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순으로 김포 문수산 근무가 끝나고, 이어 사무실 정리 등을 한 후에 철수를 했습니다. 마지막은 아닐지라도 당분간은 그쪽으로 가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거의 매일 걸었던 치유숲길을 걸어보았습니다. 등산로와는 다르게 치유숲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네 군데 오솔길인데, 각기 특색이 있습니다. 솔숲길도 있고, 편백나무와 잣나무숲길도 있고, 한강 조망이 되는 길, 활엽수 터널의 길이 있습니다. 그날은 솔숲길과 활엽수 터널 길을 걸었습니다. 숲길 산책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어 좋습니다.

이제 숲은 막 겨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추위 탓인지 숲은 벌써 사람들이 눈에 띄게 뜸한데 여기 숲길은 더욱 한갓집니다. 그러다 보니 숲길에 쌓인 낙엽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숲길로 들어서니 말 그대로 낙엽들의 잔치날 같았습니다. 낙엽들의 모양도 그렇지만 냄새와 밟을 때 나는 소리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습니다. 솔잎들이 많이 떨어진 길을 가면 약간 미끄럽기는 하지만, 푹신하고 은은한 향기만큼이나 걸을 때 나는 소리가 거의 없어 적막으로 초대하는 듯 합니다. 강화도 갑곶성지에서 보았던 어느 신부의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고요한 곳에 오면 더더욱 커지는 제 안의 소란함을 죽여주시고, 이곳 순교자들처럼 침묵하게 하소서’ 침묵 속에 침잠하게 됩니다. 이어서 참나무류, 오동나무 등의 활엽수 낙엽들이 주로 떨어진 길을 걸었는데, 발자국에 부서지는 낙엽들의 소리가 시끄러울 지경이었는데 한편으로 묘한 쾌감도 주었습니다. 또한 그 요란한 소리들로 해서 다른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게 되는 흔치 않은 집중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며 잠시 나를 잊어보는 소중한 순간이 이어졌습니다. 두 숲길을 걸으면서 나의 내면을 다른 방식으로 들여 다 본 듯해서 느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면을 들여 다 보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겠지요. <다산의 마지막 공부>라는 책에서 그의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돌아보건대, 나의 삶은 잘못되었으니

노년의 보답으로 갚아야 할 일이다. ...

이제로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하며...’

다산은 정조라는 임금을 만나 세상에 그의 뜻을 펴기도 했지만, 정조가 떠난 후 귀양살이라는 모진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정진해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거듭났던 바, 그의 마음 관리를 정말 배우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여기를 떠나도, 추워도 겨울 숲길을 자주 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