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가을이 와도 가시지 않는 뜨거운 날씨처럼, 한반도를 계속 달구고 있다. 사건의 요지를 설명하자면, 최근 일본이 원전 사고 발생 12년 만에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처리한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중국이 일본 수산물 금수 조치를 내리고 한국에서는 야당과 여러 시민단체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유엔(UN)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류가 안전하며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 정부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우리 국민을 안심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이유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도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놓고 우리 국민들이 불안해 하면서, 정지척으로 여야(與野)가 양분(兩分)된 상황이 전개됐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 국민의 ‘먹거리’와 관련된 것이다. 2008년은 바로 우리 국민의 주식(主食)인 소고기와 관련된 것이고 2023년의 상황은 해산물과 관련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의 보건(保健)과 직결된 일이기에, 사안(事案)의 경중(輕重)을 따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국민들 안에서의 어느 정도 ‘학습효과’가 작용된 것일까? 15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광우병 사태가 지난 이후에도, 우리 주변에 여전히 광우병으로 피해 본 사례가 거의 없어서 일까?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이번 오염수 방류 사태에 대해 우리 국민은 매우 미온적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여전히 활기차고, 다가오는 6일 간의 추석연휴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예약이 꽉 찬 상황이다. 물론 자국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국민들 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기에, 우리 국민의 미지근한 반응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방사성 오염수 방류가 무조건 된다, 안된다가 아니라, 왜 안전한지 아니면 안전하지 않은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마련이 됐고 그것에 따른 최종 의사결정이 됐느냐일 것이다. 즉 객관적인 근거가 없이, 과도한 괴담 형성도 안 될 것이고 아울러 과도한 낙관론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을 놓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극렬하게 대치(對峙)하는 상황이 온 데에는, 이러한 충분히 숙의(熟議)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정보 과부하(過負荷)’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보가 많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정보 지식이 많기에 문명이 발달됐다는 방증(傍證)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소위 말하는 ‘가짜 정보’, ‘가짜 뉴스’도 난무할 수 있는 시대일 것이다. 즉 정보는 미가공(未加工)된 상태에서 어떻게 가공 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정보의 ‘가치’가 결정된다. 객관화된 사실에 근거해서 가공된 정보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호도(糊塗)할 수 없겠지만, 정보 제공자의 주관과 의도에 따라 가공된 정보는 변질되고 괴담이나 가짜뉴스로 양산(量産)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커로프 교수는 ‘레몬을 위한 시장(Market for lemon)’이란 논문에서 ‘정보’가 경제주체들 간에 불공평하게 생산되고 공유되는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 (Information asymmetry)’이라고 칭했다. 또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만들어진 간극이 경제주체들에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애커로프 교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고차 시장을 한 예로 들었다. 흔히 영어에서 불량 제품을 ‘레몬(lemon)’이라고 칭한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신맛을 가진 레몬의 특성을 빗댄 표현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레몬’들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고차의 성능은 그 차를 사용한 주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몬 중고차’의 주인이 일반 중고차보다 가격을 약간 낮게 제시한다면, 정보에 무지한 구매자는 가격이 싼 레몬 중고차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구매자는 가성비가 낮은 제품을 선택하는 ‘역선택 (adverse selection)’을 하게 되고, 이런 역선택이 누적되면 궁극적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레몬 중고차가 품질 좋은 중고차를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즉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많은 레몬과 같은 정보를 어떻게 필터링(filtering)해서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가 최대의 과제일 것이다. 정보의 주체가 된다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에서 피할 수 있겠지만, 정보를 소비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정보의 중요도는 높아진다.

무엇보다도 가짜 정보의 위험성은 ‘반복성’에 있다. 심리학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정보가 반복되면 적어도 ‘진실의 환상’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환상의 진실 효과’라고 부르는데, 반복된 정보는 우리의 뇌에 ‘고착’되고, 곧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서 무서운 점은 고착된 정보는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상당히 견고하고 잘못된 정보로 진실을 둔갑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짐작된다.

경영전략 관점에서 본다면 최종의사결정자가 가짜뉴스와 정보에 현혹돼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그 기업에게 미칠 수 있는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조나스 드 키얼스매커(Jonas De keersmaecker)가 쓴 2022년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논문에 따르면, 의사결정자가 가짜 정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첫번째로 편향된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환상의 진실 효과는 편향된 사고 방식이 부분적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되고, 조직의 최고봉에 있는 대부분의 CEO들이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인해 환상의 진실효과에 쉽게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인식의 버블(bubble)’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어느 조직이나 조직문화가 있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 체계와 매뉴얼이 있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오랜 시간 동안 작동하고 정착하게 되면 하나의 비누 방울처럼 되고 그 조직은 그 방울 안에서 바로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직일수록 가짜 정보에 취약하고, 위에서 언급한 편향된 의사결정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에 대한 ‘검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정보이든 ‘팩트 체크’가 필수이며 이러한 외부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 과정이 없는 조직은 쉽게 가짜 정보에 침투될 수 있다. “이 말이 사실일까?”라고 되묻는 구성원을 존중하고 그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가짜 정보에 선동될 확률이 낮을 것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반복했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반복된 정보는 거짓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2023년의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다. 필자가 좋아하는 잔나비 밴드의 어느 노래 가사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는” 어수선했던 지난 여름날이었지만, 이 가을, 우리 국민 모두가 ‘이성(理性)’으로 무장돼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最善)’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계절이 될 수 있게,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