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 153 브랜딩> 신동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모나미 153 볼펜의 외형은 단순하다. 흰색의 육각 바디에 검은색 구금(볼펜 심을 감싸고 있는 캡)과 검은색 노크(심이 나오게 누르는 부분)가 달렸다.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은 클립은 없앴다. 153 볼펜의 단순한 디자인 뒤에는 이런 목적이 있다. “불필요한 부품을 빼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에게 제품을 공급한다.”

모나미 153 볼펜. 출처=위즈덤하우스
모나미 153 볼펜. 출처=위즈덤하우스

목적에 충실한 이 필기구는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하더라도, 화려하지 않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본질에 집중한다면 그 평범함은 특별함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문장은 모나미 리브랜딩의 핵심이 된다.

<모나미 153 브랜딩>은 1960년 설립된 문구 기업 모나미의 리브랜딩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위기 속에서 헤매던 모나미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시 ‘필기구’라는 본질로 돌아왔다.

브랜드의 본질은 브랜딩의 방향을 결정한다. 모나미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저자는 브랜딩 전략 구상에 앞서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본질에 집중하고 사고를 확장하라”

본질에 집중하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디자인 씽킹’을 위한 기반이 된다. 디자인 씽킹은 “결과물을 정해 놓지 않고 고객의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것”으로, “확장된 사고로 그 영역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모나미는 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펜은 ‘쓰기’ 위한 도구다. 저자는 ‘쓰는 행위’에 앞에 ‘왜’를 붙인다. 왜 쓰는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 지점에서 펜의 정의가 바뀐다. 펜은 ‘쓰는 도구’에서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표현 방법 중 하나다. 모나미는 펜의 용도에 그림을 추가함으로써 펜의 필드를 넓혔다. 저자는 “필기구였던 펜을 표현하는 도구로 재정의하자 문구 산업이 직면한 학령인구 감소라는 문제도 더는 중요하지 않아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혁신은 달라진다”고 이야기하면서 예시를 하나 든다. 에어컨을 만드는 두 기업이 있다. A 기업은 에어컨의 목적을 ‘시원함’으로 정의한다. B 기업은 에어컨의 목적을 ‘쾌적함’으로 정의한다. ‘쾌적한 환경을 구축하는 도구’로 에어컨을 이해하면 에어컨의 기능은 냉방, 난방, 제습, 청정 등으로 늘어난다. 더 넓게 생각하면 더 많은 방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 씽커는 고객의 불편에 주목한다”

저자는 디자인 씽킹을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던 추상적 불편함을 가시적으로 구체화시키는 방식”이라고도 설명한다. 선행되는 조건은 ‘고객 관찰’이다.

책은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의 사례를 소개한다.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던 모나미 상품 개발팀은 현장 탐방을 나간 새벽의 수산시장에서 한 상인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불이 피워진 드럼통에 크레파스를 녹이고 있었다. 아침이슬에 젖은 박스에 메모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기에 잘 써지는 마카 570. 출처=위즈덤하우스
물기에 잘 써지는 마카 570. 출처=위즈덤하우스

관찰을 통해 고객의 불편을 발견한 모나미는 ‘물기에 잘 써지는 마카 570’을 개발했다. 연이어 물에는 지워지지 않고 중성세제로만 지워지는 ‘키친마카’,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패브릭마카’ 등을 출시했다.

기업에 좋은 제품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제품이다. 그러나 고객에게 좋은 제품은 과거의 불편함을 깨닫게 하는 제품이다. 그런 제품은 소비자로 하여금 “이 제품을 사용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게 한다.

이때 나온 제품을 두고 사람들은 저자에게 “시장이 크지 않은데 이윤이 남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익보다 고객의 불편함 해소에 주목하는 것이 디자인 씽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답한다.

◇‘사소한 비틂’이 특별함을 만든다

역류하거나 고이지 않으려면 기업은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 지금은 ‘초개인화’와 ‘평균 실종’의 시대다. 기업 입장에서는 “개별 소비자의 취향을 얼마나 세심하게 맞출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그러나 모나미는 고객의 취향에 제품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고객이 직접 제품을 취향에 맞출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나미스토어에 마련된 DIY존 매대. 출처=위즈덤하우스
모나미스토어에 마련된 DIY존 매대. 출처=위즈덤하우스

모나미가 내놓은 것은 ‘153 DIY 키트’다. 이 키트는 153 볼펜의 구금, 바디, 노크, 잉크 색상 등을 직접 선택해 조립할 수 있다. 소비자는 이 경험을 통해 특별하게 커스텀‘된’ 볼펜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커스텀‘한’ 볼펜을 구매한다.

대부분의 제품은 대량 생산의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아무리 특별한 디자인이어도 ‘나만의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구매 과정에 ‘선택하는 경험’을 추가해 제품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모나미의 ‘사소한 비틂’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