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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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은 잠시 뜬 유행이 아닌 일상 속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챗GPT 등 대규모 언어모델이 대중화되고 범용AI 등장까지 점쳐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규제 노선이 다르게 펼쳐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혁신 친화적인 규제 체계를 추진하는 미국과 인공지능법을 통해 예방적인 규제 체계를 추진하는 유럽연합의 방향성에 차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AI의 주도권을 쥔 미국, 혁신 친화적 규제

미국은 혁신 친화적인 규제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AI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AI를 산업정책이 아닌 안보 문제로 본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행정명령은 ▲AI 안전 및 보안 기준 마련 ▲혁신과 경쟁 촉진 ▲연방 정부의 사용과 조달을 위한 지침 개발 ▲소비자 보호 ▲노동자 지원 ▲형평성과 시민권 증진 ▲국제 파트너와의 협력 등 크게 8가지 내용을 담았다.

골자는 “AI 관련 정보를 정부와 공유”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AI 출시 전 국가 혹은 경제적 안보에 위험이 되는지 상무부 산하 기관에 심사 받아야 한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AI의 허위 정보 등을 막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 기업의 AI기술을 이용하는 외국인, 외국기업도 대상에 포함해 AI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백악관의 행정명령이 AI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미국 중심의 업계 재편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지난 12월 12일 보고서를 통해 “NASA에서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AI가 정부 기관 200개 이상 업무에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1200개 이상 업무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228가지 서로 다른 방식의 AI를 이미 사용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이 지난 1년 내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 전반에 걸쳐 AI가 빠르게 확산되는 움직임이 포착된 셈이다.

보고서는 ‘비밀’ 기술들에 집중하며 안전 장치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기관들은 총 1241개 AI 사용 사례 중 약 70%를 공개할 의향이 있지만 민감한 것으로 간주되는 30%는 거부했다. 보고서는 “현행 연방법 지침이 모든 것을 충족하지 않는다”라며 기관이 어떻게 AI를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없어 AI를 일관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AI 관리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촘촘한 규제법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 연장선에서 기술발전에 무게를 둔 발 빠른 행보가 엿보이는 중이다. 

예방적 규제로 속도 늦추는 유럽연합

유럽은 미국과는 결이 다르다. 핀셋 규제를 통해 전반적인 AI발전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다.

유럽의회는 지난 12월 9일 포괄적 AI 규제법인 ‘AI 법안’에 대해 3자(유럽집행위원회·유럽의회·유럽연합이사)가 전격 합의하며 시행을 앞두게 됐다. AI 법안은 크게 ▲시민권리·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AI 금지 ▲법 집행 기관에 대한 예외 허용 ▲범용AI에 대한 가드레일 제정 ▲혁신 중소기업 지원 등이 골자다.

AI가 ‘고위험’에 분류되면 방대한 규제를 가하는 체계다. 실제로 AI법 초안은 AI가 만든 사실 명시, AI 학습 데이터 저작권 공개, 공공장소에서 안면인식기술로 얻은 정보 사용 규제 등을 지켜야 하며 규정을 어긴 기업에 대해 연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강력한 규제를 예고했다.

특히 영향력이 큰 범용AI에 대해서는 모델평가, 시스템 평가·위험 완화 대책 마련, 보안 테스트 수행 등 강력한 준수 사항을 요구했다.

투명성 확보에 대한 기대와 함께 AI 발전 역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유럽연합의 속내는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유럽연합이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AI 규제법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미국 빅테크 등은 AI기밀이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빅테크 기업은 EU 내 AI 사업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자칫 EU 전용 서비스를 마련하는 추가 개발 비용이 들 수 있다. 유럽연합이 규제로 시간을 벌면서 유럽 내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의도가 내포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AI 경쟁과 규제, 글로벌 움직임

혁신과 규제는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안이다. 유럽연합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규제 움직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 영국, 중국 등은 각국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법안 마련을 검토한 바 있다.  

규제를 논하기 위해 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지난 11월 초 영국에서 열린 ‘AI 안전 정상회의’에서 미국, 한국, 중국, 영국 등 28개국과 유럽연합은 고성능 범용 모델의 실존적 위험에 대응하는 것이 골자인 ‘블레츨리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12월 초에는 경제 선진국 G7이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발표하며 AI를 개발한 기업은 고도의 AI를 시장에 내놓기 전 위험성을 평가 및 조처를 해야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가운데 AI 혁신과 규제 전략을 통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셈법은 고차 방정식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AI 시장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미국과, 모바일에 이어 역내 AI 시장까지 미국에 내어주지 않겠다는 유럽연합의 물 밑 공방전이 치열한 배경이다. 여기에 중국 기술굴기까지 덧대어지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거대 AI 세력들이 국제무대를 발판으로 판을 키우는 가운데 한국 AI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