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여기 조그만 계곡에 뜬금없이 며칠째 물이 흘렀습니다. 산이 부석돌로 구성되어 여름에 많은 비가 와도 이틀 정도 반짝 물이 흐르다 거의 말랐는데, 이 계절에 며칠째 물이 흐르니 궁금해졌습니다.

친한 나무 박사에게 문의를 했더니 숲의 나무들이 나뭇잎에 있던 영양분을 다 회수하고, 나뭇잎은 떨구고, 과하게 생각되는 물도 버리니 그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며 덧붙이길 이제 나무는 겨울잠을 자듯 버티기에 들어갈 거라고. 적게, 더 적게 갖고 빈 가지와 줄기로 매서운 겨울을 넘기고 봄을 기약하는 거라고.

숲길을 걷다가 참나무의 잎을 밟았을 때 나는 바스락 소리에 놀람은 나무 박사가 전한 ‘적게, 더 적게’라는 말의 울림 때문이었을까요? 나무들의 준비를 만나니 작년 섬에서 단순, 소박, 최소의 삶을 살았던 소로우를 동경하며 그를 따라해보려 했다가 처절하게 판정패 당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부터 150여 년 전에 하버드대를 졸업한 28세 청년 소로우가 미국 동북부의 시골인 윌든 호수가로 들어가 이년여 동안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는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의 세속적인 성공 신화와 물질문명을 등지고, 깊은 통찰 속에 참다운 인간의 길, 자유로운 인간의 길에 대해 끝없이 물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이후 간디나 서구의 많은 문인과 사상가들에 영향을 주었고, 법정 스님도 그곳을 방문해 무소유 삶을 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지요. 그의 철학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섬에 들어가며 그의 책 월든을 갖고 가 성경처럼 나를 비추어보며 배우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단출한 그의 세간을 보며 그것부터 흉내 내보려 했습니다. 그가 살었던 집은 어찌나 단출했던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 모든 가구를 집시의 봇짐처럼 싸서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습니다.

나도 섬에서 숲속 방갈로를 하나 사용했는데, 원룸처럼 최소의 것만 구비된 7평 남짓의 공간이었습니다. 소로우처럼 단출한 세간을 꾸며보리라 했는데, 섬에서 집을 갈 때는 빈 가방, 들어올 때는 꽉찬 가방을 들고 오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불안한 전조가 이어지더니 물건들로 방이 이내 채워졌으니, 그를 따라 하기는 진즉 틀렸던 게지요. 소로우는 당시 농부들이 쉬지 않고 일해 집을 장만하고 집을 채웠는데, 농부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되었다고 탄식했습니다. 많은 물건들에 치여 사는 내게도 그의 ‘쯧쯧’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가볍게 서 있는 나무들을 봅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적게, 더 적게’를 추구하는 삶은 어떨까? 물리적으로 적게 더 적게 가지며, 덜 쓰고, 정신적으로 ‘심플 이스 베스트’라는 생각으로 먹고 사는 일에서 후회나 미련을 적게, 더 적게 남기리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