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경남 사천시 KAI에서 열린 2022 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경남 사천시 KAI에서 열린 2022 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최선의 방어는 ‘공격을 단념케 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은 보복 공격을 우려해 핵 선제공격을 단념하도록 만드는 것을 이른다. 세계의 무기 구입 흐름도 이와 같다. 무기 구입을 통해 대외적으로 강력한 국방력을 보여줌으로써 타국의 침입 의지를 꺾는 것이 주목적이다. 만약 적이 침입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무기로 강력한 국방력을 갖춰두었기 때문이다.

당초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정부에서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방위산업을 성장시켜왔다. 무기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 기업별로 각기 다른 제품을 지정해 연구개발(R&D)을 진행시켰다. 그 결과 국내 방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1993년 K-200 장갑차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을 넘볼 수 있게 됐다. 2000년대부터 순차적으로 기술과 제조 능력을 닦아온 한국 방위산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을 기점으로 획기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존 주류 방산 국가들보다 우수한 가성비와 납품의 신속성이 확인된 것.

러-우 전쟁으로 세계는 안보 강화를 위해 무기 구입을 늘렸다. 이때 주목받은 것이 납품의 신속성이다. 현대로템은 지난 3월 폴란드에 K2 전차 5대를 3개월 조기 납품했으며, 한국항공우주산업(KAI)는 지난 6월 계약 10개월 만에 폴란드 수출형 FA-50GF의 납품을 시작했다. 글로벌 방산 기업이 수년간 납기를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점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속도다. 

약속 보다 빠른 신속한 납기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K방산에 대한 국제 신용도를 높였다. 폴란드가 유럽 내 첫 고객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 유럽 각국의 시선이 달라진 이유다.

사진=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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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으로 커진 틈새시장

​​한국 방산은 틈새시장에 속한다. 세계무기시장은 민주주의 진영인 미국, 프랑스, 독일과 공산주의 진영인 러시아, 중국으로 양분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통계에 따르면 톱5 국가가 전체 시장의 78% 가량을 차지한다. 가격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부 중동국가와 유럽국가들은 미국과 유럽 무기를 주로 구입했다. 공산주의 국가들도 동일 진영인 러시아와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했다. 무기는 각 진영별로 체계가 달라 호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견고한 진영 내 균열은 러-우 전쟁이 만들었다. 전쟁 통인 러시아에서 무기를 납품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선책을 찾게 됐다.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부족하거나, 빠른 납기를 원하는 민주 진영 국가들도 K방산 다시보기에 나선 것이다. 

실제 러-우 전쟁이 1년6개월 넘게 지속되며 K방산의 저력은 세계 방산업계에 확실히 각인됐다. 지난해 7월 폴란드와 진행한 20조원 규모의 수출 계약은 국내 방위산업 사상 최대 규모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방산 수출 규모가 한단계 성장한 것으로 해석했다.

또다른 수주 낭보도 이어졌다. 작년에만도 ▲1월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 UAE와 약 4조2000억원 규모 천궁-Ⅱ 수출계약 ▲2월 한화에어로, 이집트에 약 2조원 규모 K9 자주포 수출계약 ▲7월 현대로템 K2 전차(980대)+KAI FA-50 경공격기(48대)+한화에어로 K9 자주포(670문) 등 20조원 규모 수출계약 ▲11월 한화에어로, 폴란드에 약 5조원 규모 천무 다연장로켓 수출계약 등이 진행됐다.

올해 5월에도 KAI의 말레이시아와 약 1조2000억원 규모 FA-50 경공격기 18대 수출계약, 7월 한화에어로는 약 2조원 규모 129대 호주 레드백 장갑차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굵직한 수주 소식이 줄을 이었다.

사진=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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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톱4, 3~5년이 고비

최근 신바람 부는 K방산이지만 지속적인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3~5년이 주류 방산 국가 편입의 기로라고 내다본다. K방산이 주목받고 있지만 방산 주요국들의 견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러-우 전쟁이 끝나면 관심이 금세 시들해질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5년간 연간 100억~200억달러를 꾸준히 수출할 수 있어야 글로벌 방산 4위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방산시장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K방산의 5가지 전략과제를 언급했다. ▲방산수출 락인(lock-in) 효과를 고려한 ‘권역별 방산수출 거점국가 확대’에 집중 ▲기존 전차, 자주포, 천무 외에 ‘새로운 수출 주력제품’ 발굴과 수출 연계 노력 배가 ▲러시아와 중국의 글로벌 무기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인도‧이집트‧베트남 등의 ‘틈새시장 공략’ 적극 도모 ▲미국 등 우방국의 탄약, 미사일 재고 부족에 따른 ‘방산공급망 협력’ 강화 ▲수출 지속성 보장을 위한 핵심소재‧부품류의 ‘글로벌 방산공급망 리스크 대응체계’ 구축 등이다. 지속적인 무기 구매 체계를 만드는 한편, 기민한 현지 대응 체재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업계에서는 수출 촉진을 위해서는 차관 지원 확대가 무엇보다 선행되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산 등 대단위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은 차관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관 지원 여력은 해외수출 및 해외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자본금 규모가 좌우한다. 이 때문에 윤영석 의원 등 12인이 지난 7월 14일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현재의 2배 수준인 30조원으로 증액하는 것을 골자로 법안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향후 방산 수출은 제약이 걸릴 전망이다. 윤영석 의원 등은 법안을 발의하며 “2023년 5월 현재 (수은의) 납입자본금 잔액은 14조8000억원으로 법정자본금 15조원을 98.5% 소진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자본금을 늘리지 않으면 차관을 할 수 없어 사실상 K방산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차관에 대해 오해하는 시선이 있는데 이는 대형 수출 국가들, 국가간 거래가 이루어질 때는 거의 다 있는 일”이라며 “수출 한도가 오래돼 수출 의존 국가치고 (한국이) 상한선이 낮다고 평가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방산업계에 힘이 되는 요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미국‧러시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대 방산수출국 진입으로 방위산업을 전략산업화하고 방산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자원연구센터도 ‘방위산업 수출산업화 정책의 필요성과 발전방안’ 리포트에서 “대규모 단일 수출의 성공에 국한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수출과 산업발전이 선순환할 수 있는 방위산업 수출산업화 달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