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폴란드 그디니아항구에 K2전차와 K9자주포 초도물량이 도착한 가운데 엄동환 방위사업청장(가운데)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폴란드 그디니아항구에 K2전차와 K9자주포 초도물량이 도착한 가운데 엄동환 방위사업청장(가운데)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어떤 일이든 기회가 오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호황이 찾아오면 적극적 투자와 수출로 경쟁력을 강화해야만 장기적으로 호황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여기 물은 넘치게 들어오지만 정작 ‘노’가 없어서 앞으로 쉽사리 나아가지 못하는 산업이 있다. 방위산업이다. 폴란드향 대형 수출 계약을 시작으로 각종 글로벌 수주를 따내 ‘K-방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며 승승장구 중임에도 마냥 웃을 수 없다. 수출 금융을 지원해주는 수출입은행의 납입자본금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대로라면 이미 체결된 계약도 온전히 이행하기 어려우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매출액 52% ‘잭팟’ 터트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일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등을 추가 수출하는 약 3조447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52.7%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폴란드 군비청과 K9 672대, 다련장로켓 천무 288대를 수출하기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기본계약 내용 중 K9 212대, 11월에는 천무 218대를 우선 공급하는 ‘1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성사된 계약은 ‘2차 실행계약’이다. K9의 남은 계약 물량 460대 중 일부인 152대를 2027년까지 순차 공급하는 조건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차 실행계약까지의 물량을 제외하고도 향후 폴란드에 기본계약 잔여물량인 K9 318대와 천무 70대의 3차 실행계약을 추가로 체결해 납품해야 한다. 폴란드뿐 아니라 호주 레드백 장갑차 수출, 이집트 자주포 패키지 수출 등 향후 이행해야 하는 계약이 많이 남았다. 폴란드 군비청은 자주포를 포함하는 곡사포 장비가 총 1000여대 필요한 것으로 알렸다. 3차 실행계약 이상을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자주포 K9.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자주포 K9.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개정안 언제 통과되나”…기다리다 목 빠지는 업체들

문제는 수출금융이다. 방산 수출은 주로 정부를 대상으로 한다. 절충교역, 수출금융지원, 정부 간 거래 등으로 활성화됐다. 계약 규모가 거대하고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으며, 장기간 운용하는 방산물자 특성상 무기 판매국은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 장기 분할상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출 규모도 크고 장기간 거래로 상업은행을 통한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수출신용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대형 방산 수출엔 항상 ‘절충교역’ 의무가 뒤따른다. 절충교역은 무기 또는 장비를 구매할 때 계약 상대로부터 관련 지식 또는 기술을 이전받거나, 국산 무기·장비 또는 부품 등을 수출하는 등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 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교역이다.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차 실행계약 역시 K9자주포 및 자주포용 155mm 탄약과 K9 유지·보수를 위한 종합군수지원패키지(ILS)를 공급하고, K9 유지 부품의 현지 생산에 협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업체에 가해지는 부담은 막대해진다.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이렇게 수출입 과정에서 뒤따르는 여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출금융을 지원한다. 문제는 현행 수출입은행법 및 시행령에 동일 대출자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는 15조원이다. 지난 2014년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상향된 후 10년째 동결 중이다. 총 4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견되는 폴란드 방산 수출을 지원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회에선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최대 35조원까지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과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지난 11월 23일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서 논의될 예정이었다. 여야가 합심해 내놓은 개정안이라 연내 통과되고 국내 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수은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는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논의 예정이었던 23일 더불어민주당이 5호선 김포 연장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이에 반발한 국민의 힘 의원들이 경제소위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결국 개정안은 이달 1일 열린 국회 본회의의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폴란드와 조속히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업체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임시방편으로 5대은행(NH농협·하나·KB국민·신한·우리)이 나섰다. 폴란드향 2차 계약에 3조5000억원 상당의 금융지원을 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이번 K9 2차 실행계약은 5대은행의 금융지원을 받아 체결했다”며 “아직 남은 물량이 많기에 장기적 자본 충당 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폴란드와 K2 전차 잔여물량 수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현대로템 역시 답답한 상황이다. 현대로템이 지난해 폴란드와 체결한 K2 기본계약 물량은 1000대다. 그중 1차 실행계약에서 180대를 납품하기로 했으나, 아직 820대가 남아있다. 현대로템은 금융조달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방위사업체들은 마땅한 방도가 없다. 결국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이 빠른 시일 내에 통과돼야 하는 문제”라며 “K-방산 수출력 강화와 국익 향상을 최우선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