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에 과징금까지 부여할 정도로 치열했던 난타전은 일단 페이스북의 후퇴로 매듭이 지어졌다. 페이스북이 캐시서버 비용 일부를 충당하는 한편 과징금을 부담하고 ISP와 소통을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으며 확전은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 이용료와 관련이 있는 임의접속 이슈는 뒤이어 펼쳐진 SKB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글로벌 CP와 토종 ISP의 신경전이 극대화되며 양측이 정면충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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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B와 넷플릭스의 전쟁
"망 이용료를 내라" "낼 수 없다"며 버티는 양측의 공방은 넷플릭스가 방통위의 중재안이 나오기 전인 2020년 4월 SKB에 소를 제기하며 더욱 심각해졌다. 망 중립성에 대한 거대한 담론부터 오래된 미디어 법칙까지 정신없이 터져나온 가운데 논란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최근에는 무정산 합의 여부에 논란이 집중됐다. 

넷플릭스가 2016년 첫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에는 미국 시애틀 IXP(인터넷교환지점)인 ‘SIX’를 통해 망 접속이 이뤄졌으며 이는 퍼블릭 피어링이었다. SKB의 네트워크는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 즉 오픈커넥트와 시애틀에서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문제는 넷플릭스의 인기가 올라가며 트래픽이 폭증, 퍼블릭 피어링 방식으로는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기 어려워지며 시작됐다. 그 결과 2018년 5월부터 일본 도쿄 IXP ‘BBIX’ 피어링을 하기 시작했다. 전용망으로 비유할 수 있는 프라이빗 피어링 방식이 트래픽 소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양측의 의견이 갈렸다.

SKB는 기존 퍼블릭에서 프라이빗으로 피어링 방식이 변했기에, 즉 양자간 계약으로 변했기 때문에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 퍼블릭 피어링 방식에서는 특별한 계약이 필요없어도, 프라이빗 피어링은 말 그대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사이에 '별도 계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으나 심지어 관련된 논의를 넷플릭스와 진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8차 변론기일 구술변론을 보면 "원·피고(넷플릭스와 SKB)는 원고(넷플릭스)의 트래픽 증가에 따른 고객불만(품질 문제)을 해결을 위하여 2018년 5월 경 일본에서 프라이빗 피어링(망 직연결)을 하기로 합의하고 망을 연결하였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트래픽 품질 개선을 위하여 BBIX(일본 도쿄 IXP)에서 프라이빗 피어링을 하는 방안을 먼저 제안한 것은 넷플릭스라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넷플릭스 생각은 다르다. 넷플릭스는 "양사는 2016년 1월 넷플릭스 서비스가 국내에 개시된 이래 시애틀에서 무정산 피어링 방식으로 연결해 왔고, 2018년 5월 SKB의 요청으로 도쿄, 홍콩으로 연결지점을 순차적으로 변경하면서 무정산 피어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망 연결지점까지의 비용은 각자가 부담한다는 무정산 피어링의 합의는 인터넷 업계의 확립된 관행에 부합한다"면서 "SKB는 넷플릭스와의 피어링을 통해 막대한 트랜짓 비용 등을 절감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MWC 2023에 참석한 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MWC 2023에 참석한 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흐름은?
최초 SKB와 넷플릭스가 공방전을 시작할 당시 국내에서는 망 이용료에 있어 SKB의 의견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토종 ISP의 생존이 곧 한국 인터넷 시장을 지킬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편 망 이용료에 있어 '무임승차는 있을 수 없다'는 기류도 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 다수의 망 이용료 법안이 발의되는 한편 전 세계의 시선도 집중됐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특히 CP들이 각 국의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강했기 때문이다.

당장 유럽에서는 망 이용료 부과를 골자로 하는 기가비트 인프라 법안이 제정되고 있으며 유럽의회는 LTG의 망 공정기여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다. 미국에서는 미 연방통신위원회 차원의 망 이용료 부과안이 검토되고 있고 역시 망 이용료 부과를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공정기여법이 재차 발의된 상태다.

다만 올해 초 MWC 2023에서는 다소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통신사들의 축제인 MWC 2023을 통해 CP에 대한 ISP들의 강력한 망 이용료 분담 촉구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럽연합은 CP의 망 이용료 분담 필요성을 전제하기는 했으나 관련 분쟁을 이분법적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자원의 배분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은 2월 27일(현지시간) MWC 2023 기조연설을 통해 망 이용료 문제를 두고 '공정 가치'에 주목했다. GSMA 이사회 의장인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팔레트 로페즈 CEO도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의 주장인 '공정 이용'을 언급하며 일부 찬성하는 스탠스를 보였다.

넷플릭스는 기선을 잡았다. 넷플릭스 공동 CEO 그렉 피터스(Greg Peters)는 MWC 2023 기조연설을 통해 인터넷 생태계를 두고 ISP, 기기 제조사 등 다양한 ‘파트너십’과 함께해야 한다며 선순환의 고리(virtuous flywheel)라는 프레임을 꺼냈다.

그는 "성공적인 창작 산업과 성공적인 인터넷 생태계 사이에는 명징하고도 직접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면서 "소비자는 훌륭한 콘텐츠를 원하며, 본인이 사랑하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더 고품질의 인터넷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터넷 트래픽 증가는 선도적인 위치의 통신사들이 최근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CP와 ISP) 모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이자 곧 엄청난 ‘기회’임을 지난 10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미묘하게 전개됐다. 가뜩이나 망 이용료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첫 일정으로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CEO와 만나 25억달러 투자 유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투자한 금액의 2배에 가까운 액수다. 윤 대통령은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이번 투자는 대한민국 콘텐츠 사업과 창작자, 그리고 넷플릭스 모두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란도스 CEO도 “앞으로 4년간 한국 드라마·영화 그리고 리얼리티쇼의 창작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K-콘텐츠 투자는 망 이용료 이슈와 관련이 없지만, 국내에서 넷플릭스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어 주기에는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SKB 입장에서는 불안한 시그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에 다시 뒤집혔다. 통신사들이 재차 유럽과 협력해 망 이용료 이슈에서 강경모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리사 퍼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 사무총장은 "통신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한 통신망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내는 빅테크들이 별다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면서 "불균형을 고치지 않으면 인터넷 생태계는 무너질 것"이라 강조하며 CP들을 정조준했다.

김영섭 KT 대표도 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M360 APAC)’ 콘퍼런스를 통해 빅테크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