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는 일본은행(BOJ)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일본 증시에 훈풍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7일 미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가 장중 141.6엔을 기록하며, 올해 8월 이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간 BOJ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기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6년부터 두 가지 방향의 금융완화 정책을 이어왔다. 지급준비금(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 자금) 이자율을 연 –0.10%로 동결하고,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가 제한선(0.5~1.0%)을 넘어갈 때 무제한 매입해 금리를 낮추는 수익률곡선 통제 정책(YCC)이 그 일례다.

지난해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펼칠 때에도, BOJ는 완화 기조를 고수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점점 벌어지자, 지난 10월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150엔을 넘어서는 등 엔화 가치 약세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달 7일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뒤 금리를 0%로 유지할지 아니면 0.1%로 올릴지, 단기 금리는 어떤 속도로 올라갈지 등은 그때의 경제 및 금융 국면에 달려있다”고 언급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달 6일에는 히미노 료조 BOJ 부총재가 오이타 지역 간담회에서 “상황을 신중하게 평가하고 어떻게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할 지 시기와 절차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발언 이후 시장에서는 BOJ의 대규모 금융완화 통화정책이 점진적으로 종료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BOJ의 피벗 전망이 시장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아니다. 올해 10월까지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19개월 연속 초과하는 등 디플레이션 기조가 마무리되는 듯한 조짐은 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BOJ 고위 인사들이 처음으로 완화 정책 종료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신증권 문남중 연구원은 “BOJ가 얘기하는 금융완화정책의 지속 필요성은 페이크일 뿐, 22년 12월 YCC 상단 수정을 시작으로 점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 수순을 밝고 있다”며 “10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지정가격 오퍼레이션 문구 삭제는 YCC 정책 폐기로 간주해도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나고야에서 열린 비즈니스 리더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AFP 연합뉴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나고야에서 열린 비즈니스 리더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AFP 연합뉴스

상황이 바뀌면서 그간 일본 증시에 투자했던 일학개미들의 자금도 이탈하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엔·달러가 141엔대까지 하락한 지난 7일, 일본 주식을 2017만달러 매도했다. 지난 8일에도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을 1567만달러 매도했으며, 11일에는 1580만달러를 팔아치웠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의 해외 실적·가격 경쟁력 등이 악화되는 등, 증시에 비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 우에다 총재의 발언 이후 엔화 강세가 이어졌던 8일, 일본 증시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50.45포인트(1.68%) 하락한 3만2307.86으로 장을 마감했다. 도쿄증권 주가지수(TOPIX) 역시 전 거래일 대비 35.44포인트(1.50%) 내린 2324.47로 거래를 마쳤으며, JPX 닛케이 인덱스 400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29.24포인트(1.55%) 떨어진 2만924.45로 폐장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BOJ의 긴축 정책이 중장기적으로는 되려 일본 증시에 호재라고 평가한다. 

김성훈 한화자산운용 ETF 본부장은 “BOJ의 정책 변화는 일본 시장이 오랜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BOJ의 정책 변화로 인해 단기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이전과 같이 일본 증시가 하락반전하기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강세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특히 수출 기업이 엔·달러 환율 120엔대까지는 엔저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며 “엔화 강세로 인한 주가 우려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현기 흥국증권 연구원 역시 “일본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현재 에너지 가격도 하향 안정화되어 있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기 펀더멘털도 약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금리가 일정 부분 올라간다 하더라도 증시에 비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정책선회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이 덜 될 수 있기는 하다”며 “다만 그렇다고 해도 엔화가 수출에 부정적일 만큼 강세를 띄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현기 연구원은 일본 증시에 관심이 많은 국내 투자자들이 엔화 가치보다는 내년 글로벌 경기 상황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지금은 BOJ의 피벗보다는 오히려 내년 글로벌 경기 상황과 일본의 대미 수출이 올해처럼 꾸준히 잘 될 것인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며 “만약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디플레이션의 영향력이 무기력해져서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라면 일본 증시를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