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연합뉴스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러시아 군부에 대한 불만으로 반란을 시도했다 포기한지 2개월 만이어서 그 보복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재난당국은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엠브라에르 레가시 제트기가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 주변에 추락했다”며 “초기 조사 결과 승무원 3명을 포함해 탑승한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이후 러시아 항공 당국은 “프리고진과 드미트리 우트킨이 해당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밝혀 프리고진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드미트리 우트킨은 프리고진의 최측근으로서 프리고진과 함께 바그너그룹을 설립한 인물이다.

친(親)바그너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도 프리고진이 이번 사고로 숨졌다고 밝혔다. 앞서 그레이존은 사고 시점에 바그너그룹 전용기 2대가 동시에 비행 중이었고, 1대가 추락한 이후 나머지 1대는 모스크바 남부의 오스타피예포 공항으로 회항했다며 프리고진의 생존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이후 입장을 바꿨다.

특히 그레이존은 러시아군 방공망이 바그너그룹의 전용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현지 매체들도 이륙 후 30분도 안돼 해당 비행기가 방공망에 요격됐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항적 추적 데이터를 근거로 바그너그룹 소유로 등록된 비행기가 이날 저녁 모스크바에서 이륙한 지 몇 분 후에 비행 신호가 끊어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현지 매체를 인용해 프리고진과 우트킨 등 일행이 사고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국방부와 회의를 가졌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한쪽 날개가 떨어진 비행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연기와 함께 수직으로 추락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게시됐다.

추락하는 프리고진의 전용기. 연합뉴스/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 동영상 캡처
추락하는 프리고진의 전용기. 연합뉴스/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 동영상 캡처

미 CNN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사고의 배후일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CNN에 지난 7월에 한 발언을 언급하며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프리고진이 실패한 반란과 관련해 그의 안전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은 모르지만, 놀랍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요식업 경영자 출신의 프리고진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젊은 시절 푸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크렘린궁의 각종 행사를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2014년 바그너그룹을 창설한 후에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세계 각지 분쟁에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개입하며 세력을 키우고 이권을 챙겼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전면에 나서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으나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부와 갈등을 빚었고 지난 6월 23일 러시아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이끄는 반란군은 러시아 서남부 로스토프주 군시설을 장악한 후 모스크바 200㎞ 내 거리까지 북진했으나 돌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반란을 중단했다.

러시아 안팎에서는 프리고진의 신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프리고진은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여러 차례 확인됐고 지난 21일에는 텔레그램을 통해 위장복을 입고 소총을 든 채 사막에 있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