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코 록카쿠가 핑거 페인팅 작업을 하는 모습. 출처=갤러리델레이브.
아야코 록카쿠가 핑거 페인팅 작업을 하는 모습. 출처=갤러리델레이브.

아야코 록카쿠(Ayako Rokkaku,41)는 요즘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선 최고의 인기 스타다. 세계적 명성의 쿠사마 야요이, 요시모토 나라에 이은 차세대 일본 아티스트로도 불린다.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 지는 통계 하나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네덜란드 화랑 ‘갤러리 델레이브’의 아야코 록카쿠 전속 코너에는 이런 수치가 나온다. ▲2000년~2023년 아야코 록카쿠 총 작품수 963점 ▲판매 완료(Sold) 924점 ▲구매 가능(Available) 39점.

작품 판매율은 무려 96%다. 사실상 완판의 연속이다. 개인전과 아트페어, 아트옥션에 내놓은 작품들이 거의 모두 팔려 나가고 있다. 경매 가격은 계속 올라 2022년 7월 제52회 일본 SBI 옥션에서 작품 <무제>(2017년작)는 16억 4000만 원에 낙찰됐다. 그의 작품으로는 최고가였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무엇보다 이 일본 작가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1982년 치바시에서 태어난 아야코 록카쿠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십대 후반,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자기 표현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그림을 시작했다. 그림은 독학으로 익혔다.

나이 스물에 지금의 독자적인 화법을 만들었다. 매우 실험성이 강한 방식이다. 아야코는 붓을 쓰지 않고 맨손에 아크릴 물감을 묻혀 카드 보드지(골판지)나 캔버스를 채운다.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기법인데, 마치 악보없는 재즈 연주처럼 스케치나 밑그림 없이 모든 작업을 즉흥적으로 한다.

그림 속에는 큰 눈과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뽀루퉁한 표정의 맨발 소녀가 등장한다. 주변은  알록달록 꽃밭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단신인 아야코는 자기 몸집의 몇 배 크기 캔버스 앞에서 작업한다.

"나는 나보다 훨씬 큰 곳에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요.거대한 캔버스의 구석 구석을 오갈 때면 마치 내 몸에서 색채들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2002년 아야코는 거리로 나가 핑거 페인팅 퍼포먼스를 벌이곤 했다. 그러다가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의 아트컴퍼니 ‘카이카이키키’가 주최한 게이사이 아트페어에서 신진 작가로 뽑혔고, 2006년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

스위스 바젤의 ‘볼타 아트페어’에 참가했을 때 갤러리 델레이브의 설립자이자 디렉터 니코 델레이브가 다가왔다. 그는 아야코에게 “나는 이 순간부터 당신이 만드는 모든 것을 소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갤러리 델레이브는 아야코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작업 공간까지 제공하고 있다.

현재 아야코는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등을 오가며 활발한 창작 및 전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22년 7월 제52회 일본 SBI 옥션에서 작가 최고가 1억 8400만 엔(약 16억 4000만 원)에 낙찰된 2017년 작품 'Untitled'. 출처=SBI 아트옥션 홈페이지
2022년 7월 제52회 일본 SBI 옥션에서 작가 최고가 1억 8400만 엔(약 16억 4000만 원)에 낙찰된 2017년 작품 'Untitled'. 출처=SBI 아트옥션 홈페이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중인 ‘아야코 록카쿠, 꿈꾸는 손’전은 5개 섹션으로 나뉜다. 특별 섹션에서는 작가가 갤러리 델레이브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자신이 어떻게 ‘꿈꾸는 손’이 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섹션 1. 맨발의 소녀’에서는 스무 살때 도쿄의 공원에서 라이브로 그림을 그렸던 골판지, 캔버스 작품들이 소개된다. 아야코는 아크릴 물감을 비비고, 누르고, 문지르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그렸다. 

‘Sculpture with two ghost rabbits’, 2011. 사진 = 김연제 기자
‘Sculpture with two ghost rabbits’, 2011. 사진 = 김연제 기자

‘섹션 2. 꿈꾸는 손가락’에서는 어린 시절 알록달록한 색을 더하며 느꼈던 즐거움을 담아낸다. 캔버스와 골판지, 티셔츠, 양모와 섞어만든 작은 조각들, 비닐 등 일상 소재를 사용한 작품들이 나온다. 230cm 높이의 소녀와 두 마리의 토끼가 등장하는 ‘고스트 래빗(Sculpture with two ghost rabbits)’ 조각이 눈길을 끈다.

‘Untitled (ARP11-021)’, 2011. 사진 = 김연제 기자
‘Untitled (ARP11-021)’, 2011. 사진 = 김연제 기자

‘섹션 3. 넓은 세상으로’는 니코가 마련한 암스테르담 아틀리에의 새로운 생활과 변화를 보여준다. 아틀리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 맑은 하늘, 태양 빛들이 아야코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섹션 4. 나의 친구들’에서는 2010년 아야코와 도쿄의 음악 레이블 콘트라리드(Contrarede)가 함께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어바웃 어스(About Us)’를 미디어룸에서 관람할 수 있다. 러닝타임은 18분.

미디어룸에 들어가기 전, 애니메이션의 모티프인 자전적인 캐릭터 소녀와  골판지로 만든 2m가 넘는 집, 다양한 크기의 동물 페인팅을 볼 수 있다. 특별 섹션 ‘델레이브 패밀리’에는 갤러리와의 역사와 콜라보 작품들, 패밀리의 소장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섹션 5. 봄의 시작’은 2021~2022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로 구성했다. 갤러리 델레이브와 협업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세라믹 도자기 한정판 작품도 있다.

아야코가 디자인하고 네덜란드 전통 도자기 공방 로열 델프트(Royal Delft)에서 생산한 작품으로, 아이디어 스케치 단계부터 완성품까지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봄처럼 활기차고 따뜻한 에너지를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며, ‘나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