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스튜디오100
사진= 스튜디오100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에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년 ~ 1989년) 이후 30여년 만인 러시아의 무력 침공은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군비 증가에 들어가기도 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며 글로벌 외교는 모든 나라에게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됐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에 대해 국제정치 분야의 석학인 이춘근 박사는 “이번 전쟁의 함의와 그 파장을 정확히 판단려면 우선 ‘러시아는 악(惡) 우크라이나는 선(善)’이라는 식의 피상적 관점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외교와 힘의 논리로 바라봐야한다”라고 강조한다.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이자 유튜브 채널 ‘이춘근TV’도 운영하고 있는 이 박사에게 힘의 경쟁구도에 근거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석과 그에 담긴 인사이트를 들어봤다.   

인터뷰= 임혁 편집인, 정리= 박정훈 기자

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5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우선, 이번 전쟁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이 전쟁이 500일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심지어 전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도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두 국가  간 긴장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 국민 대부분은 “전쟁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개전 직후 푸틴의 경우는 “몇 주 내로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었고요. 물론, 실전의 양상은 전혀 달라졌지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이제 국가간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은 다시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세계관을 철저하게 깨부쉈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어요. 이후에 전 세계는 깨달았습니다. 제국주의적 관점의 대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전쟁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거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바흐무트 근처 최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박격포를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바흐무트 근처 최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박격포를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가지 덧붙여서,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미디어들의 보도를 보면 러시아를 한없이 악으로, 우크라이나를 한없이 선으로 치부하곤 하는데요.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국경에 대한 침략을 러시아가 시작한 자체를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만 이를 전통 외교학에서 말하는 힘의 논리로 보면 우선 두 나라 사이에는 분명하게 무너진 힘의 균형이 있었습니다. 이를 전제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번 전쟁에는 나름의 당위성도 있어요. 

2014년 러시아는 크림 반도 점령 이후로 우크라이나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게 됐지요. 접경지대에서는 두 나라 군 병력의 크고 작은 교전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우크라이나가 추진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시도는 러시아의 안보 측면에서 확실한 위협이 맞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된 군비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은 거의 10분의 1로 줄었어요. 역대 정부에는 부패가 만연했고요. 게다가 잘 알려지지는 않은 내용이지만,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러시아인들을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국보다 국방력이 약한 국가가 자국민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모든 전쟁은 선악의 관념이 아니에요, 힘에 근거한 이해의 충돌이지.

또, 러시아가 무력을 행사하게 된 배경에는 바이든의 책임도 있어요. 트럼프 시절에 미국은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거든요. 중국을 더 확실하게 견제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바이든이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면서, 러시아가 중국과 연대하는 현상이 발생했지요.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러시아가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임: 개전 초에는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선전을 해서 세계를 놀라게도 했습니다. 현재 전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요.

이: 어떤 나라에 대해 전쟁을 시작해서 압도적 우세로 단숨에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한 곳 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미국과 어깨를 겨룬다고 했던 러시아의 국방력도 실전을 치러보니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러시아가 고전을 거듭하고 있고,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쪽으로 변했다는 식의 설명은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러시아는 약 60만㎢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국토 전체의 약 20%를 점령했어요. 대한민국 영토만한 크기의 땅을 차지한 셈이지요. 러시아가 대외적 국방력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사진= 스튜디오100
사진= 스튜디오100

임: 전쟁 초기와 비교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의 대오에 변화는 없는지요.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저는 처음부터 서방의 단합된 지지는 없었다고 봅니다. 과연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진심으로, 전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우선, 유럽의 입장에서 러시아는 식량과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 국가거든요. 과연 이런 나라를 상대로 전면전을 각오하고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요?  

다음은 미국의 관점에서, 미국이 진심으로 러시아를 막고자 했다면 이미 자국의 최첨단 무기와 병력을 직접 우크라이나에 투입했을 것입니다. 한데 미국은 우회적으로 무기 지원만 하고 있죠? 미국이 잘못 나서면 이는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아울러 미국은 곧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곧 정치적 리스크가 되죠.    

임: 최근 루블화 환율이 달러당 100루블을 넘어서는 등 러시아도 경제상황이 불안합니다. 러시아의 현 경제상황과 러시아 당국의 대처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당연히 전쟁을 치르는 국가의 경제가 좋을 수는 없겠지요. 아마도 유럽이나 미국은 경제적 압박으로 러시아가 전쟁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장담하건대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전쟁을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는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이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상보다 고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당초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임: 앞서 말씀하신대로 전쟁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종전이 되려면 어떤 모멘텀이 필요할까요. 또 그 시점은 언제쯤으로 예측하시나요?

이: 종전의 시점을 말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하고,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건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인데요.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역량만으로는 이 전쟁을 절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서방 국가들의 지원도 무한히 지속될 수 없지요. 저는 아주 냉정하게 말해서, 결국 러시아가 원하는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내 줘야 이 전쟁이 끝날 수 있다고 봅니다.  

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후 복구 사업의 규모를 7500억 달러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재원은 어떤 방식으로 조달되고 집행될까요?

이: 결국 다 빚으로 충당되겠죠,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2번째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밀가루 산지인데도 말이죠. 부패한 정치가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임: 전후 복구 사업에는 한국 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복구사업에 참여할 경우 유의해야 할 사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해 경제적 이익을 바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인프라 사업 경쟁력을 세계에 보여주는 정도의 현실적인 목표가 낫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전쟁의 결말은 우크라이나의 패전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전쟁에 진 나라에 우리가 투자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요? 수익성이 보장이 안 될 텐데 그런 투자를 왜 합니까? 비슷한 사례로, 과거에 미국-이라크 전쟁 때 국내 모 기업이 후세인의 벙커를 지어 준 적이 있다고 해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업체는 돈 한 푼 못 건졌죠. 

임: 이번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측의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민간인 희생에 따른 전범 처리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 전범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이 전쟁에서 완벽히 패배했을 때 따지는 겁니다. 전범은 패전 국가의 지도자나 책임자에서 나오죠. 2차대전의 독일이나 일본처럼요. 이 전쟁은 그렇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러시아도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겠죠, 생각보다 국력을 소모했으니. 이 전쟁은 전범이 누군지 따질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임: 전쟁이 진행되면서 러시아는 중국과 밀월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관계는 종전 이후에도 유지 될까요?

이: 천만에요. 지금 잠깐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두 나라는 절대 협력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러시아는 과거 냉전 시기에 중국이 미국 편으로 돌아서면서, 엄청난 경제적·외교적 타격을 입은 전례가 있어요. 어떤 면에서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보다 미운 게 중국일거에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덴마크 보옌스에 있는 스크리드스트럽 공군 기지에서 F-16 전투기에 탑승해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덴마크 보옌스에 있는 스크리드스트럽 공군 기지에서 F-16 전투기에 탑승해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임: 우크라이나 전쟁은 내년의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수님은 2016년 미국 대선 때 국내 정치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셨는데 이번 미 대선의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이: 역대 미국 대선을 분석해 보면, 재임 중 미국 주가가 오르는 등 경제 지표가 좋아지면 그 시기의 대통령은 반드시 연임에 성공했지요. 그런데 트럼프는 경제 지표면에서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는데도 선거에서 졌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바이든이 망치고 있는 글로벌 외교의 균형과 미국 내 여론을 고려하면 2024년 대선에는 트럼프가 이길 거라고 봅니다. 심지어 극단적인 반(反) 트럼프 미디어인 CNN도 지난 7월 31일 자 칼럼에서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하기도 했거든요. 

출처= 유튜브 채널 이춘근TV
출처= 유튜브 채널 이춘근TV