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보나이제이션 매거진 가을호 내부 이미지. 사진=한국선급
디카보나이제이션 매거진 가을호 내부 이미지. 사진=한국선급

“2026년쯤에는 국적선의 50%가 D등급(운항 제한) 이하일 것”

지난 7월 열린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정책세미나’에서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2024년 시행을 앞둔 CII(탄소집약도지수) 규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2023년 조선·해운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탄소중립’이다. 지난 7월 7일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해운산업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목표였던 50%에서 100%로 강화했다. 유럽연합은 내년부터 유럽 입항 선박에 탄소부담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아마존, 애플 등 글로벌 화주 기업 역시 ESG 경영 원칙을 내세우며 친환경 공급망을 통한 화물 운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 제도인 CII가 선사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2024년부터 CII가 적용되면 전 세계 5000톤 이상 선박은 1년간 운항 정보를 바탕으로 A~E등급을 부여받는다. 3년 연속 D등급 또는 1년간 E등급을 받은 선박은 C등급에 맞춘 시정계획을 승인받기 전까지 운항이 제한될 수 있다. 단순 규제뿐 아니라 기준 역시 매년 2.75%씩 강화될 예정이다. 최초 등급 심사 시 C등급 이상을 받은 선박일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D등급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양창호 부회장이 “2026년엔 국적선의 절반이 D등급 이하일 것”이라고 예측한 이유다.

KR 디카보나이제이션 가을호 표지. 사진=한국선급
KR 디카보나이제이션 가을호 표지. 사진=한국선급

상황이 이렇자 한국선급(KR)은 지난달 31일 ‘디카보나이제이션 매거진 가을호’를 발간해 선사들의 사전 CII 등급 현황과 향후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김동기 KR 친환경기술팀 선임연구원은 “ IMO DCS 데이터에 기반한 사전 등급 조사 결과 E등급을 부여받은 선박은 16%, D등급을 부여받은 선박은 23%, C등급을 부여받은 선박은 약 28%인 것으로 분석됐다”며 “C에서 E등급까지 부여받은 선박의 비율은 총 68%나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선종 별로 살펴보면, 벌크선의 경우 C~E등급의 선박의 비율이 77%로 전체 선박의 CII등급 비율 및 타 선종 대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컨테이너선은 C~E등급 선박의 비율이 55%로 전체 평균치인 69%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주로 정기선으로 구성돼 체선 시간(선박이 항만의 수용 능력 이상으로 초과 입항해 항구 밖에서 하역작업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은 컨테이너선과 달리, 벌크와 탱커선대는 부정기선의 비율이 높아 체선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하위 CII등급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이다.

이처럼 사전 시뮬레이션 결과 C~E등급을 차지하는 선박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단기적인 개선 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선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2022년 기준 B등급을 부여받은 벌크선조차 가까운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45% 감축해야 간신히 C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선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는 실정이다.

CII등급 개선조치 미시행시와 시행시 등급 변화 추이. 2024년 B등급인 선박도 2030년경에는 현재보타 온실가스를 45% 감소해야 C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 자료=한국선급
CII등급 개선조치 미시행시와 시행시 등급 변화 추이. 2024년 B등급인 선박도 2030년경에는 현재보타 온실가스를 45% 감소해야 C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 자료=한국선급

메탄올추진선 등 친환경 신조선을 발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메탄올 추진선은 기존 선박에 비해 조선가가 16% 비싸다. 암모니아 추진선은 24% 비싸다. 한국해운협회는 D등급 이하 선박을 모두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는데 연간 최소 4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친환경선박 전환비용 추정치. 사진=한국해운협회
친환경선박 전환비용 추정치. 사진=한국해운협회

이에 KR은 CII등급 향상을 위한 세 가지 방안을 내놨다. 먼저 선속 감소를 통한 저속운항이 있다. 통상 저속운항은 고속운항에 비해 연비가 높아 연료 소모와 탄소 배출이 적다. 선속 및 항로 최적화 기술을 도입하고, 고효율 프로펠러 사용 등과 함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료 전환이다. 바이오 연료 등으로 대표된다. 다만 바이오 연료는 선박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서 수요가 늘고 있기에 공급 불안정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기존 연료 대비 비싼 가격도 문제다.

마지막으론 선박 저항 감소·추진 효율 향상 기술의 적용이다. 대표적으로는 저마찰 도료·고효율 방오도료 적용 등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도료 자체의 해양 상태계 파괴 문제 등이 꾸준히 거론되기에 사용에 신중한 고려가 수반돼야 한다.

한편 국내 1, 2위 선사인 HMM과 팬오션에게는 이런 CII 규제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HMM은 A~B등급 69%, D~E등급은 13%에 불과하며 이중 E등급은 단 한 척밖에 없다. 친환경선박 선점 전략이 주효했다. HMM은 올해 2월에도 메탄올을 주연료로 하는 9000TEU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하기도 했다. 팬오션 역시 한국선급·아비커스와 손잡고 친환경 자율운항 솔루션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며 대비에 나서고 있다.

CII(탄소집약도지수) 등급을 검증받은 HMM 사선 현황. 사진=HMM
CII(탄소집약도지수) 등급을 검증받은 HMM 사선 현황. 사진=HMM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오히려 2024년 CII 등급 발표 후 글로벌 D·E등급 선박들의 운항이 일시적으로 제한되면 선복량이 줄어들어 해상 운임이 상승하는 등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중이다.

다만 HMM과 팬오션 등 대형 선사를 제외한 중·소형 선사들의 경우엔 자체 보유 자산만으로는 CII 규제 대응에 나서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23년 정부의 친환경선박 지원금은 130억원에 불과하다”며 “친환경선박 이외의 대안이 없는 만큼 더욱 많은 금전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