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이 '탈통신'을 넘어 아예 빅테크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ICT 콘텐츠 서비스 가능성을 조금씩 타진하더니 이제는 빅테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특화 산업 영역까지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통신사들이 메타버스, NFT,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는 한편 콘텐츠를 제작하며 AI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일상이 되고 있다. 궁금해진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들은 왜 빅테크가 되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ICT 업계는 물론 통신사 관계자들도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초거대 AI 도약 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ICT 업계는 물론 통신사 관계자들도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초거대 AI 도약 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통신사들의 투트랙 전략이 심상치않다. 지금까지의 탈통신 기조가 본업인 네트워크에 방점을 찍고 ICT 영역을 강화하는 정도라면 이제는 그 무게추가 ICT로 확 기울어진 분위기다. 물론 현재의 5G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소홀히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미래 성장 비전에 있어서는 확실히 ICT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통신사'라는 명칭 자체를 고민해야 할 정도다.

유영상 SKT 사장이 AI 컴퍼니 비전을 밝히고 있다. 사진=SKT
유영상 SKT 사장이 AI 컴퍼니 비전을 밝히고 있다. 사진=SKT

"SKT, 이제 AI 컴퍼니"
SKT는 유영상 사장 체제가 이어지며 완전한 AI 컴퍼니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 1위 사업자에 안주하지 않고 AI를 바탕으로 하는 빅테크의 지위를 노리는 셈이다. 명실상부 AI 컴퍼니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유영상 SKT 사장은 9월 26일 T타워 수펙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AI를 중심으로 자체 경쟁력 강화와 전방위 협력을 통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AI 컴퍼니’로 도약하는 한편 AI 관련 투자 비중을 과거 5년 12%에서 향후 5년간 33%로 약 3배 확대하며 2028년 매출 25조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청사진도 나왔다. AI 피라미드 전략이다. AI 인프라, AIX, AI 서비스를 중심으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단단한 솔루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최하단의 AI 인프라는 기술의 영역이다. AI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멀티LLM 등이 해당된다.

먼저 AI데이터센터는 공급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력 과다 사용, 탄소 배출 급증 등 새로운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지점에 착안한 특화 전략을 구사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과 기술, 글로벌 CSP와의 관계 등의 강점과 로컬 파트너와의 보유 부지, 클라이언트 관리 역량과의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확장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세를 몰아 국내 데이터센터 규모도 2030년까지 현재의약 2배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나아가 AI 반도체 전략은 사피온을 중심으로 한다. 차세대 추론용 AI칩 ‘X330’을 올해 말 출시한다는 설명이다.

멀티 LLM 전략도 가동된다. 투트랙으로 로드맵이 가동되며 고객과 관계를 밀접하게 만드는 ‘자강(自强)’과 AI 얼라이언스 중심의 ‘협력(協力)’ 모델을 투영시켰다.

전자의 경우 자사의 AI 기술 브랜드를 ‘에이닷엑스(A.X)’라고 확정하고 초거대언어모델 이름도 ‘에이닷엑스(A.X) LLM’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여세를 몰아 전세계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47위에 등재, 국내 기업들 가운데 2위를 기록한 SKT 슈퍼컴퓨터 ‘타이탄’, 글로벌 톱 수준의 한국어 데이터로 학습한 한국어에 대한 높은 이해력, B2C 및 B2B 통신 인프라에 최적화된 멀티 LLM 및 AI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텔리전스 플랫폼(Intelligence Platform), 마지막으로 텍스트 등 다양한 이미지도 지원되는 멀티모달 LLM 기술을 적용하는 등 독자적인 LLM 기술을 지속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성과는 나오고 있다. 기업공공(Enterprise) 분야 LLM 서비스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SKT는 우선 행안부, 과기부 등 정부에서 추진중인 LLM 기반 시범 사업과 본 사업 참여를 준비중이며,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LLM 기반 서비스 구축 프로젝트도 개별 고객사와 함께 추진중에 있다.

SK그룹내 대형 제조 계열사 등과도 LLM기반 AI 기술의 제조 영역 적용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SKT가 강점을 보여본 빅데이터(Big Data) 분석사업과 결합할 경우 제조 공정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LLM AI 기술을 통해 생산 시간을 단축하는 등 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T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경덕 CIC장(부사장)은 멀티 LLM 교육 과정에 참석한 사내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의 요구 사항(Needs)으로 다양한 멀티 LLM 조합을 기반으로 고객들이 실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자에는 적극적인 외부 투자가 핵심이다. 당장 SKT는 앤트로픽에 1억 달러(약 1300억원) 규모 투자를 집행했으며 양사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 등 다국어 LLM 개발을 통해 통신사 특화형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오픈AI와도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AI 해커톤 ‘프롬프터 데이 서울 2023(Prompter Day Seoul 2023)’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총 226여 팀이 오픈AI의 생성형 AI 모델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들 중 온라인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20팀이 9월 23~24일 드림플러스 강남에서 각자 고안한 AI 서비스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SKT와 오픈AI는 향후 이번 대회에서 발굴한 우수 아이디어에 대해 서비스 공동 개발과 사업화도 검토할 계획이다. 오픈AI 제임스 다이엣(James Dyett) 전략고객담당(Head of Strategic Accounts)은 “AI를 주도하는 기업인 SKT와 협업하여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어 기뻤다”며, “’전 인류를 이롭게 하는 AI’라는 목표를 갖고 지속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KT는 피라미드 중간에 AIX를 배치, 모바일, 브로드밴드, 엔터프라이즈 등 다양한 영역에 AI 기술을 접목한다는 방침이다. 최상단에는 한국어 LLM 서비스 ‘에이닷’을 정식 출시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AI 전화 및 AI 뮤직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AI 기초체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자체 기술력부터 외부와의 협력까지 타진하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AI 비서로 좁혀지는 빅테크 전쟁에 직접 참전하겠다는 각오다.

SKT와 오픈AI의 공동 해커톤. 사진=SKT
SKT와 오픈AI의 공동 해커톤. 사진=SKT

KT "빅테크와 긴 호흡으로 경쟁"
KT도 ICT 빅테크의 길을 걷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로 콘텐츠 영역에서 대성공을 거둔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지코로 통칭되는 탈통신 이상의 로드맵을 구축하는 중이다.

빅테크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노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로 지난해 9월 KT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영섭 KT 대표는 노골적으로 빅테크와의 경쟁을 선언한 상태다.

특정 영역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빅테크가 활동하는 ICT 역량 전반을 키우겠다는 각오다. 김 대표는 "통신 사업과 IT를 접목하는데 성공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라며 "빅테크가 잠식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등의 ICT 영역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주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M360 APAC)’ 콘퍼런스에서도 "통신사업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위에 독점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얻는데 만족하는 동안 빅테크기업들은 통신사가 구축한 인프라에 메신저, OTT, 자율주행, 인터넷 금융 등 혁신 서비스를 내놓아 디지털 생태계의 주인이 됐다”면서 “클라우드, AI, 자율주행 등 빅테크기업들이 주도하는 영역에서 대등한 ICT 역량을 축적하고, 아직 초기 단계인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디지털 헬스케어, 에너지 등 영역에서 주도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신 인프라의 발전에도 ICT 기술을 적극 덧댈 전망이다. 김 대표는 "통신 서비스도 ICT가 중요하다"면서 "ICT 역량을 키워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 말했다. 도시나 국가 수준의 매시브 디지털 트윈, 딥러닝에 기반한 초지능 로봇, 양자암호통신 등 새로운 방식의 통신이 녹아 든 세상으로 변화를 6G와 새로운 ICT로 선점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영섭 KT 대표가 GSMA M360 CEO 키노트스피치에 나서고 있다. 사진=KT
김영섭 KT 대표가 GSMA M360 CEO 키노트스피치에 나서고 있다. 사진=KT

여세를 몰아 KT는 본격적인 빅테크와의 경쟁에 나선다. AI로봇, AI케어, AI교육 사업 전략을 중심으로 판을 짰다. 

AI로봇은 서비스 로봇 중심으로 로드맵을 구성해 AI 로봇 서비스 프로바이더(Robot Service Provider)를 목표로 로봇의 딜리버리 체계와 로봇 플랫폼 전략을 설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빙 로봇, 방역 로봇, 실내 배송 로봇뿐 아니라 실외 배송 로봇 서비스를 확장하고 공장과 물류센터 내부의 소형 물류 이동을 책임지는 공장용 소형 물류 로봇, 농업 현장의 일손을 거들어주는 농업용 배송 로봇까지 서비스 도메인을 확대하는 방안을 연내 수립한다.

AI케어는 기술로 만성질환을 '관리'한다. 원격케어를 중심에 두고 간호사, 영양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케어코디네이터(Care Coordinator), 만성질환 관리의 핵심인 식이 관리를 돕는 ‘AI 푸드 태그(Food Tag)’ 기술을 비롯해 추후 지니TV케어의 영역까지 확장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AI교육은 맞춤형, 지능형, 연결형이 AI 미래교육의 핵심 요소를 바탕으로 AI미래교육을 적극 가동한다.

당연히 핵심은 AI다. KT는 이 지점에서 AI 풀스택 전략을 전면에 세웠다. AI 풀스택은 AI 비즈니스의 근간이 되는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등 인프라부터 고객에게 제공되는 AI응용 서비스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제품과 서비스를 의미한다. 리벨리온, 모레, 나아가 김영섭 대표 취임 후 첫 투자처가 된 업스테이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생태계 전략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KT AI 로봇 라인업. 사진=KT
KT AI 로봇 라인업. 사진=KT

LG유플러스, 차분하지만 확실하게
LG유플러스의 ICT 전략도 AI를 바탕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하반기 플랫폼 3.0을 선포한 후 4대 플랫폼을 중심으로 차곡차곡 기초체력을 쌓아올리는 중이다.

라이프스타일-놀이-성장케어 등 3대 신사업과 웹(WEB) 3.0으로 대표되는 미래기술을 4대 플랫폼으로 구성해 유플러스 3.0 시대를 연다는 방침이다.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은 통신사업에서의 디지털화를 가속화시켜 고객의 일상 전반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놀이 플랫폼은 LG유플러스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OTT 라인업을 확대해 TV, 아이돌 등 여러 포맷으로 고객이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로 구성된다. ‘아이들나라’를 모바일 중심 ‘키즈 OTT’로 키우는 한편 차세대 기술 트렌드인 웹 3.0에 따라 고객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발굴할 계획이다.

AI 서비스 통합 브랜드 '익시'(ixi)가 눈길을 끈다. LG유플러스는 익시를 통해 자체 개발한 ▲스포키 스포츠 경기 승부예측 ▲AICC(Artificial Intelligence Contact Center) 고객센터 콜봇 ▲AICC 우리가게 AI ▲U+tv 콘텐츠 추천 등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방침이다.

통합 스포츠 커뮤니티 플랫폼 ‘스포키’도 순항하고 있으며 모바일 쇼핑 플랫폼 ‘U+콕’ 입점 업체의 재고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한편 고객이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판매 수량 예측 AI 데이터 분석 기술을 고도화하기도 했다.

스포키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스포키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메타버스에 생성형AI를 덧대는 전략도 가동중이다. ‘키즈(Kids)’와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d)’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키즈토피아라는 메타버스에 생성형AI 기술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원성관 LG유플러스 메타버스 프로젝트 팀장은 "인월드와 협력해 생성형AI를 키즈토피아에 도입했다"면서 "10분만 투자하면 AI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LG유플러스의 ICT 전략은 AI에 강한 구심력을 가진 경쟁사와 달리, 키즈 콘텐츠 및 SNS와 NFT 등 다양한 플랫폼 전략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강점을 보이는 에듀테크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아이들나라의 교육 콘텐츠 사업 강화를 위해 에듀테크 기업 ‘그로비교육’에 약 1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로비교육에 대한 지분 투자는 올해 2월 50억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LG유플러스의 누적 투자금은 150억원 수준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부터 ▲호두랩스 ▲에누마코리아 ▲째깍악어 ▲그로비교육 등 총 4개 에듀테크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며 아이들나라 교육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신규 수익 창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실제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 마켓인텔리전스(Market Intelligence)에 따르면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241조원에서 2025년 약 532조원으로 두 배 이상 확대할 것으로 예측되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초개인화 맞춤형 요금제 ‘너겟(Nerget)’ 출시에서도 포착된다. MZ세대를 위한 모바일 선불 요금제를 세분화시켜 출시하면서 앱 플랫폼을 통한 다양한 가능성도 타진하기 때문이다.

우선 너겟 자체의 의미는 5G 요금제를 16종으로 세분화해 출시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너겟이라는 앱 플랫폼을 라이프스타일 전략으로 묶은 지점에도 큰 의미가 있다. 세분화된 요금제에 다양한 '토핑' 서비스를 바탕으로 이용자의 통신요금제 선택권을 보장하는 한편, 커뮤니티와 다양한 할인 쿠폰 등을 제공하는 앱 플랫폼을 동시에 키우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 너겟 요금제가 발표되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LG유플러스 너겟 요금제가 발표되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너겟 요금제 자체가 모바일 중심이고 라이프스타일 요금제를 표방한다. 그리고 너겟 앱은 일종의 요금제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라이프스타일 전략을 더욱 고도화시킬 전망이다. 새로운 요금제의 컨셉을 '라이프스타일'로 지정한 상태에서 앱 플랫폼에 이용자들이 모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투트랙 플랫폼 전략이다. 요금제와 ICT 콘텐츠 전략의 시너지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