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던 HMM 매각절차가 고지를 넘었다. 18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하림그룹을 HMM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지난 11월 23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하기 위한 본입찰이 시행된 이후 3주가 지나서야 결론이 났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세부 조건을 논의한 뒤 내년 상반기 내 거래를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매각이 최종 성사될 경우 하림은 재계 서열 13위로 14계단 도약하게 된다. 올해 하림의 자산은 17조원으로 재계 27위, HMM은 25조8000억원으로 19위다. 인수가는 6조4000억원이다.

산업은행 본점. 사진=박상준.
산업은행 본점. 사진=박상준.

‘승자의 저주’ 우려 일축한 하림, 팬오션으로 ‘시너지’ 노린다

하림그룹은 19일 “앞으로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를 갖고 매각측과의 성실한 협상을 통해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HMM과 팬오션은 컨테이너-벌크-특수선으로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으며, 양사가 쌓아온 시장수급 및 가격변동에 대한 대응력이라면 어떠한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황도 충분히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입찰 내용과 세부 계약조건은 비밀유지계약에 의거해 공개하지 못한다고 알렸다.

하림의 HMM인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거론하기도 한다. HMM에 비해 기업 규모가 작은 하림이 이번 인수를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융통한 여파로 정작 HMM의 경영에는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6조4000억원의 인수가는 하림이 현재 보유한 현금 10조원의 60%를 넘는다. 하림은 자체 자금조달이 힘든 만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인수금융을 마련했다.

무리하게 끌어온 인수금융을 해결하기 위해 HMM의 현금성 자산을 유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됐다. 하림그룹은 이번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그룹 벌크선사인 팬오션에서 5000억원대 영구채를 발행한 바 있다. HMM에 쌓여있는 14조원 상당의 현금성 자산이 선박 매각, 과도한 배당 등을 통해 그룹사 자금조달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에서는 이같은 ‘현금 빼먹기’를 방지하기 위해 본입찰 전 주주간계약서(SHA) 초안을 인수 후보자들에게 발송했다. HMM 인수 뒤 지분을 최소 5년간 보유하고, 3년간 연간 배당금 최대 5000억원으로 제한하며 매각 측에 사외이사 지명권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HMM의 현금성 자산을 함부로 유용하거나,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리고 지분을 매각하는 ‘먹튀’를 경계한 조치다.

이에 하림그룹이 산은과 해진공에게 △지분 5년 의무 보유 대상자에서 JKL파트너스 제외 △매각 측의 사외이사 지명 불가 △매각주체가 보유한 1조6800억원 영구채의 3년간 주식 전환 금지 등 각종 역(逆)제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각주체에서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데다, 경쟁사인 동원그룹마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제안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이같은 우려에 대해 김홍국 하림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승자의 저주는 없다. 해운업은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팬오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HMM을 세계 5위권 해운사로 만들어 보이겠다”며 그간의 논란을 일축했다. 더불어 “양재 물류단지 매각 등의 계획은 전혀 없으며, 인수 자금 준비는 끝난 상태”라고 확언했다. 인수 성사를 위한 더 이상의 무리한 출혈은 없을 것임을 공언한 셈이다.

하림이 내세우는 점은 컨테이너선사 HMM과 그룹 벌크선사 팬오션의 ‘시너지’다. 해운업 영위 경험과 업계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한다는 취지다. 특히 HMM은 그간 컨테이너선 일변도를 유지하며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팬오션이 가진 벌크선대가 HMM의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MSC와 머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경쟁사들은 이미 벌크선대 확충뿐 아니라 육상·항공물류 진출, 항만 터미널 사업 개시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다가올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에 대비하고 있다”며 “HMM과 팬오션의 시너지 역시 단순히 컨테이너 – 벌크 시너지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진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정기선인 컨테이너선과 비정기선 위주인 벌크선은 사업의 성격도, 시황도 명백히 다르단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구채·내부 반발 문제 해결해야

이처럼 장미빛 시너지 청사진을 그려 나가는 하림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다.

먼저, 산은과 해진공이 여전히 보유 중인 영구채 문제다.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 10월 20일 1조원 규모의 HMM 영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각각 8000만 주, 1억2000만 주가 전환 청구됐다. 전환가액은 5000원이다. 주식 전환으로 산은과 해진공의 HMM에 대한 지분율은 40.6%에서 57.9%로 17.3% 포인트 늘어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주식 전환되지 않은 영구채는 1조6800억원에 달한다. 이번 매각으로 하림이 57.9%의 지분을 전부 사들인다고 해도, 추후 잔여 영구채가 주식 전환된다면 하림의 지분율은 57.9%에서 38.9%로 떨어진다. 반대로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은 33%로 상승한다. 민영화를 했음에도 정부와 공기업의 입김이 다시금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인수 후 경영권을 행사하며 적극적 투자와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하는 하림 입장에선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와 내부의 예고된 반발 역시 하림이 넘어야 할 벽이다. HMM 해원연합노조(해상노조)는 하림의 HMM 인수에 반발해 파업을 예고했다. 이번 주 안에 단체협약 결렬을 사측에 통보하고 파업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HMM 노사는 임금을 제외한 복지 부분에서 협약을 이어오고 있었다.

글로벌 선사 2023년 3분기 실적 현황. 자료=알파라이너.
글로벌 선사 2023년 3분기 실적 현황. 자료=알파라이너.

해원노조는 글로벌 해운 시황이 부진한 상황에서 자금력이 약한 하림이 HMM의 경영권을 차지하는 상황을 경계한다. 세계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올해 3분기 적자로 접어들며 1만명을 해고했고, 대표적 컨테이너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지수 역시 지난해 최고점인 5000포인트를 기록한 후 꾸준히 하향해 현재는 마지노선 수준인 10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정근 HMM 해원노조위원장은 “중동지역 등 국제 정세 불안과 해운 시황 불황이 겹친 상황에서 파업을 추진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지만, 하림 매각 저지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앞서 11월에 있었던 졸속매각반대 기자회견에서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외국 선사에서 한국 화주 기업에 높은 운임을 부과하려 했던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며 “조속한 매각보다 먼저 HMM이 도태되지 않게 경영 정상화와 적격 인수 후보자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1월 21일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HMM 졸속 매각 반대 결의대회. 400여명의 임직원들이 현장에 참석했다. 사진=박상준.
11월 21일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HMM 졸속 매각 반대 결의대회. 400여명의 임직원들이 현장에 참석했다. 사진=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