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는 한국 게임역사에 있어 매우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 소위 '3N'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게임업계 삼두정치의 거물로 활동하고 있으나 그 누구보다 발칙하고 모험적이다. 상상력의 수평선이 일반의 범주를 뛰어넘는 느낌일까. 그러면서도 간혹 위험하고 무모하며 선을 넘는다. 

걸어온 길 자체가 심상치않다. 당장 리니지를 통해 한국 게임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더니 유료화 승부수로 파도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리니지2로 3D 그래픽과 '미친' PVP 시스템으로 판을 흔들다가 왠 유명한 서양 아저씨와 손을 잡더니 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배신도 당하고, 아픔도 컸다. 아이온과 블레이드 소울이라는 명작을 품어냈고 논란의 중심으로 서슴없이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리니지 시리즈는 몸집이 커졌고 모바일도 '씹어 먹었다' 미워할 수 없는 우당탕탕 악당의 느낌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엔씨 스스로도 '라이크 리니지'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게임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리니지 시리즈의 위엄에 다른 게임사는 물론 엔씨마저도 짖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의 성공을 이끌었고 이를 통해 업계를 지배했으나 '넥스트 스텝'을 스스로 밟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쉽게 말하면, 성공의 역설이다.

착각일까. 엔씨는 또 한 번 몸을 일으켰다. 물론 리니지 라이크의 위엄(이라 쓰고 그림자라 읽는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획일화 된 한국 MMORPG 역사에서 또 한 번의 '매운맛 도전'이 엔씨의 손에서 시작되고 있다. 루비콘 강을 건너는 순간이다.

TL. 사진=엔씨
TL. 사진=엔씨

오픈형 R&D로 만들어진 TL
엔씨는 지난 2022년 내부에 ‘오픈형 R&D’ 기조를 만들어가는 중이라 밝혔다.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이용자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반영하여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각오였다. 일종의 개방형 전략이라는 점에서 구글과 메타, 네이버, 카카오 등이 추구하는 플랫폼 로드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플래그십 MMORPG ‘THRONE AND LIBERTY(이하 TL)’가 있다. 핵심 개발자가 상세 콘텐츠를 공개하고, 대규모 CBT를 진행하는 등 이용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개발에 반영했다. 특히 최근 공개된 안종옥 개발 PD의 ‘프로듀서의 편지’는 오픈형 R&D에 대한 엔씨의 진심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정도로 TL은 이용자 소통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홍원준 CFO는 “5월 진행한 CBT 결과 대규모 전쟁 콘텐츠와 오픈 월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면서도 “초반 성장 경험과 전투 시스템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게임 내부를 채우는 방식, 이용자의 경험에 있어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이자 천편일률적이던 시스템의 변화를 시사한다. 

핵심은 ‘정적인 전투’와 ‘지루한 성장’의 개선이다. 이를 위해 진행 중인 17종 이상의 개선 사항에 대해 안종옥 PD가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역동적인 전투’와 ‘빠른 성장’이다. 당장 ‘자동 사냥’과 ‘자동 이동’을 전면 제거했다. PC의 키보드와 마우스, 콘솔의 게임 컨트롤러를 통해 이용자가 콘텐츠를 직접 세밀하게 컨트롤하며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다. 안락한 의자에 편히 기대어 열심히 자동으로 '몹'을 사냥하는 캐릭터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대신 전투 시스템 전반이 개편된다. 캐릭터가 움직임과 동시에 공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캐릭터나 몬스터를 지정하는 것이 아닌 특정 지점을 타격하는 ‘논타게팅’형 스킬이 추가된다. 또한 두 종류의 무기를 착용하고 사용하는 ‘무기 스왑(Swap)’ 특성도 강화해 이용자의 성향과 컨트롤 숙련도에 따라 다채로운 전투 방식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캐릭터의 성장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몬스터 사냥을 통한 경험치 획득의 필요성을 대폭 낮추고 ‘모험’과 ‘탐사’ 콘텐츠로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TL은 게임 속 모든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오픈 월드’가 특징이다. 각 지역을 탐험하며 필드 내 숨은 장소들을 찾아내고, 의뢰를 완료하며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대폭 상향된다. 단순 반복 대신 TL의 세계관에 흠뻑 빠져들며 성장까지 도모할 수 있도록 변모한 것이다. 

안종옥 PD는 “CBT에서 선보였던 30레벨 까지의 소요 시간은 1/3로 감소, 정식 서비스 기준 최고인 50레벨까지의 소요 시간은 1/10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땀과 노력이 들어간 불굴의 캐릭터가 진정한 이세계의 탐험으로 이용자들을 안내하게 된 배경이다. 

TL. 사진=엔씨
TL. 사진=엔씨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엔씨는 TL을 통해 오픈월드, 인터랙티브 월드에 가까운 무한한 모험의 장을 펼칠 전망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동 사냥 등을 폐지하는 한편 새로운 콘텐츠 시스템으로 묶어내는 전략적 선택에 돌입했다.

▲이용자가 다양한 성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스탯 체계 전면 개편 ▲초반 장비 제작과 아이템 강화 재료 습득처 확대 ▲레벨 성장에 따른 스킬 자동 습득 및 스킬 강화 재료 습득량 증가 등 CBT에서 확인된 이용자 피드백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엔씨는 '배고프다' 우선 소통의 채널을 확대한다. 이용자의 목소리를 더욱 가까이 듣기 위해 ‘TL에게 말한다’ 게시판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게임에 대한 의견을 남기면 개발진이 직접 확인하고 개발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추가적인 개발자 편지를 통해 아직 공개되지 않는 콘텐츠를 공개, 이용자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계획도 설명했다. 9월 19일부터 10월 3일까지 아마존게임즈와 함께 진행하는 ‘Technical Test Closed Alpha’에서 글로벌 이용자들의 피드백도 청취한다.

이번 개발자 서신이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MMORPG 본연의 재미’를 향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