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123명을 대상으로 징계에 착수한 가운데,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가 26일 3차 심의기일을 열어 이들에 대한 징계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플랫폼과 현업단체의 힘 겨루기가 이어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제2의 타다 사태는 막았다는 안도감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의 이번 판단으로 국내 리걸테크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생성형AI 시대를 맞아 리걸테크와 AI의 결합으로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관련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무성하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게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도 만만치않다.

로앤컴퍼니의 엄보운 이사(오른쪽)가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리는 '로톡' 가입 변호사 징계 관련 변호사징계위의 2차 심의에 출석하고 있다.
로앤컴퍼니의 엄보운 이사(오른쪽)가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리는 '로톡' 가입 변호사 징계 관련 변호사징계위의 2차 심의에 출석하고 있다.

불 뿜었던 변협과 로톡의 대결
로앤컴퍼니가 2014년 출시한 로톡은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 걸었다. 이를 바탕으로 법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로톡을 통해 편하게 변호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고참 변호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네트워크가 짧았던 젊은 변호사들은 자신의 꿈을 더욱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한때 등록 변호사 4000명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변협이 이의를 제기하며 판이 출렁였다.

로톡 초창기부터 변호사법 위반을 주장하던 변협은 로톡이 사실상 '온라인 사무장' 역할을 하며 법률 환경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을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한편, 2021년 내부 광고규정을 바꾸며 여전히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123명에 대한 징계에 돌입했다.

분위기 자체는 로톡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헌법재판소가 변호사의 로톡 이용을 금지한 변협 규정에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리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도 변협의 금지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고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협은 끝까지 로톡을 흔들었고, 법무부도 징계위 일정을 끌며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로톡의 운영사인 로앤컴퍼니 엄보운 이사는 "지난 10년간 변협으로부터 4번이나 형사고발을 당했지만 그 어떤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면서 "로톡은 법과 규정을 성실히 지키며 운영하는 중"이라 주장했지만 이태한 변협 부회장은 "국민의 선택권을 사기업에 완전히 종속시킬 것인지, 광고비가 추가되어 수임료가 대폭 인상되어도 되는 그런 미래를 받아들일지 선택해야 한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충돌이 격화되는 가운데 결국 법무부가 로톡에 대한 판정승을 선언했다.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가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에 대한 징계를 취소한다고 밝히며 120명은 혐의 없음, 3명은 불문경고(죄는 묻지 않고 경고) 처분했기 때문이다.

변협은 별도로 불복할 수 없어 사실상 로톡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법무부 징계위의 전향적인 결정으로 대한민국 리걸테크는 비로소 제대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됐으며 부당한 규제에 맞서 혁신의 길을 걷는 스타트업에도 큰 울림이 될 역사적 순간"이라며 "변호사가 플랫폼을 활용해 스스로를 알려 법률소비자를 만나고, 법률소비자는 플랫폼을 통해 편하게 변호사를 선택하고 상담을 예약하는, 지극히 당연해야만 했던 일이, 이제 드디어 자유로워진 것"이라 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법무부의 판단에 환영의 입장을 밝히며 "법률서비스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 리걸테크 스타트업 앞에 마침내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판정승인 이유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은 7500개가 넘으며 시장 규모도 113억달러에 달한다. 20개에 달하는 북미 리걸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생성형AI를 덧댄 다양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으며 법률 자문부터 자료조사, 예측 서비스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로펌들 사이에서도 리걸테크의 기술력을 흡수해 수준높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는 중이다.

법무부의 이번 판단으로 국내 리걸테크 시장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로톡이 변협의 문제제기를 이겨내고 운신의 폭을 넓히는데 성공한 가운데 로앤굿 등 다양한 경쟁사들이 함께 판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생성형AI가 리걸테크 산업 성장의 기폭제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현재 국내에서는 양질의 생성형AI 사례들이 다수 발굴되고 있다. 추후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로톡의 이번 승리는 판정승에 가깝다. 변협의 '태클'을 피해 서비스 정상화 및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앞으로 걸어나갈 길도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의 기초체력이 문제다. 로앤컴퍼니는 변협과의 오랜 공방전을 치르며 사옥을 매각하고 직원 숫자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 바 있다.

가뜩이나 글로벌 거시경제 악화로 스타트업 시장에 한파가 여전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소모적인 논란에 휘말리며 컨디션이 저하된 상태에서 당장 예리한 비즈니스를 재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정승이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른 경쟁사들도 상황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어있는 로앤컴퍼니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비어있는 로앤컴퍼니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기초체력이 떨어졌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리걸테크의 지평이 열렸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 역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법무부가 "로톡의 변호사 소개 서비스 자체는 광고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로톡이 광고비를 낸 변호사를 ‘Active Lawyers(적극적인 변호사)’로 표시하는 등 광고비를 많이 낸 변호사에게 수임을 몰아주는 구조에 대해서는 개선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로톡의 운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수익구조에 대해서는 이견이 보인다. 법무부의 이번 결정이 로톡의 연속성은 보장했으나 확장성에는 일부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법무부의 판단으로 로톡 사태가 일단락됐으나 이미 깊어진 양측 감정의 골도 메워야 한다.

로톡 정상화 국면에 들어서며 변호사들의 플랫폼 활동에는 제약이 사라졌으나 변협을 중심으로 여전히 로톡에 대한 비토정서가 큰 편이다.

종국에는 변호사들과 협력해야 하는 로톡 입장에서 풀기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셈이다. 로앤컴퍼니는 변호사 단체들과 잘 협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으나, 향후 변협 등 변호사 업계 전체의 반응은 미지수다.

로톡 사태와 비슷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공인중개사 및 숙박 영역의 플랫폼 현황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플랫폼과 현업단체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로톡 사태 타결로 다른 영역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지만, 최근 온플법 강행 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정부는 여전히 플랫폼 압박에 나서는 중이다.

복잡하게 꼬인 전선에서 의외의 사태가 터질 가능성도 있다. 다른 영역에서 벌어지는 현업단체와 플랫폼의 논란이 일단락 된 로톡 사태에 영향을 받겠지만, 역으로 다른 영역에서 전혀 다른 판단이 나올 경우 로톡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걸테크 산업 전략이다. 로톡 등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이 법무부의 판단으로 사업 확장의 기회를 잡았으나 냉정하게 말해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의 벽은 높다. 트랙슨의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 집계에서 한국 리걸테크가 '0'으로 잡힐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변협과의 충돌을 불사하며 리걸테크 시장 만개의 기회를 잡았으나 기대됐던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소 가혹한 잣대가 드리워질 가능성도 있다. 만약 글로벌 리걸테크 강자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이라도 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지만 "제2의 타다 사태를 막아줬음에도 고작 이 정도였냐"라는 설익은 비판이 나올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법무부의 판단은 업계 전체에 독이 될 소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