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74)은 시쳇말로 ‘글로벌 인싸’다. 국제금융 분야의 경력과 인맥 면에서 그와 견줄만한 인물이 국내에는 드물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뒤에 걸려 있는 액자는 40년 가까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에서 일하던 80년도 말 개혁·개방 초기였던 중국에 정책 자문을 하러 갔다”며 “그때 중국 관리들이 안내해 준 국자감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스튜디오100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뒤에 걸려 있는 액자는 40년 가까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에서 일하던 80년도 말 개혁·개방 초기였던 중국에 정책 자문을 하러 갔다”며 “그때 중국 관리들이 안내해 준 국자감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스튜디오100

그는 특히 금융위기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기도 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시간주립대 교수를 지내다 세계은행(WB)에 영입돼 15년간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다. 이후 1998년 외환위기 때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원장을 역임했다. 또 2008년에는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MB정부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상황은 또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부문이 잇따라 파열음을 내고 있고 미국에서는 중소형 은행 부실화에 이어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까지 나왔다. 그런가 하면 독일 경제는 ‘유럽의 병자’라는 소리를 듣는 신세로 추락했다. 한국 역시 경제성장률이 세계경제 평균치에도 못미치는 우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성한 구석이 없는 듯 보이는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듣기 위해 이코노믹리뷰가 전광우 이사장을 만나봤다.

 

◇“나랏돈, 경제 살리는 데 써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전 이사장의 세계은행 근무 시절 동료 중 한 명이었다. 전 이사장은 “언젠가 함께 출장을 가는 비행기에서 스티글리츠가 해 준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는 말로 운을 뗐다.

“‘경제는 용수철 같아서 너무 오래 눌려 있으면 회복력이 떨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침체기가 길어지면 경제가 회복탄력성을 잃으니 적절한 진작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이죠.”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현실에서도 구현했다.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원화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유로 초고금리 정책을 요구했다. 이에 1998년 1월 한국의 시장 금리는 연 25.63%까지 뛰었다. 스티글리츠는 이 처방에 반대했다. “경제를 살리려고 구조조정을 하는 건데, 그렇게 긴축만 하다가는 기업들을 다 죽인다는 게 그 사람 얘기였죠. 그래서 적정 수준으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밀어붙인 겁니다.”

전 이사장은 스티글리츠의 ‘용수철론’이 오늘날 한국 경제에도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1.6%에서 1.5%로 낮췄습니다. 내년에도 1%대 성장에 그칠 거라는 얘기가 나와요. 적절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두 가지 ‘리셋’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와 대외 전략을 리셋해야 하는 타이밍이 왔습니다.” 재정 건전성 회복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한마디로 예산 절약에 집착하지 말고, 돈 잘 쓰는데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재정이라는 마중물을 통해서 경제를 살리도록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세수 부족이 심각한데, 경제가 완전히 가라앉으면 누가 세금을 냅니까.”

중장기적인 경제 회복 방안으로는 “경제 체질 개선”을 제시했다. “이건 다른 게 없어요. 노동개혁 등 규제 개혁을 해서 기업들이 뛰도록 만들어야죠. 2030년대에는 잠재 성장률이 제로 퍼센트를 기록할 거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걸 반등시키는 수단은 규제 개혁이에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옛날 얘기”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국가의 정체성 및 국정 운영 철학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주변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스튜디오100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국가의 정체성 및 국정 운영 철학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주변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스튜디오100

전 이사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환경에 대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997년 외환위기(IMF) 때 우리 경제가 빨리 회복된 요인 중 하나는 당시 고성장을 하고 있었던 중국 시장”이라며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는 건 우리나라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대외 전략을 리셋해야 할 때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전략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요?

“예전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식의 양다리 전략으로 갈 수는 없어요. 지금은 안보와 경제가 같이 가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무역·통상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기술, 금융으로 확산되다 이념으로도 번졌어요. 미국이 자유진영의 결집을 통해 중국 중심의 전체주의와 대결하는 구도가 본격화하고 있죠.”

그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체도 탈중국화와 연계돼 있다”며 말을 이었다.

“리쇼어링(Reshoring)이나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등 여러 말이 나오는데, 결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을 벗어나 공급망의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소리예요. 그런 면에서 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다른 대안이 없죠.”

◇“중국, 인구·성장률에서 피크 지났다”

- 현재의 중국 경제 상황은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에 동의합니다. 중국은 첫째, 인구 피크를 지났어요. 중국의 고도 성장기를 뒷받침한 건 값싼 노동력이었죠. 그런데 작년 연말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해 인도가 세계 최대 인구국이 됐습니다. 둘째, 성장 페이스도 과도기에 왔어요. 향후 10년간 중국 경제 성장률에 관한 다양한 전망치가 나옵니다만, 그중 설득력 있는 전망치는 3% 남짓입니다.”

전 이사장은 이어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국가부채”라며 “중국의 국가부채 비중이 일본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 기업, 개인을 다 합친 총 국가부채가 GDP 대비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가 중국입니다. 국제금융협회(IIF)에서 비공식 자료까지 파악해 추정한 결과, 그 비율이 300%를 넘는다는 얘기도 있어요. 여력이 되는 선진국은 부채가 많아도 흡수 가능하겠지만, 중국은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요. 1인당 GDP로 보면 중국은 아직 1만불 남짓한 중진국입니다.”

- 중국의 민간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서방의 주요 학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이죠. 시진핑의 3연임을 전후해 중국 공산체제의 통제 내지는 규제가 더 커지면서 민간 부분 활력이 감소하고 성장이 위축되는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체제 개혁을 하지 않는 한 회복이 힘들죠.”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브릭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가입을 승인했다. 출처=AFP연합뉴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브릭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가입을 승인했다. 출처=AFP연합뉴스

- 최근 BRICS(브릭스)가 공동통화를 추진하고 중국이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흔들 가능성이 있을까요?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죠. 브릭스가 이번에 새 회원국을 받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도 들어갔지만, 이 경제 블록이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꿀 만큼의 파급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브릭스에서 만든 신개발은행(NDB)도 실제 활동은 별로 없어요. 브릭스 회원국끼리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응집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죠.”

전 이사장은 “통화는 발행 주체의 신뢰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짚었다. “중국이 경제 규모가 커진다고 해도 기축통화국이 안 되는 게, 중국의 경제 시스템 전반에 걸친 신뢰도 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은 경제 규모 2위지만 위안화는 결제 통화로서의 사용도가 많이 떨어져요.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 화폐 구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이 미국이 60%쯤인데 비해 위안화는 불과 2~3% 정도예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7월 통계에서도 은행간 결제 46%가 달러로 거래됐다고 나오는데, 이게 역대 최고치래요. 반면 위안화는 3%, 엔화는 3.5%, 유로화는 20%대죠.”

- 중국은 기축통화국이 되기에는 신뢰 자본이 취약하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신뢰라는 소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 나라에서 발행하는 통화를 누가 믿겠냐는 거죠.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도 기술적인 이슈에 불과해요. 근본적인 탈달러화 작업은 쉽지 않을 겁니다.”

◇“미국, 중국에 먼저 윙크하지 않을 것”

-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중관계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은 향후 어떻게 전개될까요?

“러몬드가 ‘양국 관계는 지속되어야 한다’, ‘디커플링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같은 립 서비스는 했습니다만,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가는 기차에서 이런 말을 흘렸다고 해요. 본인이 접한 서방계 투자자들의 반응인데, ‘중국은 투 리스키(too risky)하다. 지금으로서는 투자 가능하지 않다’고요. 이 얘기를 듣고 관계 개선이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죠.”

- 제프리 삭스가 최근 국내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보면, 그는 미국이 이렇게 계속 중국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양국이 갈등 관계에 있을 때는 누가 먼저 윙크를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냉정하게 보는 쪽은 미중 갈등이 완화되려면 중국이 먼저 스탠스를 바꿔야 한다고 말해요. 현재 미국에서 비우호적인 대중국 인식이 70%를 넘는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대중 강경 노선에 대해서는 정당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적 서포트를 받고 있다는 얘기죠. 미국은 내년까지 대선 이슈가 큰데, 민주당 후보든 공화당 후보든 대중 관련 입장은 비슷합니다. 타이밍도 중국에 좋지 않아요. 중국 경제가 예전처럼 붕붕 날고 있다면 얘기가 다른데, 오히려 가라앉고 있죠. 이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까요?”

그는 “80년대에 일본이 미국을 추격하니까 ‘재팬 배싱(Japan bashing)’ 얘기가 나왔다. 현 상황이 그 때와 유사해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시 말해 지금은 상황은 ‘차이나 배싱’이죠. 재팬 배싱은 결국 플라자 합의로 일본이 무릎을 꿇으면서 정리됐는데, 미중 관계에서도 그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요.”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은행권에 부담이 될 정도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은행권에 부담이 될 정도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스튜디오100

- 이사장님이 일전에 쓰신 칼럼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는 게 중국’이라고 하셨던데요.

“오래전부터 해 온 얘기입니다. 일본도 그 당시 과잉 부채가 문제였죠. 경기가 안 좋으면 재정 풀고, 통화 풀고 하다가 그게 나중에는 더 큰 부담으로 돌아왔어요. 중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부동산 경기 부양’ 카드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지방은 큰 건물들 태반이 공실로 남아 있고요. 지금 중국 당국이 내놓는 대책도 뻔하잖아요. 첫 주택 매입할 때 계약금 줄여 주고, 주담대 금리 완화시켜 주겠다는 얘기인데, 이게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까요?”

- 중국의 최근 부동산 위기가 ‘제2의 리먼사태’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아직까지 금융위기 신호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 내에서 불거지는 그림자금융 문제는 비은행, 주로 자산신탁 부분입니다. 물론 비은행 부실이 은행 쪽으로 확산돼서 문제가 전파될 개연성은 있습니다만, 중국 정부도 국영은행으로 부실이 확산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상태라 현재로서는 확률이 크지 않다고 예상합니다.”

-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제한적일 거라고 봅니다. 통계를 보면, 서방은행들이 중국에 대출해 준 총 익스포저(손실 가능 금액)가 전 서방 은행권 자산의 1%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적어요. 중국이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차입을 했다면 이건 채권시장 쪽의 문제지, 은행 문제가 아니죠.”

◇미국 경제, ‘나홀로 호황’?

- 미국 경제도 중소형 은행의 부실화 등 금융부문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도 부동산 대출 쪽에 문제가 있는 건 맞는데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미국은 주택이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 문제예요. 코로나 때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 인원을 감축하면서 공실률이 올라갔죠. 우려가 되기는 하나, 미국은 땅덩어리가 커요. 샌프란시스코나 LA 근처는 안 좋다는 말이 나오지만 텍사스, 플로리다 같은 곳은 또 붐이에요. 상황이 나쁜 지역 지방은행들의 부실 리스크 요인은 있는 게 맞는데, 시스템적으로 쿠션 역할을 해 주는 대형 은행들이 있어서 미국 경제의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지난번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무너지려고 할 때 JP모건이 떠안아서 해결된 케이스도 있지 않았습니까.”

전 이사장은 “물론 미국 경제도 경계해야 될 요인은 있다”며 “특히 재정 적자가 지금 역대 최대로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 피치가 그 이유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뜬금없었겠죠.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는 귀담아 들어야겠지만, 지금 ‘나홀로 호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미국 경제가 견조한 것 또한 사실이거든요. 고용, 투자, 성장 다 괜찮아요. 1분기, 2분기에도 연율 2%대 성장을 했잖아요. 일부에서는 3분기 성장률을 5%로 내다보고 있어요. 물론 이게 세계경제 측면에서는 꼭 좋기만 한 얘기는 아니죠.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주식이나 채권시장에는 안 좋은 뉴스일 수 있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필요하다면 여전히 금리 인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연준은 2%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필요하다면 여전히 금리 인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연준은 2%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AFP연합뉴스

- 제롬 파월의 정책 수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슈 기준으로만 평가하자면 우선 지방은행 파산을 금융권 내에서 흡수하는 방향으로 정리했죠. 미국이 아무리 민간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큰 그림 뒤에서는 파월의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해요. 물론 Fed(연방준비제도)가 초기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은 계속 나옵니다. 처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더라면 1년 내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얘기인데, 그 이후의 추이를 보면 나름대로 시장의 충격을 피하면서 여기까지 왔죠.”

- 상당히 후하게 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파월이 월가 같은 데서 점수를 많이 받는 편은 아니죠. 그래도 너무 박한 평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70년대에 아서 번스가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스톱앤고(Stop & Go)’ 전략을 취했잖아요. 그 영향으로 80년도에 폴 볼커가 기준 금리를 20% 가량 올려요. 이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 금리를 못 내린다는 해석도 나오죠. 초기에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면 사태를 조기 진화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말은 일종의 뒷담화예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변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비판하기는 어려워요.”

◇“경제 회복탄력성 유지하려면 부양책 필요”

- 금리 얘기가 나온 김에 여쭙겠습니다. 한미 간 금리차가 2%포인트(p)로 벌어졌는데도 한국은행은 큰 문제 없다는 반응이던데요.

“보통 외화자금 유출 때문에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우려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주식시장,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외화 자금이 제법 많거든요. 금리차는 국제간 자금이동에서 하나의 요소일 뿐이에요. 성장 잠재력, 수익성, 전망 등을 보고 금리 차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외화가 들어올 수 있어요.”

그는 “금리 변동이 실제 경제에 주는 영향을 다각도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구도는 금리 상승에 특히 민감해요. 주택담보대출은 변동금리가 많잖아요. 미국은 다릅니다. 고정금리 비중이 커요. 금리를 빠르게 올려도 주택시장이 급락했다는 얘기가 잘 안 들리죠. 이에 비해 우리의 금리인상 문제는 외화 자금 유출입만 볼 일이 아니에요.”

- 마지막으로 현 정부 경제팀에게 조언 한 말씀 해 주시죠.

“일각에서는 ‘왜 자꾸 상저하고 같은 소리만 하고 있냐’, ‘계속 낙관적인 얘기만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해요. 안 좋은 부분은 솔직하게 얘기를 하고, 아까 언급했던 단기 대응, 즉 경기부양책에 대한 공감대를 더 얻도록 해야죠. ‘경기 회복의 효과가 큰 곳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재정 악화도 더 심화된다’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특히 “재정 지출에 너무 경직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단기적으로 경기를 살리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기라는 게 결국 단기가 합쳐진 것 아닙니까? 기업들의 호흡력이 떨어지면 국가 경쟁력도 취약해지고, 나아가 경제의 회복탄력성도 떨어집니다.”

 

인터뷰 = 임혁 편집인, 정리 = 박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