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HMM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2023년 겨울은 글로벌 해운업계에 유독 춥게 다가온다. 본디 해운업계에선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성탄절, 신년이 몰린 연말연초가 ‘대목’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글로벌 정세 불안과 미국, 유럽, 중국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벌이가 예년 같지 않은 모양새다. 대표적 컨테이너 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지수는 마지노선 수준인 1000포인트를 간신히 유지 중이다. 지난해 동기 대비 200포인트가량 낮다. 글로벌 운임 하락과 탈탄소 규제에 시달렸던 해운업계. 1년 동안 연말만 바라봤지만, ‘산타’는 결국 오지 않았다.

2024년 서비스 노선 개편 예고한 ‘디 얼라이언스’

이런 상황에 글로벌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가 2024년 서비스 항로 개편 소식을 알렸다. 디 얼라이언스에는 대한민국 최대 국적선사인 HMM과 독일 하팍로이드, 일본 ONE, 대만 양밍해운 등 세계 10위권 안의 선사가 다수 속해있다.

하팍로이드는 “안정적 운항 일정을 확보하고 더 넓은 노선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부 네트워크를 재구성한다”고 14일 밝혔다. 이에 따라 디 얼라이언스가 운영하던 노선 일부에 추가 선박이 투입될 예정이다. 재구성된 서비스는 2024년 4월부터 시행된다.

주력 서비스인 아시아 -미주 서안 네트워크는 PS3, PS7 등의 노선에 일부 기항지가 변경·추가됐다. 특히 PS7 노선의 신규 기항지로 대한민국의 부산이 추가됐다. 싱가포르를 출발해 태국 램 차방 – 베트남 카이 멥 – 남중국 – 부산 – 로스앤젤레스/롱비치 – 오클랜드 – 홍콩 – 싱가포르에 걸치는 노선이다.

PS5 노선 서비스는 일시 중단 상태를 유지한다, 지난 8월 디 얼라이언스는 “시황을 고려해 태평양 횡단 PS5 노선을 일시 중단함과 동시에 PS3, PS6 등 서비스의 적용 범위를 넓힌다”고 밝혔다. 디 얼라이언스는 이번 서비스 조정 발표에서도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PS5 노선 중단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PS5는 일본 ONE이 투입한 8000~9000TEU급 선박 6척이 상하이 – 로스앤젤레스 – 도쿄를 오가는 노선이다.

디 얼라이언스는 아시아 – 북유럽의 중단된 일부 노선도 현상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0월 중단된 FE5 노선은 태국과 독일, 영국 등을 잇는 노선이다. 이번 발표로 PS5·FE5 노선은 2024년 4월까지 계속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해운동맹 ‘오션 얼라이언스(프랑스 CMA, 중국 코스코, 대만 에버그린)’역시 조만간 2024년 서비스 변동 정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글로벌 1, 2위 선사의 동맹인 ‘2M(스위스 MSC, 덴마크 머스크)은 2025년 결별을 앞둔 만큼 별도의 서비스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월 14일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 점유율 순위. 상위 10개 선사들이 대거 포함된 3대 해운동맹의 격변이 예고됐다. 자료=알파라이너
12월 14일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 점유율 순위. 상위 10개 선사들이 대거 포함된 3대 해운동맹의 격변이 예고됐다. 자료=알파라이너

본격 각자도생 시대 열리나

해운 동맹들이 결별을 택하거나 운영 서비스에 변동을 주는 이유는 해운 시장에 과열 경쟁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전문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2024년 예상 물동량을 2억790만TEU로 정했다. 2023년과 비교하면 3.8% 늘어난 수치다. 반면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투입되는 컨테이너 선복량은 2970만TEU로, 2023년 대비 6.8% 늘어난다. 수요에 증가세에 비해 선박 공급 과잉이 예고되며 본격적인 저가 운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코로나 특수 기간 2년 동안 급증한 신조선 발주 물량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한 만큼 향후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시황 부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HMM의 선복량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HMM의 현재 총 선복량은 78만TEU를 상회한다. 내년 상반기엔 여기에 15만TEU 가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HMM은 지난해 7월 “2026년까지 사업 다각화·선박 확보 등에 1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별을 예고한 MSC와 머스크는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중고선대를 사들여 선복량을 대폭 확장하는 한편, 사업을 다각화하며 종합물류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머스크는 여유가 없다. 올해 3분기 적자를 기록하며 1만명을 해고했다. 체질 개선을 위해 아시아 물류 시장에 본격 진출 중이다. 지난해 36억달러 규모의 홍콩 LF로지스틱스를 인수하며 아시아 15개국의 물류센터 200여개를 확보했다. 최근엔 동남아 물류사업에 3년간 6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MSC는 지난 2021년 브라질 물류기업 로그인 로지스티카와 프랑스 물류기업인 볼로레 로지스틱스의 아프리카 사업부를 인수했다. 또 항공사 ‘MSC 에어카고’를 설립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항공물류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오션 얼라이언스는 2027년 동맹 계약이 종료된다. 계약 연장은 미지수다. 디 얼라이언스는 2030년까지 함께한다.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시장 변화 대비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M이 결별을 결정한 순간부터 글로벌 해운동맹에 본격적인 각자도생 시대가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며 “친환경 선대 확보와 사업 다각화 등으로 저운임 치킨게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