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의 2세트 승리 순간. 사진=박상준

게이머들의 월드컵,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지난 19일 치러진 결승전의 응원열기는 2002년 월드컵 때를 방불케 했다. 그 열띤 응원에 보답하듯 대한민국의 T1은 중국의 웨이보게이밍을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며 영광의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이 열린 고척스카이돔은 영광의 순간을 '직관'하려는 E스포츠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만8000석의 입장권은 이미 매진된 지 오래. 광화문 광장에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팬 1만5000여명이 몰려들어 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열띤 응원을 펼쳤다. 리그오브레전드와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발전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다.

빛나는 챔피언 T1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 축제의 장을 직접 눈으로 담았다.

치어풀부터 코스프레까지…E스포츠 팬 문화 이모저모

오후 4시경 방문한 고척스카이돔.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의 대기열이 구일역 2번 출구까지 늘어서 있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마스코트격 캐릭터 ‘티모’ 모자를 쓴 팬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외국인 팬들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입장 대기줄을 찾아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경기장 외부에는 라이엇에서 설치한 굿즈샵 등 다양한 구경거리가 즐비했다.

입장 대기 중인 팬들. 사진=박상준

경기장 내부는 앞서 입장한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곳곳에는 E스포츠 특유의 응원문화인 ‘치어풀(응원용 플래카드)’을 제작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팬들이 저마다의 개성 있는 응원 문구를 쓰고 있었다. 여느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온 팬도 한가득이었다,

단연 눈에 들어온 팬들은 ‘코스튬 플레이어’였다. 리그오브레전드 인기 캐릭터들의 복장을 직접 구현하고 착용해 현장의 볼거리를 더해줬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즐기는 모습에 리그오브레전드를 향한 그들의 팬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장을 찾은 팬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며 특별한 추억을 선사했다.

리그오브레전드 캐릭터 '바이' 를 코스프레한 외국인 팬. 사진=박상준
리그오브레전드 캐릭터 '바이' 를 코스프레한 외국인 팬. 사진=박상준
리그오브레전드 캐릭터 '징크스'를 코스프레한 외국인 팬. 사진=박상준

외국인 코스플레이어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아일라 말러씨는 “평소 응원하던 T1이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 결승에 진출한 순간을 특별하게 즐기고 싶어 코스프레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많은 팬이 사진 요청을 했다며,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고 소감을 밝혔다. 이밖에도 수많은 외국인 관객과 취재진·중계진이 현장을 방문해 리그오브레전드와 E스포츠의 글로벌한 인기와 파급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국인 중계진이 현장의 열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박상준
외국인 중계진이 현장의 열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박상준

T1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그라운드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스테이지 바로 앞까지 달려와 T1을 연호했다. 선수들의 트로피 세레머니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우승 소감에 함께 감동했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많은 팬들 앞에서 경기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말로 팬들을 눈물 짓게 했다.

T1 우승의 순간. 사진=박상준
T1 우승의 순간. 사진=박상준

트로피 세레머니를 지켜보며 눈물 흘리던 대학생 A씨는 “2018년부터 T1의 팬이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에서 T1이 다시 우승해 울컥했다”며 “우승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볼 게 한가득 경기장, 안전도 철저히

경기장 전경. 전 좌석이 가득 찼다. 사진=박상준
경기장 전경. 전 좌석이 가득 찼다. 사진=박상준

경기장에는 열정을 갖고 현장을 찾는 팬들을 위해 수많은 볼거리와 공연이 마련됐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경기장을 비추고 웅장한 음악이 장내에 깔리며 결승전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경기장에 입장하자마자 거대한 전광판에 리그오브레전드의 무대인 ‘소환사의 협곡’과 2023 월드 챔피언십 로고가 출력돼 있었다. 게임 중 선수들이 특정 오브젝트를 처치하거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 화면에 화려한 이펙트가 출력되며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화려한 이펙트와 영상이 출력된 중앙 전광판. 사진=박상준

뉴진스의 오프닝 세리머니와 라이엇이 새로 선보인 가상 아티스트 ‘하트스틸’의 축하공연도 열렸다. 뉴진스가오프닝곡 ‘GODS’를 열창하자, 현장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안전요원들이 관객들을 다시 착석시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뉴진스의 오프닝 세레머니 GODS. 사진=박상준
뉴진스의 오프닝 세레머니 GODS. 사진=박상준

공식 글로벌 자동차 파트너 메르세데스-벤츠의 로고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T1의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메르세데스-밴츠의 럭셔리 전기 SUV인 ‘EQS SUV’가 공식 트로피 캐리어로 우승 트로피인 ‘소환사의 컵’을 전달했다. 최종 우승팀인 T1에게는 메르세데스-벤츠와 라이엇 게임즈가 공동 제작한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십 반지’도 수여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로고와 '소환사의 컵', 그리고 T1. 사진=박상준
메르세데스-벤츠 로고와 '소환사의 컵', 그리고 T1. 사진=박상준

각 관람 좌석엔 팬들을 위한 응원봉과 팔찌가 비치됐다. 우승자가 결정된 후, 팔찌가 흰색으로 빛나며 관중석이 별빛을 수놓은 듯 반짝였다. 선수들의 우승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는 순간이었다.

우승의 순간 밝게 빛나던 관중석. 사진=박상준
우승의 순간 밝게 빛나던 관중석. 사진=박상준

많은 인파가 몰리는 만큼, 현장 안전 관리도 철저했다. 인근 전철역인 구일역 승강장부터 안전요원들이 배치돼 인파를 통제했다. 경기장 내부에는 안전요원과 안내 스태프가 10m 간격으로 서서 질서를 유지했다. 경기장 외부에는 경찰력까지 동원돼 교통 통제와 혹시 모를 범죄 발생까지 철저히 감시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잊지 않고 대형 인파를 안전히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오락에서 산업으로, 문화로…중심엔 ‘팬’

2023년의 게임은 더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을 넘어 다른 게이머들과 소통하고, 게임 IP를 활용해 굿즈를 제작하거나 이차 창작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PC방에서 친구와 음료수 내기로 경쟁하던 게임은 어느새 스포츠가 되어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게임은 ‘산업’이다. 이번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 현장’은 그 산업의 중심에 게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소비하는 ‘팬’들이 있음을 톡톡히 알리는 현장이었다.

팬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게임 산업. 이미 거대한 문화 현상이 됐다.

T1 선수들의 트로피 세레머니. 사진=박상준
T1 선수들의 트로피 세레머니. 사진=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