쇄될 경우, 이보다 더 큰 피해가 예견된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해 통행을 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2021년 7월 29일(현지시간) 새벽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 터미널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해 통행을 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2021년 7월 29일(현지시간) 새벽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 터미널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수에즈운하는 지난 3차 중동전쟁 이후 70년대까지 한동안 폐쇄되며 세계 무역업계는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추가비용을 지출하며 희망봉으로 우회해야 했었다.

특히 화주들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이스라엘로 직항하는 선박들의 전쟁 프리미엄은 전쟁 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급등했다. 지난달엔 대한민국 최대선사 HMM과 이스라엘 최대선사 ZIM라인이 이스라엘 인근 서비스에 위험부담금을 추가로 전가할 것이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정기선인 컨테이너 항로는 계약에 따른 운항 의무가 있기에, 운항 의무를 지키는 대가로 화주들에게 위험부담금을 추가 징수하는 방식이다.

반면 해운 운임은 반짝 상승했다. 대표적 컨테이너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한동안 900포인트 선에서 머물다 12월 들어 본격적으로 상승하며 1100포인트를 바라보고 있다.

수에즈 운하가 아닌 희망봉을 우회하면 기존 노선보다 6500km를 더 항해해야 한다. 소요 기간은 7~8일 늘어난다. 기간 연장에 따른 연료 소모량이 늘어나며 운임도 동시에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에즈와 더불어 양대 운하로 꼽히는 파나마 운하의 상황도 좋지 않은 점도 운임 상승을 부채질 하는 요인이다. 가뭄이 지속되며 수위가 낮아져 선박의 통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12월 첫 주 기준 파나마운하를 통과한 선박은 167척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1척 줄어들었다.

업계에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 물류계 ‘성수기’를 앞두고 공급망 혼란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컨테이너·벌크 운임 상승세가 이어지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런 단기적 운임 상승세가 선사들에게 호재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회복과 소비심리 부활 등 긍정적인 물동량 증가로 인한 운임 상승세가 아닌지라 판단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운임만 지속 상승할 경우 화주의 부담이 가중돼 전체 물동량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해운업계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20일 수출 비상대책반 회의를 개최하고 “파나마 운하의 가뭄 지속, 홍해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해상물류 지연, 운임비 상승 등이 우려된다”며 “코트라, 무역협회 등과 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수출기업에 신속한 정보공유를 강화하는 한편, 수출바우처 사업 등을 통한 지원방안과 더불어 기업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방안을 유관기관과 함께 적극 강구해 나감으로써 최근의 양호한 수출 흐름세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