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먼지를 머금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웅장한 기계 소리와 용접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시선 너머로 높이 104M의 골리앗 크레인은 하늘을 가린다. 자전거를 타고 넓은 작업장을 이동하는 작업자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불꽃 튀는 산업현장의 한쪽에는 첨단 기술 연구센터와 자동화 로봇이 구비됐다. 지난 27일 방문한 대한민국 뿌리산업의 최전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풍경이다.

한화오션은 올해 5월 한화그룹으로 인수되며 대우조선해양에서 한화오션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그룹 차원에서 관심과 지원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이번 3분기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기나긴 불황에서 탈출, 경영을 정상화했다.

2조원대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추진하며 향후 첨단 기술이 적용될 친환경선과 자율운항선, 방위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를 표방하며 나선 한화오션의 자신감은 어느 때보다 드높다.

세계 1위 LNG선 명가의 비결, ‘에너지시스템 센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물을 뺀 채 작업하는 드라이도크인 ‘1도크’다. 도크에서는 LNG운반선만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반선 2척과 전선 2척이다. 4척의 선가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LNG운반선은 현재 선가가 3600억원 상당으로, 가장 비싼 고부가가치선이다.

현재 한화오션의 선박 수주잔량 99척 중 LNG운반선만 65척으로, 전체 수주잔량 중 66%에 이른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세계에서 운항중인 LNG운반선 중 4분의 1이 한화오션이 건조한 것이다. 점유율 세계 1위다.

이런 한화오션의 LNG선 경쟁력은 조선소 내에 갖추고 있는 최첨단 R&D인프라로부터 나온다. 도크에 이어 방문한 곳은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해상 탄소 규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국적선을 모두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는데 연간 최소 4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한국해운협회가 추정했을 만큼, 친환경선·친환경 연료 개발은 조선업계의 가장 큰 미래 먹거리가 됐다.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에서는 LNG부터 시작해 암모니아와 수소연료까지 미래 친환경 연료 상용화를 위한 연구 개발 전반을 담당한다.

1도크에서 LNG선 4척이 동시 건조 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1도크에서 LNG선 4척이 동시 건조 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센터 주변에는 각종 극저온 연구설비들이 배치됐다. 액화질소를 이용한 모사실험이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여 실제 운항과 동일한 극저온 시스템으로 실험한다. 한화오션이 최초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내 글로벌 업체로부터 기술료를 징수하는 재액화·재기화 시스템이 눈에 띈다. 재액화 시스템은 연료 운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LNG증발기체를 다시 액화시켜 연료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암모니아 특유의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료공급 시스템과 암모니아 분해 수소생산 시스템도 마련됐다.

조두현 에너지시스템연구팀 연구원은 “암모니아는 질소와 수소로만 구성돼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암모니아를 가능성 넘치는 친환경 에너지로 보고 꾸준히 실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액체 화물의 적, ‘출렁거림’을 잡아라

에너지시스템 센터를 나와 이동한 곳은 슬로싱 연구센터다. 거대한 수조 속에 담긴 물이 기계의 움직임에 따라 요동치고 있었다. ‘슬로싱’은 선박으로 액체 화물을 운반할 때 화물이 출렁거리는 현상을 뜻한다. 통상 수백만리터의 LNG 연료를 저장하는 LNG 화물창의 경우, 액체가 출렁일 때마다 화물탱크의 벽면에 수백톤의 충격이 가해진다. LNG 등의 극저온 화물이나 암모니아 같은 독성이 강한 물질이 유출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에 한화오션 슬로싱 연구센터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발주되고 있는 LNG운반선의 화물창에 대한 슬로싱 연구뿐만 아니라, 9만8000㎥급 액화에틸렌운반선(VLEC)의 화물창과 액화이산화탄소(LCO2) 화물창의 슬로싱 하중 평가를 수행하며 다양한 액화 가스 운반선 화물창 하중 해석 기술을 확보했다.

향후에는 친환경 연료로 부각될 암모니아와 액화수소에 대한 슬로싱 하중 평가도 수행, 한화오션은 이산화탄소·암모니아·수소 운반선 등 친환경 운반선 개발 분야에서 가장 먼저 앞서 나간다는 전략이다.

한화오션 슬로싱 연구센터에는 모형탱크에 대해 실험이 가능한 슬로싱 모션 플랫폼 2기와 500여개의 압력 센서, 500채널의 데이터 획득장치 등을 구비하고 있다. 운영 효율화를 위한 무인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24시간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슬로싱 모션 플랫폼. 사진=한화오션
슬로싱 모션 플랫폼. 사진=한화오션

원격으로 시운전 하고 사물인터넷으로 생산관리하고

한화오션이 미래 조선소의 모델로 내세운 ‘스마트 야드’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한화오션은 △연결화△자동화△지능화를 스마트 야드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생산 현장 자동화율을 70%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선소, 데이터로 일하는 스마트한 조선소 문화가 어우러진 ‘그린 & 스마트 쉽야드’를 구현하고자 한다.

스마트 야드 실증센터에는 건조 중인 배를 시운전 해볼 수 있는 스마트 시운전센터가 마련됐다. 플랫폼을 이용하면 안벽 정박 단계서부터 해상 시운전까지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저장하고 디지털화해 육지에서도 원격으로 선박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스마트 생산관리 센터도 만나볼 수 있었다. 사물인터넷 기반으로 자동화된 데이터를 수집해 공정 가동 현황 가시화와 시뮬레이션 분석 등 생산관리에 용이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조선사 최초로 드론을 활용한 야드 블록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블록과 생산 설비의 길이와 면적을 분석하고, 블록 운반을 위한 최적 경로를 설정하는 등 안전성 확보와 시간 단축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화물창 내의 온습도를 조절해 실시간으로 화물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환경 원격 제어 시스템도 구축했다.

권순도 스마트 야드 연구팀장은 “한화오션이 연결화, 자동화, 지능화를 통해 스마트 야드를 구축하는 것은,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한화오션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스마트 생산관리센터. 사진=한화오션
스마트 생산관리센터. 사진=한화오션

‘효율’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2023년 조선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인력난’이다. 호황을 맞이했지만 정작 현장 인력이 부족해 납기 맞추기도 빠듯하다는 말도 나온다. 인구감소로 인해 인력 유입이 점점 줄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올해 상반기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산업 종사자 수는 2014년 20만 명에서 2022년 11월 9.5만 명으로 50% 이상 줄어들었다. 산업의 장기 불황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10만이 넘는 인력이 이탈했다. 협회 측은 연간 1000만 GCT에 달하는 국내 적정 생산량을 감안, 약 1만2000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화오션은 이에 대한 해답을 ‘공정의 자동화·로봇화’로 내놓았다. 생산혁신기술연구센터에서는 사람의 용접작업을 보조할 수 있는 여러 경량화 용접로봇을 개발 중이다.

강성원 기계자동화연구부 연구원은 “외업 블록 탑재공정에 로봇 적용은 한화오션이 처음”이라며 “17킬로그램 수준의 경량 소형로봇을 개발해 작업자가 휴대하며 용접을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인력 대체’뿐 아니라 ‘작업자 부담 경감’이라는 목적을 두고 로봇을 개발했다.

강 연구원은 “로봇은 사람에겐 불가능한 자세와 위치에서도 용접이 가능해 작업자의 부담을 줄이며, 밀폐 공간 용접 시 작업자 질식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로봇의 설치가 쉽고 무게도 가벼워 여성 작업자도 체력적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용접로봇 도입과 더불어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 현장 전반에 걸쳐 구축된 자동화 라인을 최신 AI·센서·사물인터넷 기술을 융합해 스마트화 구현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작업 분야인 선행 전처리 및 도장 분야를 중심으로 자동·무인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후행 공정 분야에도 조선업 최초 무레일 용접시스템 개발, 전선 포설 자동화 장비 개발 성공 및 현장 보급으로 안전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 올리고 있다.

한화오션이 개발한 소형 용접로봇.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개발한 소형 용접로봇. 사진=한화오션

지난 10년간의 조선업 장기 불황은 한화오션에게는 유독 추웠다. 대우조선해양 시기 마땅한 방파제 없이 불황의 파도를 오롯이 견뎌야 했던 한화오션이지만, 이제는 새 집에서 새롭게 출발할 때가 왔다. 이번 대규모 투자와 거제사업장 공개는 한화오션의 그런 의지를 대변한다. 한화오션이 진정한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